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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크림한스푼 Apr 23. 2022

이상한 세상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중

세상이 최초로 ‘이상하게’ 다가온 날을 기억한다.

    어느 책을 읽다가 “세상이 최초로 ‘이상하게’ 다가온 날을 기억한다.”라는 문장에 시선이 멈췄던 적이 있다. 이어진 작가의 고백이 무엇이었는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다른 누군가에게도 세상이 최초로 이상하게 다가온 날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았던 기억만큼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상한 세상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은 2003년 3월 시작된 이라크 전쟁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다. 어느 보통의 저녁 날, 티브이를 통해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세계사라는 과목을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배우기도 전의 나이였던 내게 전쟁이라는 단어는 한 때 유행했던 먼 나라 이웃나라라는 만화책에서 봤던 십자군 전쟁이나 세계 1, 2차 대전처럼 오래전에 어디선가 발생해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사건쯤일 뿐이었다. 전쟁 이후 휴전 중인 국가에 살고 있었으면서도 여전히 그 전쟁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시절쯤의 옛날에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일상을 보내는 동안 지구 반대편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웠다. 21세기에도 전쟁이 벌어지는 세상은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조금 더 커서 매달 용돈을 받는 중학생이 되었을 때, 월 2만 원이면 지구 반대편의 한 아이가 건강하게 교육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어느 NGO의 홍보문구를 봤다. 2만 원은 내게 큰돈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일상의 거의 모든 부분을 함께 하던, 그래서 2만 원이라는 후원금도 함께 내어줄 것 같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의 친구들은 매달 3천 원씩 돈을 모으기로, 그리고 2만 원이라는 후원 금액을 맞추기 위해 매달 한 명은 5천 원을 모으기로 했다. 5천 원을 내는 사람이 종이 통장을 가지고 있다가 다음 사람한테 전해주는 방법으로, 우리는 매달 꼬박꼬박 후원금을 전달했다. 나와 친구들이 모은 돈으로 한 아이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매달 1일마다 설렜다. 이상한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했던 첫 번째 기억이다.




    그즈음의 나는 종종 세계 평화를 상상해봤던 것 같다. 전쟁이 끝나면, 조금 더 많은 아이들이 교육의 기회를 갖게 되면, 세상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어디선가 꿈은 의사, 판사, 교수처럼 이루고 싶은 직업에 대한 장래 희망이 아닌,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에 대한 소망이 되어야 한다는 멋진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나의 꿈은 세계 평화가 되었다. 무엇이 되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하는 일이 세계 평화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좋겠다는 꿈을 꾸는 당찬 십 대였다.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갈 때마다 세상의 이상한 면면들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처럼. 최근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서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하는 전쟁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전쟁들이 카메룬, 에티오피아, 예멘, 콜롬비아, 멕시코 등 여러 나라에서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되고 있다는 건 어쩌면 조금 더 이상했다. 그런가 하면 빈곤은 식량 부족이 아니라 식량의 불평등한 분배가 문제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구에는 전 세계 인구 모두가 먹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데, 누군가는 여전히 굶어 죽는다니. 게다가 전쟁과 빈곤은 이상한 세상의 서막에 불과했다.


    나는 사람들이 일하다 죽는지 몰랐다. 가끔 일하던 노동자가 사고로 죽었다는 뉴스를 봤지만, 이토록 끊임없이 일상적으로 일터에서 사람이 죽는지는 몰랐다. 나는 '이동권'을 제약당하는 사회적 약자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일터에 나가고, 친구를 만나고, 필요하면 병원에 가는 일상생활을 하기 위한 이동권을 보장받고자 하는 일이 이렇게나 오랫동안 투쟁을 해왔어야 하는 일인지 의아했다. 정치적, 종교적, 혹은 천재지변과 같은 이유로 고국을 떠나 한국에 망명을 온 온 사람들 중 1% 미만의 사람들만 체류 자격을 인정을 받고 한국에 계속 머무를 수 있게 된다는 사실도 이상했다. 갈 곳이 없어서 한국까지 왔는데 또 어디로 가야 할까라는 의문을 마주할 때면 내가 다 막막했다. 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데 왜 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논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른 논쟁거리들을 뒤로하고 어째서 개인들 간의 사랑이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할수록 이상할 따름이었다.




    이상한 세상에 대해 알게 될수록 이상한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이유들이라서 그렇지,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었다. 중대재해 사망 사고를 막기 위한 방안들은 기업 이익과 맞닿아 있는 문제였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국가 예산의 재편성이 필요한 문제였다. 난민 지위 인정은 국가안보와 관련 있는 문제였고, 동성결혼 법제화는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종교단체들의 반대에 맞서야 하는 문제였다. 세계 평화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상한 문제들에,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누군가 꿈을 물으면 세계 평화라는 대답을 하는 대신, 그냥 웃어넘기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평화롭지 않은, 그러니까 여러모로  이상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이상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는 자꾸만 내가   있는 일은 없을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책을 읽어보기도 했고,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도 했으며, 이상한 세상을 심각한 고민의 대상으로 삼는  다른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렸다. 누군가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냥 모르고 지내는   편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뚜렷한 신념이 있는 것도 대단한 윤리의식이 있는 것도 아닌 나는  모든 누군가의 말들에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하는 공부가 세상에 도움이 될까에 대한 질문 앞에서 자신이 없어졌고, 목소리를 내어보려다가도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목소리가 존재하는  같아서 소심해졌다는 것이다. 때때로 그냥 모르는 채로, 그러니까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채로 지내보기도 했는데 그건  왠지 조금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이상한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 일지에 대해 고민하며 산다. 세계 평화라는 단어는 상상 속의 단어로 묻어둔 채, 내 내면의 평화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리고 마음이 조금 넉넉한 날에는 내 주위의 평화를 찾기 위해 노력하며 지낸다. 그러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날들에는 정말 뭐라도 해본다. 여기에는 아침에 일어나 평소에 자주 듣는 음악 대신 BBC 방송의 세계 이슈를 듣는 일이나, 어느 시민단체에서 보내온 서명 요청 메일을 무심코 삭제해버리는 대신 링크를 열어서 이슈에 대한 지지 서명을 하는 일이 포함된다. 그리고 재활용을 평소보다 열심히 하는 일도, 육류 소비를 줄이고 채식 식단을 시도해 보는 일도, 샤워를 하는 동안 물을 아껴 쓰려고 노력하는 일도 포함된다. 또 평소보다 더 열심히 논문을 써서 보람찬 하루를 보내보는 일도, 여전히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학생에게 힘든 일이 있는지 먼저 물어보는 일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 지내냐는 연락을 해보는 일도, 고마운 사람들에게 그 고마움을 표현하는 일도 모두 포함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지 못한 나에게 너그러운 편이다. 이토록 이상한 세상에서 뭐라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그 자체로도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 멈춰서 종종 세상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럼에도 이상한 세상을 부정하거나 외면하기보다 그 세상 속에서 뭐라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당신 역시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상한 세상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 또 다른 당신에게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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