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둘째 넷째 주 목요일마다 피자를 먹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초등학교의 강당에 도착해서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일회용 장갑을 껴는 일이었다. 치즈피자를 드시겠어요, 아니면 페페로니 피자를 드시겠어요? 피자와 시저 샐러드, 그리고 콜라 아니면 물. 직업도, 성별도, 나이도 다른 우리들은 그렇게 매달 두 번씩 언제나 조금은 짜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맛의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목요일 저녁을 맞이했다.
피자를 다 먹고 나면, 우리들은 각자 다른 교실로 흩어졌다. 나는 주로 10살에서 13살 사이의 아이들과 함께 했다. “이곳에서는 상대방을 존중하기만 한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뭐든지 해도 좋아.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규칙이 하나 더 있는데, 만약에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싶지 않다면 “패스할게요”라고 이야기하면 돼. 먼저 오늘 새로 온 친구들을 위해서 자기소개를 해 줄 수 있니. 이름과 나이, 지난 이주 동안 있었던 일들 중에 가장 기뻤던 일과 가장 힘들었던 일을 먼저 나눠볼까.” 이 모임을 특별하게 해주는 건, 그다음에 이어지는 다음의 한 마디에 있었다.
“그리고 괜찮다면, 사랑하는 사람 중 누구를 잃었는지 이야기해줄래.”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낸 이들이 모인 이곳에서 나는 모임을 이끄는 자원봉사자 중에 한 명이었다. 자기소개가 끝나면, 우리는 하얀 도화지에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그려보거나, 커다란 나무를 배경으로 한 종이에 추억 잎사귀를 하나씩 달아서 잎이 풍성한 나무를 만들어 보는 등의 활동을 했다. 또 어느 날엔가는 멕시코의 명절인 “죽은 자의 날”을 다룬 영화 코코를 함께 보기도 했고. 매번 그 방법은 달랐지만, 우리들은 매달 두 번째 네 번째 목요일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과, 그들이 그리운 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물론 서로를 안지 오래된 아이들은 둥그렇게 마주 앉자마자 장난을 시작하기에 바쁠 때가 많았고, 처음 온 아이들은 이곳이 낯설다는 눈빛을 숨기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종종 예고 없이 날 것 그대로의 생각들을 들려줘서 내 가슴을 철렁하게 하고는 했다. “엄마가 왜 죽었는지 할머니는 말해주지 않지만, 난 우리 엄마가 약물중독으로 죽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라거나, “저는 슬플 때면 춤을 춰요. 학교에서 댄스부에 가입한 것도 눈치 보지 않고 춤을 출 수 있어서에요”처럼.
같은 시각, 다른 교실들에서는 아이들의 아빠이자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젊은 엄마, 아이의 언니이자 사랑하는 첫째 딸을 잃은 부부, 손녀의 엄마이자 사랑하는 딸을 잃은 할머니가 모여서 그들의 상실과, 상실 이후에 이어지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세상에는 너무 다양한 죽음이 존재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함께 저녁을 먹고 난 어느 보통날,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하거나,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캠프에 참가했던 아이가 사고를 당해서 죽거나,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리던 딸이 끝끝내 약물중독으로 세상을 등지거나.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모두 다 다른 모습의 아픔이지만, 어떤 방식으로인가는 참여자들을 나눠야 했기에, 우리는 죽음의 유형을 나눴다. 배우자를 잃은 사람, 아이를 잃은 사람, 그리고 성인이 된 자녀를 잃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종종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위안이 되었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지 아주 오래되어도 여전히 힘들어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이야기도 함께.
모임의 밖에서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연구자였다. 모임이 끝나고 다시 연구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밤이면 마음이 복잡했다. 나는 자주 내가 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 것은 아닐까, 모임을 더 잘 이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와 같은 고민을 했다. 그러다 가끔씩은 책에서 배운 이론이 현실에서 조금은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열심히 지난날 읽었던 연구의 내용들을 머릿속에서 되새겨보았다. 가장 자주 떠올려 보는 것은, “괜찮아질 거야 (Low person-centered message)”라고 말하는 대신, “힘들었겠구나 (High person-centered message)”라고 말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위로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임을 여러 실험적 연구를 통해 보여준 대인관계 커뮤니케이션 학자 Burleson의 주장*이었다. 그 외에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 남은 가족들은 그 충격과 상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나가야 할지, 그리고 그들의 대화가 남은 이들의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관한 관계 격변 이론 (Relational turbulence theory)*나, 트라우마 이후에 흔히 알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대신, 정신적 외상의 경험을 통해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성장 가능성을 인지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외상 후 성장 (Post traumatic growth)*과 같은 개념들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주 떠올려 보고는 했다.
모임에 다녀올 때마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로서 내 눈앞에 펼쳐지는 커뮤니케이션 현상에 대해, 그러니까 위로와 공감과 갈등과 화해에 대해 어떤 연구를 해야 할지 조금 더 열심히 고민했다면 나는 조금 더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었을까. 모임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조금 더 치열하게 고민했다면, 나는 지금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보다 훨씬 더 자주 나에게 찾아오는 건, 타인의 비극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음에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겉보기에 나는 한 달에 두 번씩 자원봉사를 하는 착한 사람이고, 책에서 배운 이론을 현실에서 적용하고자 하는 괜찮은 연구자였지만, 사실 모임에 다녀올 때마다 나는, 내 사람들과 내 일상을 좀 더 사랑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개인주의자가 되고야 마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임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는 했다. “잘 지내지? 그냥 생각나서.”
세상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은 자주 감당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너무 갑자기 일어나지 않기를 빌어볼까 생각하다, 이내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삶을 온전히 사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온전한 삶을 살아내다가 일어난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결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낙관적인 마음도 함께 지니고서. 백발의 긴 머리를 가진, 한평생에 걸쳐 애도 관련 상담을 해온, 그러니까 내가 알기로 3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죽음과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눠온 모임의 리더 에이블린은 언제나 변함없이 목요일 저녁이면 피자를 먹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해줬었다. “정말로 감당하기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다면, 매주 둘째 넷째 주 목요일 저녁에는 항상 똑같은 피자를 먹고, 익숙한 공간에 모여서, 평소에 하기 힘든 대화를 하는 반복적인 일상이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전에 살던 동네를 떠나서 새로운 동네로 이사 왔고, 모임에 나오던 아이들은 학년이 바뀌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모임을 통해 마음을 다독이고,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모임에 새로 찾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모두가 함께 피자를 나눠먹겠지. 그렇게 반복적인 일상이 온전한 삶의 일부분이 되면, 나의 일상과 그 일상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또 한 걸음 나아갈 용기를 내게 되지 않을까.
참고문헌
*Burleson, B. R. ( 2003 ). Emotional support skill In J. O. Greene & B. R. Burleson (Eds.), Handbook of communication and social interaction skills (pp. 551 – 594 ). Mahwah , NJ: Lawrence Erlbaum
*Solomon, D. H., Knobloch, L. K., Theiss, J. A., & McLaren, R. M. (2016). Relational turbulence theory: Explaining variation in subjective experiences and communication within romantic relationships. Human Communication Research, 42(4), 507-532.
*Tedeschi, R. G., & Calhoun, L. G. (2004). " Posttraumatic growth: conceptual foundations and empirical evidence". Psychological Inquiry, 15(1),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