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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Apr 13. 2018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즐거운 입체성, 심오한 감수성'

Zootopia 2016 - 바이론 하워드, 리치 무어

 


친구가 피를 팔아 받은 영화표 한 장으로, 해가 밝은 평일 오후 세시 명동에, 이제 거의 끝물인 주토피아를, 혼자서 털레털레 보러 갔다. 팝콘도 사지 않았고, 물통에 채워 온 물 덕분에 음료수를 살 필요도 없었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빈 좌석에 듬성듬성 있었고, 내가 앉는 중앙열에는 딱 한사람을 빼곤 텅 비어있었는데, 역시 혼자 온 그 분은 딱 내 옆자리였다. 혼자 왔는데 혼자 온 게 아닌 느낌. 


너무나 가볍게 와서 그런지 조금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꼭 팔랑팔랑 빈 도화지 같은 느낌이라 좋은 영화를 보기에 딱 좋은 컨디션이었다. 그렇다. 나는 보기도 전에 이미 이 애니메이션이 좋은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디즈니'에다가 <주토피아>인데, 안 좋을 수가 있을까.


입체적 성공적 


여러가지 근사했던 점들을 말하고 싶지만, 가장 먼저 언급해야할 것은 바로 이 영화의 입체성이다. 그것은 인종의 공존을 다루는 <주토피아>의 주제와도 연관되는데, 정말 다양한 크기의 육식 초식 잡식성 동물들이 한 곳에서 살아가는 '주토피아'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 주인공인 주디는 아주 작은 토끼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이 의인화되어 나오는 만화에서도 토끼는 어느정도는 다른 동물들과 비율을 맞춰서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뭐랄까, 실사 비율을 넘어서 오히려 더 과장한게 아닐까 하는 정도로 동물들끼리의 크기 차이를 일부러 '강조'해놓았다. 크기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존재들은 자신의 생활반경 역시 그만큼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 다양한 생활이 한 공간에 모인다면 어떤 일상이 펼쳐질까. <주토피아>는 그 상상력을 굉장히 세련되고 근사하게 표현했다(이건 디즈니의 유명한 재능 중 하나다). 주디가 처음 주토피아에 도착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햄스터부터 기린에 이르기까지, 압도적인 차이를 가진 그들의 생활이 기묘하게 얽혀 들어가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사이를 이제 막 도착한 작은(그러나 햄스터보다는 큰) 토끼 한마리가 두리번거리며 지나가는 장면은 토끼의 크기를 기준으로 올려다보는 시점을 선택해서 세계를 흠뻑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그 장면은 마치 '쥬라기 공원'에 막 도착한 것과 비슷한 느낌의 연출을 보여주는데, 이제 막 상경한 주디의 눈의 높이를 통해 새로운 세계의 웅장함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감을 효과적으로 한층 더 불러 일으킨다. 사소한 앵글 하나로. 


마우스 타운에서의 추격전은 그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 너무 작아서 경찰서 변기에도 제대로 오르지 못하는 작은 토끼 주디가 이제는 거대한 괴수가 되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돌아다니는 장면은 매 순간순간마다 휙휙 바뀌는 자신의 상대적인 존재감을 자연스럽고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주차 딱지를 끊는 사소한 장면도 놓치지 않는다. 높은 기린의 차에 점프를 해서 기어코 주차위반딱지를 붙이고 마는 주디의 모습은, 다양한 크기와 존재감을 가진 동물들의 세계에 적응한 주디의 능력과, 그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아가는 <주토피아>세계의 입체적인 모습을 아주 간단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 모든 연출들이, 조금도 작위적이지 않고, 익살스러우며, 즐겁다는 것이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고 능청스럽게, 그러나 정교하고 근사하게. 그것이 디즈니의 실력이다. 틈새 마감이 너무나 매끄러운 애플의 기계를 만지는 느낌이랄까. 


인종차별의 메타포


<주토피아>가 디즈니의 작품 중에서도 특별한 점은 이러한 연출이 이번에는 조금 심도있는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비교적 덜하겠지만(아직은 거의 단일민족국가라), 미국은 언제나 인종차별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나라다. 공식적으로야 모든 인종은 평등하다, 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결코 막을 수 없는 지엽적인 인종차별과, 때로는 대대적으로 나타나는 인종적 이기주의는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진보해도 과연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인지를 회의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주토피아>의 경쾌한 입체성은 사실 이러한 무거운 문제와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다. 남성적 맹수들로 가득한 경찰서에서 작은 여성 토끼인 주디가 출근한 첫날부터 맞닥뜨리는 편견(여성차별적 문제에 더 가깝다)과,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 자신의 발언을 반성하며 닉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주디의 모습은, 지금 이 시대가 여러 노력 끝에 도달한 인종-성평등적 감수성의 현재적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다름'에 대하여 직선적인 폭력으로 억압하는 구시대의 서사보다 <주토피아>의 인종-성차별적 문제는 훨씬 은근한 방법으로, 전방위적으로 사회와 개인의 무의식에(심지어 DNA까지도) 뿌리깊게 담겨 다가온다. '주토피아', 즉 '유토피아'라는, 서로 다른 모두가 갈등 없이 살아가기 위한 세계는, 그러나 아직도 진행중인 상태다. 많은 노력 끝에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우리)가 간신히 다다른 지점은 사소한 갈등 하나로도 모두 무너져버릴 정도로 위태로운 상태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다르'며 그것을 '같'게 만들 수 없음과, '다름'을 인정하면서 살아간다 해도 결국 마주하게 될 '다름'으로 인한 문제들. 기껏해야 애니메이션에 불과한 <주토피아>의 문제의식은 가장 현대화된 소도구들(당근 스마트폰) 만큼이나 현대적이며 첨예하다.  


