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믿고 한계를 넘는 고통을 즐기라!
공기가 지상의 3분의 1 수준 밖에 안되는 8,848m의 에베레스트를 산소통 없이 등반하는 탐험가, 맨몸으로 바닷속으로 들어가 12분 동안 숨을 참는 프리다이버, 마라톤에서 1등으로 들어오는 올림픽 금메달리트, 교통사고를 당한 소년을 꺼내기 위해 1,360kg 짜리 트럭을 들어 올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우리는 감동하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신체 조건이 우리와 달라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최근 과학자들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의 신체 능력을 테스트한 결과, 별다른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고 밝혔다. 즉 심장이나 근육만 가지고는 인간의 한계를 정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한계를 규정짓는 것은 무엇이고 또 그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국가대표 육상선수 출신의 물리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알렉스 허친슨은 책 <인듀어>에서 인간의 한계를 깨는 지구력의 힘을 탐구한다.
그는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인간의 가능성을 넓히는 지구력의 비밀에 다가가기 위해 10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백 명의 학자와 운동선수를 인터뷰했다. 그 연구 결과를 담아 쓴 책 <인듀어>에서는 지구력의 한계를 밀어 붙이는 원리를 이해하면 운동선수뿐 아니라 일반인도 생활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구력은 인간이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인 동시에, 악을 쓰는 아이들과 함께 국제선 비행기의 이코노미 좌석에 끼어 있을 때 정신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힘이기도 하다. 후자의 상황에 지구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다소 비유적인 표현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육체적 지구력과 정신적 지구력 사이에는 생각만큼 명확한 경계가 그어져 있지 않다. 안타까운 실패로 끝난 어니스트 섀클턴의 남극 원정과 1915년 그의 탐험선 인듀어런스호가 빙산에 부딪쳐 난파되었을 때 원정대가 생존을 위해 견뎌야 했던 2년의 시간을 생각해 보자. 그들을 지탱한 힘은 이코노미석의 아이 떼를 견디게 해 주는 정신적 지구력이었을까? 아니면 순수한 육체적 지구력이었을까? 애초에 한 사람이 둘 중 하나만 가지는 것이 가능할까? — 책 <인듀어> 中
저자가 '한계'에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는 선수 시절에 겪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기록 향상의 경험 때문이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던 한 경기에서 저자는 시간기록원의 실수로 자신이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와 좋은 컨디션으로 달리고 있다고 믿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날 그는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평소 같으면 넘지 못했을 1,500m 달리기 4분의 벽을 단번에 거의 10초 가까이 단축하면서 3분 57초 70이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국가대표 선발 전까지 출전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경험을 다시 한 번 반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성과를 내지 못했고,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그는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다.
무엇이 그 한계를 뛰어넘게 했을까?
남극 대륙 횡단을 떠났다가 2년 동안 표류한 끝에 기적적으로 27명의 대원들과 함께 무사히 돌아온 어니스트 섀클턴, 4,000km의 사이클 대회에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다리야, 닥쳐’라고 외치며 경기를 완주해 내는 세계적인 사이클 선수 옌스 보이트, 바다 한가운데서 아들을 30분 동안 물 위로 들어 올리다가 아들이 구조되자마자 다시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장거리 선수 리아넌 헐 등 이 책은 우리가 평소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사실 그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고 미뤘던 헬스장을 다시 나가고 싶게도 만든다)
이 책에 담긴 한계를 넘어섰거나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계는 뇌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에게는 스스로 생각한 것 이상을 해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그 힘을 한마디로 '지구력'이라 정의한다. 지구력은 '그만두고 싶은 충동과 계속해서 싸우며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힘'이다.
지구력의 비밀을 밝히려는 저자의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비교적 설득력있는 해답을 가지고 있는 두 학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팀 녹스와 이탈리아의 새뮤얼 마코라를 만나게 된다.
