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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석 Nov 30. 2021

단협, 그 뒷 이야기

 

 흔히들 단체협약을 노동조합의 꽃이라고 합니다. 교원노조법에 근거해서 전교조가 사용자(교육감)에게 단협 체결을 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고 교육감은 이에 성실하게 응하도록 법적 의무로 규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또 단협으로 체결된 사항을 교육청이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거나 거부할 경우 사안에 따라 형사 처벌이나 민사 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어서 강력한 구속력을 가집니다. 그만큼 교육청이 단협 이행의무를 가지고 있고 부담감도 느낀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전교조에서는 교육환경 개선, 교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최대한 많은 것을 요구하려 하고, 교육청은 최대한 단체협약을 늦게 맺으려 하거나 낮은 수준에서 체결하려고 발버둥 칩니다. 여기에서는 지금까지 어렵사리 진행 중인 단협 과정과 9번에 걸친 실무협의 속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뒷목 당기는 장면도 몇 가지 있습니다. 


6년 만에 재개된 단체교섭그러나 새로운 요구를 하지 말라는 대구교육청


  지금 진행 중인 대구교육청과의 단협은 원래 2015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전교조 대구지부는 250여 개 조항을 바탕으로 대구교육청에 단협 개시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2016년, 전교조가 법외노조 재판 2심에서 패소하자 대구교육청은 발 빠르게 전교조와의 관계를 끊습니다. 전국에서 제일 빠르게 지부장을 해고하고 기존 단협도 해지합니다. 더불어 진행 중이던 교섭도 중단합니다. 


  2020년 9월 대법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재판을 승소하면서 전교조 대구지부도 단협 재개를 요구합니다. 다만 6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학교 현장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조합원들의 요구도 다양해졌습니다. 그 당시 있었던 제도나 사업이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사업이나 업무들이 많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또 온갖 갑질이나 불합리한 상황에 억눌렸던 유치원 교사, 보건교사, 영양교사들이 대거 조합원으로 가입하면서 이들을 요구를 새로 담을만한 단협안 마련도 필요해졌습니다. 기존 2015년 요구안으로 2021년에 단협을 그대로 진행할 수 없는 건 당연했습니다. 특히 단협 중단이 법외 노조라는 국가폭력에 의해서 발생한 일인 만큼 그 책임도 국가기관과 대구교육청이 책임져야 할 일입니다. 


  2020년 하반기 몇 달 동안 많은 교섭위원들이 저녁마다 머리를 맞댄 끝에 기존 요구안에 163개 조항을 추가해 수정안을 만들었습니다. 기존 조항도 현 상황에 맞게 내용을 일부 수정합니다. 그러자 교육청은 단협 수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합니다. 사실상 새로운 단협안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전교조 대구지부에서는 6년 전 교섭안이 지금 현실에 맞지 않고, 교섭 중에도 조항을 수정하거나 추가, 삭제하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니 수정안을 받으라고 요구합니다. 교육청 담당자는 차라리 새로운 교섭 절차에 돌입하자고 요구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특히 교원노조법 개악으로 교섭 창구 단일화가 되어야 하고 대구교사노조 등 다른 노조가 합의해주지 않으면 단체교섭 자체가 시작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우리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인 건 당연했습니다. 교육청과 지리한 줄다리기가 이어진 끝에 2020년 말 지부장과 교육감 면담 이후 수정 요구안을 교육청에 제출하게 됩니다.


  이후 올해 6월까지 교육청과 6차례에 걸친 사전 협의가 진행되었습니다. 교육청은 신설 조항이 너무 많다며 줄여 달라는 요구를 끝없이 합니다. 조항별로 심사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내심 전교조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줄이려는 목적도 있었을 겁니다. 다른 지부의 교섭요구안이 400-500개가 넘는다는 걸 감안하면 우리 요구안이 많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급한 학교 현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청 요구를 일부 수용해서라도 새로운 단협 체결에 돌입하자는 현장 조합원의 요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국 여러 차례에 걸친 단협팀 내부 논의와 각 위원회별 논의 끝에 수정안 378개 중 90여 개를 줄인 293개의 요구안을 교육청에 제출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7월 2일 교육청과의 교섭의제를 확정합니다. 그리고 8월 말부터 본격적인 실무협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요구안에는  <노조활동 보장>, <교원인사 및 근무조건 개선>, <성평등 및 모성보호>, <교원 복지후생 및 교권신장>, <교원업무경감>, <교원 전문성 향상 및 연구활동 지원>, <교원여건 개선 및 학생복지와 학생인권>, <직업, 보건, 특수, 영양, 유치원 관련 교육 및 근무여건 개선>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8월 5일 본교섭 개회식이 시작되었고, 8월 말부터 거의 매주마다 15개에서 20개 조항을 의제로 교육청과 실무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 교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대구교육청교육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대구교육청


