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과 2010년의 멸망

닮은 듯 다른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과 검정치마의 Antifreeze

by ays


최근 검정치마가 그의 데뷔앨범 바이닐 예약판매를 시작했다. 한국 인디 음악에 있어 지대한 족적을 남긴 아티스트인만큼, 많은 이들이 기다렸던 소식이었다. 무려 2010년 한국대중음악상 최다 노미네이티드에 빛나는 앨범인 <201>에는 유독 주목할만한 트랙이 있다. 바로, 5번 트랙 Antifreeze다.


image.png



백예린의 리메이크, 최근엔 공룡짤 등과 같은 이슈로 인해 당시엔 태어나지도 않았던 세대의 인기를 얻고 있는 곡이다. 기본적으로 이 곡은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이 곡 속에서 ‘지구 최후의 날’은 진정한 의미의 신체적, 물리적 재난이라기보다 일반적인 로맨스의 배경처럼 기능한다.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일 거야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로



가사 속에서의 두 남녀는 멸망이라는 어떠한 특정한 상황과 마주한다. 영화서도 볼 수 없던 눈보라가 불고, 낯익은 거리들이 거울처럼 반짝여도(얼어붙기 시작한다) 니가 건네주는 커피 위에 살얼음이 뜬다(물리적 재난의 시작이다). 다만 이들의 멸망은 진짜 재난이라기보다 하나의 가정이고, 결국 이것은 가사 속에 등장하는 둘의 사랑을 더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가 된다. 또한, 이 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라는 대목이다. 비록 의도치 않은 환경적 재난이 닥쳤을지언정 사랑이라는 명목 하나만으로도 그것을 이겨내리란 의지가 느껴지는 가사다.




이쯤에서 지금으로 되돌아온다. 검정치마가 2010년의 문제적 인물이었다면 2020년대는 이찬혁이 아닐까 싶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 3관왕에 빛나는 이찬혁은 결국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자신을 증명해내며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 있다. 그의 빛나는 시작에 대해 다룬 글이 있으니, <에러>를 재생하며 읽어보길 바란다. 완벽히 이찬혁의 대표곡으로 자리잡은 '멸종위기사랑'을 읽어보자.


image.png



왔다네 정말로 / 아무도 안 믿었던 / 사랑의 종말론 / It's over tonight


이찬혁이 노래하는 멸망은 커피에 살얼음이 뜨거나, 세계가 얼어붙는 종류의 멸망이 아니다. 그의 멸망은 '사랑이 멸종한 세계'다. 2025년의 멸망은 환경적인 요소가 아니라, 사랑이 부재한 상태 그 자체인 것이다.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대" 그러니까 사랑은 이제 소문으로만 존재하고 실재하지 않는 어떤 유령 같은 존제가 된 것이다. 검정치마의 멸종은 외부 세계의 종말이고, 이찬혁의 멸종은 감정의 종말이다. 십여 년의 세월 사이에 종말은 바깥에서 안으로 이동했다. 검정치마의 antifreeze가 절망 속에서도 살아남는 사랑의 생명력을 노래했다면 이찬혁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image.png


'멸종위기사랑'의 가사 중 "사랑의 종말론"이 "사랑해! 정말로!"로 읽힌다는 주장은 결국 사실이었다. 다만,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추측을 더 하고 싶다. 어쩌만 '사랑해 정말로'는 사랑love해ing가 아니라 사랑love해!!!!do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의 노래는 우리가 정말로 사랑을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가장 유쾌하게 노래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이 멸종하길 두려워하는 예술가의 몸부림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2010년의 우리가 바라본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우주로 여행을 갈 수도 (가는 이들도 있긴 하다)없지만 세상은 점점 시들해져 간다. 우리가 직면해야 할 문제들이 많고 그 와중에 안일하게 '오직 사랑만이 이긴다' 같은 힘빠지는 문장같은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에서든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고 보듬어야하는 감정은 필요하다고 느낀다. 2025년의 이찬혁이 짚어준 것처럼, 무언가 단단히 부재했고 우리는 그것을 되찾아야한다. 2010년의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가 마인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예술은 어디까지 인간을 치유하는가, 영화 <햄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