둘의 공통적인 해답의 초점은 인간 신경계에 맞춰져 있다. 인간 신경계의 통제가 진짜 육체적 한계에 부닥쳐 생명에 위협을 느끼기 전에 운동을 차단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녹스는 이러한 과정이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과정에 의해 일어난다고 주장한 반면, 마코라는 '노력의 감각'이라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녹스의 생각대로라면 우리가 포기하게 되는 시점은 뇌의 자율신경계가 자동적인 계산을 끝내고 우리의 의식과 독립적으로 포기의 결정을 내리고서 한계를 의식의 영역에 통보하는 순간이다. 우리 의식은 더이상 어쩔래야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무의식적인 과정이 작동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마코라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노력의 감각'이라는 의식적인 지표가 의식의 표면에 머무르고 우리의 의식은 이를 감지하여 자율적으로 포기나 지속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마코라는 무엇이든 우리 뇌의 '노력 다이얼'을 돌릴 수만 있다면 지구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간단한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탈수나 근육 피로, 터질 듯 뛰는 심장을 포함해 어떤 요소라도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힘들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운동선수들은 이러한 몸의 신호에 적응하도록 훈련을 받고, 시간이 갈수록 더 적은 힘으로 같은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정신적 피로처럼 상대적으로 불분명한 요소들 또한 노력의 감각에 영향을 미친다. 가령 마라톤을 하면서 몇 시간 동안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도록 집중하는 행위는 뇌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준다. 마코라 가설은 보다 급진적인 아이디어로 발전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만약 정신적 피로에 익숙해지도록 뇌를 훈련할 수 있다면, 몸을 단련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보다 적은 힘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 책 <인듀어> 中
허친슨은 이 두 과학자 중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정신적 과정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확실하게 나누는 게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포기의 결정을 하는 순간, 그 결정이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매우 혼란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어서 허친슨은 고통, 근육, 산소, 수분, 에너지 공급, 더위 등 여섯 가지 육체적 항목들을 살피면서 우리의 육체적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그 한계에 다다르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의 신경계(뇌!)는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얼마나 정교하게 미리 차단기를 내리거나 조절기를 돌리도록 설계되어 있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해 나간다.
그렇게 해서 허친슨이 내린 결론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일종의 경보장치로서 육체적 한계에 도달하기 한참 전부터 상황을 실제보다 심각하게 받아 들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일류 선수들은 훈련을 통해 이러한 경보를 더욱 둔감하게 만들 수 있고 결국 그것이 그들의 성공 요인이 된다. 그러나 이런 경보장치들이 실제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게 아니라 더 예민하거나 혹은 더 둔감하게 반응하게끔 조절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체적 능력에 한참 못미치는 성과를 낼 수도, 혹은 한계에 도전하다가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둔해지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몸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하는 것은 실제로 한계에 도달하기 한참 전이다. 처음에는 미세한 변화를 눈치 채기 어렵지만 점차 현재 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게 되고 결국 영원히 지속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이른다. 그 순간 고통스러운 도전은 마침내 포기의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 시점의 심부 체온은 여전히 정상 범주에 속하고, 근육에는 산소와 연료가 충분히 남아 있으며, 대사 작용의 결과 발생한 부산물 수치도 적정 수준을 넘지 않는다. 우리가 멈추는 이유는 오직 뇌에서 시간문제로 다가온 위험의 가능성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 책 <인듀어> 中
"인간 지구력 한계의 비밀을 밝혀냈다!"는 식의 추천글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든 독자라면 약간은 실망했을 것이다. 결론은, 아직 과학계에서도 인간 지구력의 비밀을 완전히 알아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저 여러 가지 실험과 사례들을 통해 이런저런 가능성을 제시해 보였을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그것으로 지구력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건 말건. 그게 바로 케냐의 선수들이 그토록 마라톤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케냐의 젊은 선수들은 경기 후반에 나가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최대한 빨리, 가능한 한 오래 선두 그룹에 끼려고 노력했다. (중략) 그 곳에서는 가장 느린 선수조차 매일 아침 ‘오늘이 나의 날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그들이 선두 그룹에서 달리는 이유는 최고의 선수들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이었고, 가혹한 현실이 그 확신을 꺽어도 다음 날 또다시 같은 각오로 달렸다. 이러한 믿음은 세계 마라톤 기록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 바로 케냐 선수들이라는 현실과 어우려지면서 일종의 충족적 예언이 되었다. — 책 <인듀어> 中
사실 나는 운동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고작해야 걷는 게 하루 일과 중 내 운동의 전부다. 그런 내게도 달리기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다. 바로 군대 훈련병 시절. 그 땐 정말이지 원없이 뛰고 뛰었던 기억이 난다. 운동장 몇 바퀴 도는 것도 버거웠던 내가 하루 왠 종일을 100바퀴고 200바퀴고 끝없이 연병장을 뛰었던 때. 사실 그때만 해도 나를 그렇게 잘 달리도록 만들어 준 힘이 무엇인지 잘 몰랐었는데,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니 어쩌면 믿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 해 낼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한다는 믿음!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이 책이 좀 더 재미있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허친슨과 말콤 글래드웰의 인터뷰 영상(앞서 소개)도 한번 챙겨볼 만 하다.
인간의 한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에게 믿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