  처음 진행된 실무협의에서 전교조와 대구교육청은 <체육과 실습 담당교사의 피복비 예산 편성>, <특근매식비의 용이한 사용>, <학운위에 학생 대표 참여 보장>, <학교 예산 편성 시 구성원 의견 수렴>, <매 학기 학교 대청소 용역 예산 편성>, <학교 냉난방기 세척 시 전문업체에서 실시>, <교육활동 중 사고 시 교사에게 구상권 청구하지 않기>, <학생사고 시 교원 소송 시 교육청 고문변호사의 법률 자문 지원하기>, <목적사업비 최소화와 학교기본운영비 확대>, <매점과 자판기 임대수입금을 학생자치나 학생복지에 우선 사용하기> 등의 요구안을 가지고 협의를 시작했습니다. 


  교육청은 이중 ‘체육·실습담당 교사의 피복비 예산 편성’을 거부합니다. 구체적인 세부규정이 없고 교육부에 질의 중이라는 이유입니다. 반면 다른 교육청 대부분은 체육교사나 실습 교사의 피복비 지원을 합의했습니다. 교육부가 불가능하다고 막아 놓은 사항도 아니고 교육청 재량권으로 충분히 지원할 수 있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거부합니다. 또 학교에서 시간 외 근무를 하면서도 제대로 특근매식비를 쓰지 못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특근매식비 절차 간소화’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청은 이것도 일정한 절차가 필요하고 교육부의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합니다. 일부 조항은 이후 실무교섭에서 수정 합의를 하기도 하지만 실무협의 때마다 이러한 일은 반복적으로 이어집니다.  


  또 ‘교원의 직무수행, 교육활동 중 고의, 중과실 사고를 제외하고 배상과 보상을 교육청이 책임지고 교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교권 보호를 위한 핵심적인 조항이고, 다른 교육청 대부분이 합의한 조항이었지만 거부합니다. 교육청은 ‘배상과 보상을 책임진다’는 말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말합니다. 결국 실무교섭에서 ‘교육청’이라는 말 대신 ‘대구학교안전공제회가 책임진다’는 말로 바꾸어 수정 합의를 합니다. 


  ‘학생사고로 인한 소송 시 해당 교사에게 교육청 고문변호사의 자문을 지원한다’는 조항에 대해서도 교육청은 교육청 자문변호사가 교육청을 위해 고용된 변호사이고, 교사에게 손해보상을 청구할 수도 있어서 이해충돌 우려로 합의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교육청에 고용된 변호사가 학교현장 문제 해결이 아닌 교사에게 소송 걸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다그쳤습니다. 대구교육청이 대구지역 교사 전체를 적으로 돌릴 셈이냐고 분노하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교사들이 일상에서 수업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곤란한 지경에 처했을 때 학교 관리자나 교육청이 책임져 주지 않는다면 누가 책임감 있게 교육활동을 할 수 있겠냐고 달래기도 했습니다. 교사라면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불의의 사고에 대해 교육청이 책임지고 공감하기보다 법리적 판단에만 매몰되어 심각한 교권침해 문제를 외면해서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 조항은 실무교섭에서 ‘교육청 법률지원단으로부터 자문을 받고 소송비용을 보전한다’는 내용으로 수정 합의를 합니다.  


3. 사립학교 지도감독인권성평등을 거부하는 교육청


  지금까지 교육청이 주로 거부하는 조항들을 보면 <사립학교 지도감독>, <성평등>, <인권> 관련 내용이 많습니다. 사립학교 지도감독은 사립 재단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성평등과 인권은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 단협에서 ‘사립학교 교원 지위와 관련된 조항은 사립학교에서 이행될 수 있도록 지도한다’는 조항은 다른 시도에서 모두 합의된 사항이지만 대구교육청만은 사립학교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합니다. 그러나 대구는 거의 매년 사립학교 갑질, 교사 인사채용비리가 발생하는 지역입니다. 또 사립학교법에는 교육청의 사립학교 지도감독 권한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립 교원의 근로 조건과 관련된 법인 정관 제개정시 학교 구성원 의견을 수렴하도록 지도한다’는 조항이나 ‘사립학교 법인 정관이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지도한다’는 요구도 사립학교법에 해당 법률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합니다. 사립학교도 민주적으로 구성원 의견을 수렴해야 하고 사립 재단이 학사 운영에 마음대로 개입해서 안된다는 것은 법 조문 이전에 상식입니다. 물론 이 조항들도 다른 시도교육청이 전부 합의한 내용이지만 대구교육청만은 같은 말만 반복하며 거부하는 일이 이어집니다. 


