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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이피는섬 Apr 24. 2022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

진정한 마흔 살

이번 주에만 두 가지 계획을 세웠다. 

하나는 밀가루 음식 2주간 끊어 보기, 다른 하나는 영어 일기 쓰기.


이 계획을 주위 사람들에게 공표했더니 '밀가루 음식 끊기'에 대해선 그럭저럭 긍정적인 반응들이었다.

그런데 '피부 좋아진다더라.',  '다이어트되겠네.', '나도 해볼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금세 '그거 지속할 수 있겠어?', '밀가루 들어간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면서 내 도전이 조만간 실패할 거라는 표정들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그나마 공감을 얻은 편이다. 


영어 일기를 쓰겠다는 말에는 황당하다는 표정이 돌아왔다. 

그 표정 속의 대사들은 아마도 '아직도 영어에 미련이 남았어?', '그 나이에 영어 해서 뭐하려고?' 그런 것들 같았다. 차라리 소리 내서 나한테 말했으면 대답을 했을 텐데 영어 일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들이 없었다. 대신 자기들끼리 요즘 파파고와 구글 번역기가 참 잘되어 있다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뿐. 


약간은 무시당한 듯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뭐 내 모든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고 말았다. 그러고서 나는 인터넷 서점에서 영어 일기 책들을 검색해 보다가 성인용 영어 일기는 너무 어려워서 초등학생용 영어 일기 책을 샀다. 짧은 일기가 제시되어 있어서 따라 써 볼 수도 있고 그림도 큼직하게 들어가 있고, 그림과 단어를 선으로 연결해서 맞추는 퀴즈도 들어 있는 책이었다. 이 정도면 내가 어렵다고 중간에서 포기하지 않을 만한 책일 것 같다. 일단 이걸로 짧은 일기 쓰기 패턴을 좀 익힌 뒤에 진짜로 내 문장으로 하루 한 줄 이상 영어 일기를 써볼 계획이다.


쳇, 난 이렇게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나름 계획도 있는데 그 반응들은 뭐야? 머리로는 꼭 이해받고 응원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뒤돌아 생각해보니 서운함인지 기분이 상한 건지, 아무튼 그런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있었다. 괜히 그 모임에서 말을 했다 보다. 뭐든 긍정적인 면을 얘기해 주고 응원해주는 친구들도 있는데 거기서 말할걸 싶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동안 의지박약의 모습을 많이 보였기 때문인가 싶은 반성도 들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조금씩 해 본 운동만 해도 열 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운동은 없다. 굳이 찾자면 걷기? 

취미도 '이거 배워 볼까 싶어.' 했던 것들이 스무 개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림, 사진, 살사댄스, 도자기, 낚시, 스쿠버다이빙...  더 심한 건 그렇게 말하고 실제로 한 번이라도 실행해 본 것은 다섯 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어학은 일본어와 영어를 왔다 갔다 하며 결국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공부했다가 다시 놓았다가 또 다른 방법으로 해봤다가 놓았다가 그런 식으로 10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엔 JLPT나 TOEIC, TOEFL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아서 나를 좀 업그레이드해보자 하는 원대한 꿈이었는데 이미 취업을 한 상태라 절실함이 없었는지 흐지부지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외국에 나가서 프리토킹할 수 있을 정도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도전! 하지만 곧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왜 아직도 나는 영어 공부를 해보려고 하는 걸까? 그것도 뭐 대단한 것도 아닌 초등학생용 영어 일기 책을 사서 일단 따라 쓰기를 해가면서 말이다. 


'그거 해서 뭐하려고?'라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은 없다. 뭘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 내 대답은 '그냥 해보고 싶어서'이다. 그냥 해 보고 싶으니까. 

그냥 해보고 싶은 일을 하는 건데 주위에서 그럴 바엔 다른 무언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거나 아무튼 어딘가에 소용이 있는 일을 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다고 꼭 무언가에 소용이 되는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리고 누가 아나? 매일 영어 일기 10년을 쓰다 보면 10년 후에 내 영어 실력이 엄청나질 수도 있는 일이다. 무엇이든 10년을 하면 전문가라고 하는 말도 있으니. 

10년 후에 영어를 잘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니 엄청 멋질 것 같다. 아직 건강하게 어느 나라든 여행할 수 있는 나이일 것이고,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충분히 그 능력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영어가 아닌 다른 무엇이라도 지금 시작해서 10년 경력이 쌓이면 그땐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일도 하고 다른 사람들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물론 지금까지 나의 전적을 보면 또 이렇게 멋진 꿈만 꾸고 얼마 못 가 흐지부지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여전히 난 하고 싶은 게 많다. 그리고 더 좋은 건, 아직도 철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좋으니까, 해보고 싶으니까 한 번 해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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