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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크림한스푼 May 06. 2022

It's okay to not be okay

나도 테라피를 해봐도 될까  


    나 이 근처에 자주 오는데. 라며 무심코 건넨 친구의 한 마디를 통해,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테라피스트

(therapist)의 사무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친하게 지내온 친구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테라피(therapy)를 해오고 있다는 사실도. 나는 항상 궁금했다. 사람들은 상담실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나도 내담자가 되어봐도 될까. 아픔과 힘듦이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나의 아픔과 힘듦이 테라피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친구의 경험담은 내 호기심을 실행력으로 바꿔주었고, 친구와 그날의 대화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테라피스트 Sean과의 만남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어로 상담이라고 번역되는 카운슬링(counseling),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지 고민되기에  글에서는 그냥 테라피라고 부르고자 하는 테라피(therapy)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상담이 구체적인 문제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상담 치료를 의미한다면, 테라피는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를 고민하게 하는 상담과정을 뜻한다. 그래서 테라피는 종종 상담보다 장기적으로 진행될  있고, 개개인의 특성에 초점을 맞춰서 개인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나  특정한 행동 패턴을 보이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물론 상담도 테라피도 모두 처음이었던 당시의 나는 이런 차이를 알지 못했고, 호기심과 설렘, 어색함과 긴장감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Sean 만나러 갔다.


Sean과의 첫 만남

    Sean의 상담실은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푹신해 보이는 소파와 소파 옆에 놓인 크리넥스.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테라피스트. 테라피가 처음이라는 내가 어색해하지는 않을까 신경을 써 주던 Sean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나는 첫 세션이 그저 재미있기만 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데 그 사람이 아주 온전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다니. 그래서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머뭇거림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니. 게다가 우리가 지금 나눈 대화의 내용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까 와 같은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니.

   

괜찮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다니

    처음 몇 번의 만남 동안에는 MBTI나 애니어그램 같은 여러 성격유형검사를 해봤다. 검사 결과를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긍정적이고,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다. 나 스스로 생각해봐도 그랬고, 주위 사람들이 종종 내게 그렇게 이야기해줬고, 여러 성격유형검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그런 내게 Sean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Its okay to not be okay)라고 이야기해 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 문장은 그 이후로 괜찮지 않은 순간들이면 내게 가장 먼저 찾아와 위로가 되어주고는 했다.


스스로에게 친절한 마음

    Sean은 또 내게, Self-compassion이라는 단어를 알려줬다. 스스로에게 친절한 마음이라고. 궁금한 마음에 좀 더 찾아보니 한국어로는 자기 공감 혹은 자기 자비라고 번역되는 단어였는데, 자비의 의미에 대한 어느 설명이 내 시선을 끌었다. 자비(慈悲)는 원래 불교 용어로 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고, 는 대상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여 상대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니까 자비란 원래 타인에게 보내는 따뜻한 마음을 의미하는데, 자기 자비란 그 따뜻한 마음을 나에게도 보내보는 것이다. 나는 내 사람들을 참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들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나 자신에게만 너무 높은 잣대를 들이밀었던 건 아닐까. Sean과 함께 심리학 논문에서부터 불교 철학에 관련된 글들, 그리고 자기 자비와 자존감, 자신감 등의 개념을 비교한 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새로운 단어를 배웠다. 그리고 새로운 단어를 배우는 일은,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친절한 그 마음이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사람이 되었다.


초조함과 당당함 사이에서

    한창 구직 인터뷰를 보며 조마조마해하던 시기에 Sean을 만난 어느 날에는, 세션 중반 즈음에 그가 갑자기 내 말을 멈췄던 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오늘 이곳에 와서 직업을 구하는데 집중해야 해요 (Focus on the job)라는 말을 벌써 열다섯 번 썼다고 알려줬다. 이것에만 집중하면 된다라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옭아맸던 것은 아닐까. 지금이 내 삶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내 전부를 내걸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게 맞는 직업이라면 내게 선물처럼 찾아오겠지라고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을 때, 나는 면접관 앞에서 조금 더 당당한 구직자가 될 수 있었다


관계에 대한 고민들

    여러 번의 세션에 걸쳐 Sean과 나눴던 이야기 중 하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연인관계에 대한 이야기. 당연히 학교에 다니고 당연히 공부를 했던 것처럼, 당연히 연애를 하고, 당연히 결혼을 하고, 당연히 엄마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언젠가부터 그 당연히라는 단어에 의문을 제시하고 있었다. 페미니즘, 비혼 주의, 주체적 여성, 이런 단어들로 설명해 볼 수 있는 의문이었다면 조금 멋있었을텐데, 내가 느끼는 솔직한 감정은 혼란과 두려움이었다. 낯선 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나를 변하게 한 것 같았다. 혼자서 유학생활을 한다는 것이란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지에서 살아가는 것 이상을 의미했다. 혼자서 유학생활을 한다는 건 혼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그리고 그 요리 과정에서는 물론, 꽉 잠긴 파스타 소스의 뚜껑을 혼자서 열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 외에도 필요에 따라 때로는 흰 죽을, 때로는 미역국을 끓여 먹어야 하고, 전구를 갈아 끼우거나 가구를 조립하는 일마저도 스스로 해내야 한다.


내 마음을 보듬어 보기

    이 모든 일들을 꿋꿋하게 해내며 지내다 보니, 나는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런 내가 안쓰럽지만 대견스러웠고, 기댈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동시에 독립적인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내가 나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들쑥 날쑥인 나의 마음들 각각을 보듬어보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내가 나를 돌아보는 그 시간들 동안, Sean은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줬다. 그리고 종종 Its okay to not be okay라는 말을 해줬다. 때로는 지금 내키지 않는다면 연애를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Its okay to not date)라는 이야기도.



   

    서른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 Sean과의 마지막 만남이 있었다. 새로운 직장에서의 건강보험과 관련된 외부적 이유에서였다. 돌아보니 2년 반이 넘는 시간을 Sean과 함께했다. 나는 여전히 괜찮지 않은 순간이 찾아오면 당황하고, 내가 세운 높은 기준치를 맞추고 싶어서 동동거리고, 이루고 싶은 어떤 목표 앞에서 초조하고, 당연하지 않은 선택들 앞에서 자주 망설인다. 다만, Sean 과의 대화들을 통해 나는 이런 나의 모습들에 대해 좀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그런 괜찮지 않은 모습들이 있어도 괜찮다고 여길 수 있게 되었다. Sean과의 만남을 그만두는 것은 아주 특별한 친구를 잃어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만남이 끝나고 나는 많이 울었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땐, 내 생일이었다. 올해 생일엔, 유독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준 사람들이 많았다. 또 한 번 삶의 터전을 옮겨간 곳에서 외롭지는 않은지 물어주는 이들 덕분에 외로울 수 없었던 하루였다. 특별한 친구가 되어주었던 Sean과의 만남은 끝났지만, 내게는 여전히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참 많이 고마운 하루였다. 이들 덕분에, 테라피스트가 없어도 나는 잘 살아낼 것이다. Sean을 만나기 전에도 그랬듯이. 그러다 어느 날엔가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찬찬히 돌아보고 싶어 진다면 또 다른 테라피스트를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람일지 기대된다. 그때의 내가 여전히 Its okay to not be okay라는 말을 잊지 않고 살고 있으면 좋겠다.



수채화 그리기는 최근에 생긴 취미 생활이다 (202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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