  또 교육청은 학생 인권이나 성평등이 포함된 조항에 대해 상당 부분 거부감을 보입니다. 성평등이라는 용어 대신 양성평등이라는 말로 바꾸자고 하거나(양성평등이라는 말 자체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포함한 개념이고 여성단체나 진보적 교육단체에서 일찍부터 문제제기를 한 용어입니다.) 성차별이라는 용어에 대해 삭제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대구는 다른 지역에 비교해 성폭력 문제 전담부서나 담당관도 없고, 담당자도 적게 배치된 지역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운영 중인 성폭력 사안처리지원단도 대구는 비교적 최근에야 구성되었고 이마저도 실효성 있게 운영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특히 학생 인권, 교직원 인권 등 유독 인권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거부감을 보입니다. 대구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자체를 반대하는 지역입니다. 다른 지역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대해 합의할 동안 우리는 그런 요구조차 담지 못했습니다. 조항 중에 인권이라는 용어가 있으면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상호 존중으로 바꾸자고 합니다. 다른 지역에서 대부분 사라진 교문지도나 교외생활지도도 대구교육청은 여전히 필요하다며 고수합니다. 학교별 상황이 다양하고 순기능이 있다는 이유입니다. 9시 등교 요구도 학교장 결정사항이라는 이유로 거부합니다. 교육청은 대구의 인권 상황이 많이 개선되었으니 필요 없다며 뭉뚱 거리지만 우리는 그럴 때마다 스쿨미투 등 인권침해 사례를 들어 대구교육청에 인권 개선 의지가 없다며 다그칩니다. 


4. 학교장 입장과 부서 칸막이를 이유로 거부하는 업무 정상화.


  단체교섭의 가장 큰 목적은 교원의 노동조건 정상화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수많은 업무들 중에는 형식적이거나 관행적으로 하는 것들도 많고, 보여주기식 실적성 사업도 적지 않습니다. 대구교육청은 학습지도안 결재 폐지는 수용했지만 초등의 주안 폐지는 거부합니다. 심지어 유치원은 주안 결재가 필요하다고 우기기도 합니다. 또 ‘청소년단체 업무를 학교 공식 업무에서 배제’하라는 요구나 ‘학생 등교시간이 교사 출근시간보다 앞서지 않게 하라’는 상식적 요구도 거부합니다. 모두 학교장 결정사항이라는 이유입니다. 또 ESD, 인문 동아리 등 교육청 지정 동아리 폐지에 대해서도 거부합니다. 학교에서 희망하는 교사가 동아리를 담당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사가 지정 동아리는 부담스러워하고 그것이 있는 한 누구라도 맡게 되는 현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말입니다. 


  적지 않는 조항들이 부서 칸막이를 이유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학교 화장실과 급식실 등에 휴지 등 소모품을 비치하는 문제도 학생복지인지, 위생인지, 소모품인지 등 성격 규정에 따라 체육보건과, 생활지도과, 회계정보과 등 담당 부서 논란을 겪고 자기 부서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하기도 합니다. 여러 부서에 걸친 일이라면 사전에 제출된 단협 요구안을 미리 검토해 협의를 하면 될 일입니다. 


5. 나가며


  올해 하반기 동안 전체 단협 요구사항 중 절반 정도가 실무협의에서 다루어졌습니다. 이중 원안 합의가 된 조항은 많지 않습니다. 어렵사리 수정 합의가 된 조항들 중에서도 교육청 요구에 따라 순화된 것도 적지 않습니다. 미합의된 조항들과 앞으로 남은 요구안 협의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진통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바람대로 합의를 하지 못하는 조항들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어렵사리 단협이 체결된다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감시의 눈길이 느슨해지거나 이행을 철저히 요구하지 않는다면 교육청이나 학교 관리자들이 단협을 무시하거나 지키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쉽지 않은 길이고 힘든 일이지만 수많은 전교조 활동가들이 단협안을 만들고 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체협약이 학교를 바꾸어내고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한 종착역이 아니라 그 시작이 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요구하지 않으면 변화하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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