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이란, ‘중국’의 중재로 화해
오랜 앙숙 관계였던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가 지난 10일 중국의 중재로 양국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중동 지역의 라이벌 국가인 두 나라가 갈등 속에서 외교 관계를 단절한 지 7년 만이다. 중재국인 중국과 함께 세 나라의 명의로 낸 이날 성명에서 이란과 사우디는 “2개월 안에 서로의 영토에 대사관을 다시 열 것이다”, “(양국의) 주권을 존중하고 국내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포함한다”라고 밝혔다.
이에 혼란했던 중동 질서가 급격히 안정을 찾을 것이란 긍정적인 기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세계 에너지 공급의 중심지인 중동을 둘러싼 미-중 간의 세력 균형에 변화가 생길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추진 중인 중국은 왕이(王毅) 정치국원을 중심으로 무사아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사우디 국가 안보보좌관과 알리 샴카니 이란 국가 안보회의 의장의 사이를 중재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란과는 핵 문제, 사우디와는 원유 증산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미국의 현 상황과 비교했을 때 다소 파격적인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오늘날 전 세계 국제 공용어의 지위를 지닌 영어를 사용하지 않은 채 합의가 진행되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상당하다. 일각에서는 중국 중심의 신(新) 세계질서 부상에 대한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란과 사우디는 같은 ‘이슬람’ 국가임에도 이토록 오랜 시간 깊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일까? 또 어째서 이들의 움직임이 전 세계 세력 균형을 흔드는 것일까?
사우디와 이란의 오랜 악연
사우디와 이란, 두 국가의 오랜 악연은 종파 갈등에서 시작되었다. 사우디는 이슬람의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로 같은 이슬람계 국가이지만 둘은 현저히 다른 특징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한 갈등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지만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것은 2016년 사우디의 반정부 테러범 처형 사건이었다. 처형된 47인 중에는 시아파 지도자 4인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란 및 사우디 동부의 시아파는 시위 등을 통해 이에 대해 극렬히 반발했다. 결국 사우디는 이란과 단교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사우디 정부의 이러한 극단적인 태도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사우디를 위협하는 이란의 잠재력이다. 현재 중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는 사우디이다. 하지만 이란은 빠른 속도로 그 격차를 좁히며 사우디를 위협하고 있다. 이란의 인구는 사우디 인구의 약 2.5배 이상으로 이미 큰 차이가 존재하고 교육 방면에서도 여성의 교육 수준 및 과학기술 영역의 발전 수준 역시 이란이 사우디를 크게 앞서고 있다. 또한 국제사회의 이란에 대한 오랜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제조업 역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중동 국가답게 자원 역시 풍부한 편에 속한다.
두 번째는 이란 혁명 체제의 영향이다. 1979년 이전에는 이란 역시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팔레비 왕조가 이끌던 절대왕정 국가였다. 하지만 1979년 호메이니가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을 일으켰고 이란은 절대왕정이 아닌 신정체제와 공화정이 혼합된 ‘이슬람 공화국’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는 여느 공화정처럼 대통령과 국회의원 같은 지도자가 국민의 판단과 자유의지가 반영된 선거를 통해 주기적으로 선출되지만, 이슬람 가치에 어긋나지 않도록 필요에 따라 성직자들이 개입하여 국가를 지도하는 유일무이한 체제이다. 즉, 주권은 여전히 신이 가지되 이를 인간이 위임받아 처리한다는 것이다. 절대왕정 체제에 지쳐 있던 무슬림 청년들에게는 신분 상승의 기회를 가져다줄 수 있는 이 체제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사우디로서는 이러한 이란의 체제가 절대왕정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특히 사우디 동부에는 다수의 시아파 지지세력이 분포해 있기 때문에 더욱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따라서 사우디는 이슬람 전통주의를 기반으로 공포통치를 전개했고 이란의 사상을 막아내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이란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란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이란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라는 최정예 부대를 통해 이란의 이슬람 체제를 수호하고 이를 확산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세 번째는 이라크 전쟁의 예상치 못한 전개 및 주변국의 영향이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이라크를 자연스럽게 민주주의 국가로 전환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라크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지 못했고, 오히려 시아파의 국가가 되었다. 이 영향은 이라크부터 시리아, 레바논으로 확산되었고 세 국가를 중심으로 ‘시아파 초승달’을 형성하게 되면서 사우디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또한 예멘에서도 시아파인 후티 반군이 예멘 수도를 점령하였고 카타르와 사우디의 관계 사이에도 균열이 발생하여 사우디는 오히려 이란의 시아파에 둘러싸인 형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사우디를 압박하는 여러 상황들은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를 극한으로 몰고 갔고 종교를 넘어선 중동 지역 내의 두 국가의 패권 경쟁으로 전개되며 두 국가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사우디, 미국과 멀어지다.
