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이라는 것,

by bokyung



사람에게 쉼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딱히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항상 면역력이 약해서 감기에 잘 걸리는 체질이라 생각했지,

호르몬의 노예로 여성질환들이 나를 유독 괴롭힐 때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저주라고 생각했을 뿐이지

한번도 계획표에 노는 것을 적어본 적은 없었다



그런 "쉼"이 부족해서 오는 병 중에 여성질환 혹은 불치가 불가한 병이 걸린 사람들은,

나처럼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쉬지 않고 소진 할 때 발병한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니 알고 나서도 뭐랄까, 그냥 운이 안 좋아서 걸린 것 같은 느낌이지, 모든 사람들이 쉬지 않아서 병에 걸린다는 것은 100% 로 연결된 것 같다는 생각은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회사를 나가지 않은지, 거의 2달반

나의 증세들을 반추해보면 그 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나아지고 있는 증상과 이벤트를 한번 정리해보자


1. D +15

1) '내가 지금 하는 말의 앞과 뒤가 제대로 연결되기 시작(어두와 어미가 일치하게 끝나는지)'

2) '내가 하고 있는 말이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함인지' 인지 한다

-> 한 문장 안에서 연결되고 기억된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하..


2. D + 30

1) 문장 중간에 '그거'라고 칭하는 단어들의 숫자가 60% 정도는 줄어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ㄴ 새록새록 다시 내 머릿속에 단어들이나 문장들이 새싹처럼 자라나는 느낌이다



3. D + 40

이 정도면 빡센 일까지는 아니여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K 모 회사에 CEO Staff 전략기획실에 지원하였고,

과제 낸 후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면접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주에는 좋은 일이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너무 나를 과대로 생각해서인건가...

과제가 너무 빡셌는지, 사실 면접 전날 이렇게까지 집중이 안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괴로웠고-

계속 쉬고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게다가 면접시간이 오후 4시라 평소 집중하고 싶을 때 먹는 고카페인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고 면접장에 들어갔는데 숨이 콱 막혔다


이직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이렇게 떨 수 있냐는 면접관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망쳐버린 면접은 처음이라 너무 충격적이였다주말에 인사담당자를 통해서 면접에 임한 나의 태도에 대한 사과의 메일을 보내고- 친구의 추천으로 정신과 상담을 갔다


상담결과) 심하지는 않지만, 우울증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고 그리고 불안증세도 어느 정도 있다고 했다

그것들은 적극적인 치료를 요하는 수준은 아니라서 약을 처방받았다



상담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 단어의 기억을 못하는 것 : 우울증

* 어떤 것에 집중을 못하고 자꾸 딴 짓을 하는 것 : 우울증

*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 : 불안증

* 잠을 못자게 되는 것 : 우울증과 불안증(-> 이때는 꼭 병원에 가야 한다)


그러니까 이미 나는 아직 우울증이 낫지 않은 상태로, 비몽사몽 면접준비를 했고 멍한 상태를 각성시키고자 각성성분의 약을 먹은데다가- 아직도 낫지 않은 공항장애를 유발하는 불안증의 약은 나에게 조금 더 보통때의 긴장된 나를 더더더더 긴장하게 해서 오나전 망쳤다는 것이 이날의 결론..

다만 긍정적인 부분이라면, 이걸 이번에 확실하게 인지했다는 것이 기쁜..... 그래 인생은 기~~~니까- 젠장



4. D + 45


1) 이제는 집중이 가능하고, 스스로 잡생각이 들어오는 것을 쫓고 우선순위를 두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 더 기뻤던 것은, 책을 읽으면 문장 하나하나가 읽힌다는 것이였다

3) 내가 작성하고 있는 글이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지 일부러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4) 책에 있는 글들이 눈에 읽히는데, 다만 내가 관심이 있거나 내가 가장 가까이 하는 주제(그러니까, 눈에 익숙한 주제)에 대한 책들만이 그렇게 읽혔다



5. D + 60 ~ 70


아 이제 좀 더 나아진 것 같다

1) PMP 자격증 시험도 3일 공부를 빡세게 하고 붙었다 크핫

더불어 몇 회사에 지원하였고 한 회사는 최근에 면접을 보았다


2) W모 회사의 면접을 보면서 느낀 것은, 아직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였다

예전에는 면접 볼 때 앞으로 일하게 될 방향과 전략을 설명하면서,

나를 판매하는 것 같은 모습이 너무 기쁘고 즐거웠는데,

이번 면접에서는 그렇게까지 생기발랄하고 즐거워하는 나를 목격하지는 못했다

다만, 미처 준비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인사이트나 예시를 들고 있는 나를 보고 생각보다 많이 개선되고 있다 회복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반대로 약간 아쉬운 피드백을 하자면, 여전히 설명하는 중간에 몇 단어가 기억이 좀 나지 않는 것을 보고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7. D + 75


1) 관심이 있는 글이던 없는 글이던, 2~3번씩 읽다가 피곤해서 습관적으로 책을 덮거나, 핸드폰을 끄게 되는 일은 좀 적어졌다(진짜 세상에나 너무 기쁘다)

2) 보통은 노래를 들으면서 1가지 행동을 더 했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일을 했었는데, 확실하게 집중을 하게 되니 노래가 거추장스러워졌다


여기까지 도달한 내 자신이 너무 기쁘고,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아서 즐겁다

가끔, 이렇게 멍한 채로 있게 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잠깐 잠깐 했는데, 아 사람에게는 자기회복력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흑



아 이렇게 별거 아니지만, 나의 조금씩 개선되는 모습을 보고 나니-

뭔가 내일부터는 또 다른 새로운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잠깐 쉬면 어떤가, 인생은 길고도 짧은 것인데 말이다


내가 쓸 회사는, 내가 지원하고 다닐 회사는 다 빡센 회사만 남았지만

다음번에는 어떤 식으로 일하게 될지-

다음번에는 어떻게 일하면 내가 조금 더 소진되지 않을지

이런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이라, 더더욱더 기쁘다


내가 상태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으로

괴로울 때, 한번씩 보기 위해 이 글을 적어둔다


원하는 건 예전에 농담따먹기도 하던 때의 모습까지 회복이 되는 것

그리고 일을 하다가 중간에 핸드폰을 습관적으로 보는 것을 고치는 것

누군가와 어떤 주제에 대해 깊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이를 유지할 수 있도록 나를 보호하는 것을 앞으로의 KPI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또 일이 많기로 유명한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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