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키리우스 Jun 20. 2018

the shorter story

be comfortable with...

주먹보다 조금 더 큰데, 사과처럼 깎아먹는 수박이 있다.

수박과 박을 접붙여서 만든 신품종으로 '애플수박'이라고한다.

갑자기 심어봐야겠다는 충동이 생겼다. 땅도 있으니까.




높이 50센치, 넒이 한평도 안되는 땅에 욕심을 부려 '애플수박' 모종 6개를 심었다.

만원에 모종 3뿌리가 기본 상품 옵션이었는데, 모종 1개당 수박이 2개씩 열린다치면 6개를 심었을 때 12개가 열리고 그럼 모종 투자비 2만원을 빼더라도, 수박이 개당 만원쯤 하니 10만원 이익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처음엔 6개를 선택한 것이 올바른 판단이라 여겼다. 택배로 받은 게 고작 잎사귀 한 서너개씩 달린 애기 모종이었으니.

힘줘 만지면 부러질라 조심조심 충분한 간격을 두고 애기 모종 6개를 다 심었다. 

생각보다 땅이 넓게 느껴졌다.





스무날이 지난 지금 넓었던 간격은 다 어디가고 좁아터진 땅덩어리에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 없이 거칠고 퍼런 수박 잎사귀가 가득이다.


벌이 열심히 수박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수정시킨 덕에 조그맣고 신비로운 애기수박이 이쁘게! 



자라는 게 아니라...

좁아터진 화단 테두리 벽돌에 짖눌려 검게 상처가 생기고, 무성한 잎사귀가 만든 그늘 아래서 빛도 못 보고 근근히 버티는 애들이 대부분이다.

모종 6개는 욕심이었다.

모종 하나당 수박 2개라는 예상은 5개가 넘으면서 턱없이 빗나갔다.


빛이라도 좀 보여줄까 잎사귀와 줄기들을 서로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가늘게 뻗어 나온 수박 넝쿨이 서로를 돌돌말아 꽉 붙잡은채 놔주지 않는다. 힘을 주면 끊어질 것 같아 포기하고 말았다.

전문가라면 처음부터 줄기당 수박 하나만 열릴 수 있게 가지를 쳐내며 관리했겠지만, 깜도 안되는 주제에 모종을 6개나 심은 내 잘못이다.


얘들 잘 자랄 수 있을까?

그나마 당도를 만들어 내는 탄소 정도는 물만 잘 주면 광합성으로 만들어 낼텐데, 아삭한 과육을 만드는 성분은 뿌리가 박혀있는 땅에서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이 옥상 콘크리트 위에 올려진 낮고 좁은 땅이 가지고 있는 유기물이 수박 수십개를 감당할 수 있을까?

결국 수박도 못 자라고, 땅도 사막처럼 될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뿌리 세개를 뽑아내 여유를 좀 줄까 생각 해봤지만

매일 들여다보고 물주고 했던 것도 애정인지 그것들을 붙잡아 뽑아낼 손아귀 힘이 생기지 않는다.


이왕 저질러진거 그냥..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



#분수에맞게순리대로

#하지만이미저지른건후회말고

#이쁘게지켜본것만으로도기쁜마음으로

#상처만안생기게

#편안하게기다려보자

#못만져도괜찮아

작가의 이전글 꼬 리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