중동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이란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서 사우디는 미국의 선진 무기 및 안보동맹이 필요했다. 1974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와 군사원조를 대가로 달러로만 원유를 거래하기로 합의했고 ‘페트로달러’의 탄생과 함께 두 나라의 동맹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두 나라의 끈끈할 줄 알았던 동맹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0년대 후반, 원유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자원인 셰일오일이 미국을 중심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2014년 이후 셰일오일은 전 세계의 힘의 균형을 재조정할 수 있는 ‘마법의 자원’이라 불리며 석유에 상응하는 가치를 가진 미래 에너지 자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미국은 셰일오일의 순수출국이 되면서 더 이상 사우디에 군사원조를 하며 ‘페트로 달러’에 얽매여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에 중동은 자연스레 미국의 전략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사우디로서는 당시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였던 와중 무기 공급 중단이라는 소식은 불만과 반감을 쌓기 충분했다. 또한 작년 3월 중순, 예멘의 후티 반군은 사우디 아람코에 미사일 공격을 하는 등 직접적인 안보위협을 가했지만 오히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다자주의 외교 정책을 내세우며 여러 중동 나라들과 균형 외교를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 이미 2021년 1월부터는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단한 상태이다.
사우디는 이러한 미국의 행보에 이제 더 이상 미국에만 의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두 나라의 사이는 점차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중동의 새로운 선택, 중국
중국과 아랍 국가들 간의 관계 발전은 한편으로는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그들이 가까워진 이유는 모든 국제관계가 그렇듯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우선 사우디는 대표적인 아랍지역의 친미 국가로, 폭발적인 원유 생산량과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요충지로 작용하여 미국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노선을 트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미국을 견제 내지는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 외교정책 위원회(European Council of Foreign Relations)에 따르면 사우디는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중동의 입지 약화를 우려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 사우디 포함 여러 걸프 국가들이 차선책을 모색하고 있다. 실제로 사우디의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 경영진들은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하여 한화 약 34조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 중국에 정유소와 석유화학 단지 건설 참여를 합의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중재의 또 다른 당사자국인 이란 역시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여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이란은 서구에 대해 중립적인 외교정책을 유지하다 팔레비 왕조 붕괴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적인 반서구 국가로 탈바꿈했다. 또한 2002년 1월 미국으로부터 ‘악의 축’으로 지목되어 사실상 외교적 고립 상황에 놓였다. 중동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위한 의지와 반미 감정은 자연스럽게 차선책 모색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중국에게도 아랍 국가와의 관계 개선은 이득이다. 먼저 현실적인 이유로 중동 국가들은 중국의 가장 중요한 원유 공급처이다. 산업 확장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에 원유는 필수재 중의 필수재이다. 또한 중동은 중국의 국가전략 ‘일대일로’를 지나는 중요한 위치에 있어 중국의 해외 진출 전략에 부합한다. 따라서 아랍 국가에 대해 인프라 건설, 경제, 무역, 과학기술, 문화, 교육, 안보, 보건, 미디어와 군사, 핵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투자와 인적/물적 교류를 지원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 이란의 상하이협력기구(SCO) 영입, 사우디아라비아가 투자한 중동 녹색 이니셔티브 지지, 중국의 ‘일대일로’와 사우디의 ‘비전 2030’ 간의 협력을 약속하는 등 관계 발전을 위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우디와 이란이 이번 합의에서 중국과 함께한 이유는 뭘까.
