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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이피는섬 Feb 08. 2023

힘든 시간을 보내는 법

에세이가 아닌 그냥 일기

작년 12월 반려묘 여름이가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갔다.


명확한 병의 원인도 치료법도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여름이를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매일 퇴근길에 면회를 하면서 그 몇 주 동안 마음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여름이는 어떤 날은 모르는 사람을 보듯 멍하니 있었고 어떤 날은 품에 파고들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하는 것 같았다.


물도 밥도 먹지 못하던 여름이는 코에 관을 끼우고 나중엔 배에 구멍을 내서 관을 끼우는 수술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여름이를 더 고통스럽게 한 것 같아 마음 아프지만 그때는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싶었다.

수술을 하고 이틀 뒤, 혈압이 계속 떨어지는 여름이를 병원에서 그만 데려가라고 했다. 여름이를 데리고 추운 새벽길을 걸어 집에 왔다. 고통스러워하는 여름이 곁을 지키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쓰다듬어 주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여름이가 편안해지길, 모든 고통을 가져가 주시길. 그저 그것만.


몇 달이 지났지만 여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 생각이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름이의 촉감은 벌써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오래 함께했는데, 화장하러 가기 전 이미 굳어진 여름이의 발을 한번 꾹 잡았던 촉감만 생생하다. 딱딱하게 굳어서 너무 낯설었던 그 느낌.


연차를 쓰고 혼자서 여름이를 화장하고 왔다. 그리고 출근해서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3일 뒤 긴장이 풀렸는지 몸살이 시작됐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달이 넘게 낫지 않는 감기. 장염. 체증.

다시 감기.


괜찮다, 이 정도야.

벌써 두 달이 넘었지만 이것보다 더 오래 아프다고 해도 괜찮다.

그냥 이 모든 과정이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과정이 전혀 억울하지도 힘들지도 않다.  


몸이 아픈 것보다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훅 덮쳐오는 감정이 무서웠다.

'이제 여름이는 내 옆에 없어'라는 자각이 날카롭게 가슴을 찔렀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그러면 그 순간 두려움과 슬픔이 세상을 덮어 버린다. 모든 색을 가져가 버리고 내 세상에는 회색만 남는다.


여름이가 병원에 있을 때, 매일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을 때, 매일이 너무나 두려웠었다. 그 두려움을 외면하려고 애썼다.


여름이가 떠난 지금은 슬프지만, 두려워하지는 않아도 되는데 자꾸만 그때의 두려움이 다시 찾아온다. 이미 없으니 없어질 걸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때의 그 두려움이 계속 찾아오는 게 희한했다.


그래도 한 가지, 힘든 마음을 이겨내는 법을 찾았다.

그냥 여름이를 여전히 사랑하는 것이다.

내 곁에 없어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덜 슬퍼졌다.


잊히는 존재가 아닌, 내가 여전히 사랑하는 존재로 둔다.

이제 잊어야 하는 과거가 아닌 여전히 사랑하고 여전히 나를 웃게 하는 여름이로 남겨 두기로 했다.

 

불쑥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이 떠오르면 마음속에서 그 장면을 내가 여름이를 꼭 안아주는 장면으로 바꾼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렇게 여름이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여름이는 여전히 나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가 된다.


슬픔과 두려움이 다섯 번 찾아오는 날에는 다섯 번 마음속으로 여름이를 안는다.

열 번 찾아오는 날에는 열 번, 열다섯 번 찾아오는 날에는 열다섯 번...

그렇게 몇 번이고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슬픔과 두려움이 지는 거다.


조금은 슬프다. 하지만 계속 사랑하면 많이 슬프지 않다.

계속 사랑할 수 있으니 두렵지 않다.


아프지만 계속 운동도 하고 새로운 것도 배우고, 사람도 만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언제까지 몸이 아플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뭐, 괜찮다.

그저 겪어야 한다면 기꺼이 그러겠다고 생각한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법도 그렇게 하나 더 배웠다.

내가 여전히 사랑하는 여름이는 지금도 나를 사랑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기특한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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