온갖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는 맥락은 분명하다. 이렇게나 많고 다양한 동물(인종)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 그들은 평등하게 하나로 어울려 살고 모두 '같다'는 가치를 추구하지만, 사실 그 '다름'은 동시에 얼마나 즐겁게 소비되고 있는가. 토끼는 얼마나 토끼답고, 여우는 얼마나 여우같으며, 우리는 나무늘보가 나무늘보다움에서, 늑대가 울부짖는 것이 늑대답다는 점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마치 흑인의 운동신경과 식습관, 성격과 말투에 대한 편견을 '흑형'이라는 단어로 즐겁게 소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토피아>는 그것을 굳이 피하지 않는다. 토끼도 때로는 얼마나 맹수같은가와 같은 반전매력보다, 주디가 가끔 토끼로서 작은 코를 킁킁거릴 때, 캐릭터가 훨씬 분명하게 살아난다. <주토피아>의 동물들은 그들의 종족적 본성에 충실하다. 그들은 종종 그로 인해 사회적 편견과 마주하게 되지만, 결코 아둥바둥 그것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고민하는 것은 그것을 유지한 채 어떻게 함께 살아가느냐다. 모두의 크기가 다른, 시점이 입체적인 도시, <주토피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윤리적 감수성이 도달한 사회. 그리고 거기서 벌어지고 있는 또다른 문제들.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물론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은 결코 아이들만 타겟으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이라고 치부하기엔 분명히 육중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주토피아>는 분명 명작이었다.


닉, 주디, 그리고 플래시 




그냥 지나가기에 아쉬운 보석같은 캐릭터들. 


매력적인 캐릭터가 넘쳐나는 <주토피아>에서도 주인공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명실공히 최고의 인기 캐릭터로 자리잡은 여우 닉. 일반적인 열혈 소년 남자 캐릭터에서 벗어난, 느끼한 눈빛과 껄렁남(그러나 내 여자에겐 꿀떨어지는..) 캐릭터인 닉은 사실 그렇게 생소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당장 바이론 하워드의 이전작 <라푼젤>만 보아도 플린 라이더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알라딘, <공주와 개구리>의 나빈 왕자 등, 비슷한 캐릭터가 많았음에도, 어째서 닉은 이렇게 매력적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닉은 너무나 여우 같은데, 진짜 여우잖아? 가끔은 그런 당연한 사실이 굉장한 펀치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결코 상급 포식자라고 할 수는 없는 여우. 저보다 키가 크고 강한 동물들이 많지만, 적어도 주디보단 조금 큰 여우 닉. 포인트가 아닐까. 


주디는... <겨울왕국> 안나와 이목구비가 너무 닮았다. 그런데, 너무나 토끼 같은데, 진짜 토끼니까. 주디 역할을 연기할 인간 배우가 있을까. 토끼는 종종 '귀'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


나무늘보가 웃기다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영화를 보았다. 나무늘보들이 나왔을 때 시크하게 아 저거구나, 했다. 그리고 플래시의 웃음과 함께 육성으로 터졌다(나만 터진 것도 아니고, 도저히 참을 수도 없었다). 알고 있는데 웃기다니, 대단한 녀석. 


(여담이지만 5:5 뿔 가르마가 인상적인 물소국장도 취향저격.. 물소 다운 튼튼한 체격에 갑자기 꺼내든 비즈니스한 안경이라니.)


그리고 센스



대단한 패러디들. 한입 베어 먹은 당근폰은 말할 것도 없다. 진짜 대박이었던 것은 영화 <대부>를 완벽하게 패러디한 미스터 빅. '내 딸의 결혼식....' 애니메이션을 보다 여기서 갑자기 영화계의 레전드 <대부>가 튀어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 돈 꼴리오네의 솜을 씹는 발음을 그대로 재현한 쥐 미스터 빅. 재미없을 틈이 없었다. 뻔한 이야기로 언제나 허를 찌르는 디즈니. 이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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