먼저 사우디는 비록 최근 바이든 정부와 사이가 멀어지고는 있지만 이들은 ‘석유’라는 단단한 매개체로 오랜 기간 관계를 지속해 왔다. 그런 사우디가 최근 급작스러울 정도로 적극적으로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동기는 ‘석유’이다. 중국은 사우디의 VVIP 고객이다. 2021년 중국의 사우디 원유 수입액은 전체 사우디 상품 수입액의 77%를 차지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와 가격 상한제 시행으로 러시아산 원유 가격이 대폭 하락하자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 구매 규모를 늘렸다. 중국 해관총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사우디산 원유 수입량은 하루 172만 배럴로 감소한 반면, 러시아산 석유 수입량은 하루 194만 배럴로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대중국 원유 수출 1위 국가에 등극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는 충성 고객인 중국을 놓칠까 조급해졌다. 중국에서의 시장점유율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면 중국이 내미는 손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 동기는 ‘에너지’이다. 최근 사우디는 중국과 직접투자협약(MOU)을 체결하여 수소에너지·태양광·정보통신·클라우드·건설 등 34개 분야에서 약 300억 달러 규모의 경제 협력을 약속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 경제는 대부분 석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그 변동성이 크다. 이에 사우디는 석유 의존적이고 단일화되어 있는 국가 산업구조를 확장시키기 위한 탈석유 산업 다각화 전략으로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시행 중이다. 이런 때 중국이 제공하는 경제협력은 사우디에게 매력적인 조건으로 다가올 것이다. 중동의 전력 및 담수화 회사인 ACWA Power는 지난 2월 19일 중국 에너지 엔지니어링 회사 CEEC(China Energy Engineering Group.Co)와 사우디에 설립될 중동 최대 규모의 태양광 사업에 관한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했다. 또한 사우디는 최근 중국의 화웨이와 클라우드 컴퓨팅과 첨단 단지 건설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사우디는 중국과 협력의 결과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꿈꾸는 ‘네옴 시티’의 실현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동기는 ‘무기’이다. 사우디가 수입하는 무기의 약 60%는 미국산이다. 중국산 무기는 아직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제공하지 않는 무기와 제조 기술까지 판매하고 있다. 2021년 미국은 사우디가 중국의 협력으로 독자적인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위성사진 분석과 함께 보도했다. 결정적으로, 중국산 무기는 저렴하다. 비용 면에서의 이점으로 인해 중국산 무기의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사우디와 미국의 동맹이 굳건하던 시절 사우디가 중국산 군용 드론 30대를 구매한 것을 기회로 중국은 사우디에 무인 공격기 생산 공장을 건설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산 무인공격기의 7분의 1 가격이라는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가진 채 사우디 시장에서 성장세를 이어왔다. 중국과 사우디 양국은 무기와 기술에 그치지 않고 안보 협력에서도 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 나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란은 어떨까. 이란은 중국과 밀착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활로를 마련하게 됐다. 이란 핵합의(JCPOA)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6개국과 이란이 2015년 오바마 정부 당시 체결한 합의로, 이란이 핵 개발을 평화적 목적으로 한정하는 대가로 이란을 상대로 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 탈퇴를 선언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핵협정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재차 교착상태에 놓여 있다.
이에 이란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우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국을 택했다. 지난 2월 1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대이란 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은 “이란 내정에 대한 외부 세력의 간섭과 이란의 안보와 안정성을 훼손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라고 밝히며 미국의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에 강력히 반대 입장을 표했다. 미국의 억지스러운 핵합의 탈퇴에 홀로 맞서던 이란에게 중국이라는 든든한 편이 생긴 셈이다.
중재를 자처한 중국, 왜?
중국은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외교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 모두에서 이익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외교적 측면에서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기존에 공격적이고 독단적이었던 이미지를 버리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중동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고착화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흔들리자 중국이 이 틈에서 새로운 평화 중재자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는 중국이 시진핑 3 연임 이후 새롭게 내보인 외교 전략의 첫 번째 가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사례를 통해 중국은 자국의 새로운 외교 전략인 ‘평화 중재자’에 회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던 국가들의 의구심을 해소하며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입지를 새롭게 다지고자 했다. 한편, 중국의 평화적인 외교 전략은 현재 미국과 동맹관계에 속해 있지 않은 국가들을 대상으로 미국에 대항하는 반 패권 동맹을 구축하는데 청신호가 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중동은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성향의 국가로서 현재 미국과 갈등을 보이고 있어 중국은 중동 국가들과 우선적인 관계 개선을 통해 국제사회의 질서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국은 중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산유국 중 하나인 사우디와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다양한 경제적 이득을 보았다. 사우디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따른 미래기술 중심의 국가 경제 구조 재편 계획에 맞춰 중국이 각종 개발 이니셔티브 지원을 약속하며 여러 경제적 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런 경제적 협력을 통해 중국 내 많은 기업들이 그간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중동 진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여러 중국 기업의 중동 진출은 중국의 핵심 국가전략인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중국은 사우디의 원유도 값싸게 수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세계 여러 국가들이 원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중국은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사우디와 손을 잡으면서 손쉽게 원유 확보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중국은 석유 결제 대금을 위안화로 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며 석유 결제에서 달러화의 절대적인 위치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 중국으로부터 중동의 패권 잃다.
이처럼 중동의 오랜 앙숙이었던 사우디와 이란이 공식 화해와 함께 외교 관계를 재개하면서 중국의 '국제무대 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미국 싱크탱크의 전략가 다수는 미국의 텃밭이었던 걸프 지역, 특히 우방 사우디의 급격한 중국 경사(傾斜)에 놀라고 있다. 미국이 중동에서 관여하기를 축소하자, 그 힘의 공백을 중국과 러시아가 무서운 속도로 채우고 있다는 점 역시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중국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전략 중점을 동아시아로 옮기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무너진 미국의 중재자 역할
본래 미국은 중동의 균형을 지키는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 왔다. 직접적인 물리적 개입은 지양하고 외교를 통해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균형 속에서 중동 지역의 중심 국가인 사우디, 이란, 튀르키예 간의 세력 균형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이란 핵 협상이 교착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은 이러한 노선을 급선회했다. 아브라함 협정을 토대로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 우방국들을 반(反)이란 연대로 결집하는 전략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베이징 합의는 미국의 계획을 고스란히 뒤집어 놓은 셈이다. 여기에는 사우디를 끌어안지 못한 타격이 컸다. 중국은 이란을 견고한 친(親)중 진영에 묶어 두고 사우디를 중립 지대로 이끌었으며 중동에서 영향력이 축소된 미국의 빈틈을 파고들어 중동의 중재자 역할을 꿰찬 것이다. 이에 미국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중동 외교전에서 급등한 중국의 위상을 깎아내렸고 중동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은 변치 않았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조차 '미국의 완패'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앞으로 중국은?
중국은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관계를 성공적으로 중재하며 중국 중심의 다자주의를 적극적으로 실현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중동 지역의 중재 사례를 바탕으로 중국은 평화적 중재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24일에 중국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12가지 조항으로 이뤄진 국제 평화안을 발표했다.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의 주권 존중, 인도주의 등을 포함한 평화안을 통해 양국이 평화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중재자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3월 20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된 중-러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안정적인 중-러 외교관계를 재확인하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 관련 평화안에 대한 대화도 시도한 바 있다.
이번 사우디, 이란 중재와 더불어 러-우 전쟁에 대한 평화안 제안까지 고려하면 중국은 평화적인 중재자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 및 종교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서 외교적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 역시 제기된다.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이 해결된 것은 중국의 평화적인 외교 중재자 역할 덕분이라기보다는 두 국가 모두 중국으로부터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는 지정학적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는 의견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당장 사우디와 이란이 각국에 대사관 재개 등 실질적인 합의를 보았다고 할지라도 사우디와 이란의 종파 갈등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진핑 주석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시작한 다음 날인 21일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이번 중-러 회담 역시 우크라이나 관련 문제는 실질적으로 합의하지 못한 채 중-러 관계 강화에 그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중국이 표면상일지라도 사우디와 이란 사이를 성공적으로 중재해 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중국의 중재 외교의 국제적 영향력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사회에서 중재자의 역할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중국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지만 차후 중국이 보다 안정적, 성공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을 때 국제 정세에 가지고 오게 될 변화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Editor 장유정, 이경민, 유효정, 신성은, 박희상, 김예림, 장윤수, 노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