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의 시작
계모임에 가셨던 아버지가 예정보다 일찍 들어오셨다.
동생은 방에서 놀고 있었고, 누나와 나는 급하게 현관 신발을 정리하며 정렬했다.. 어릴 적부터 신발이 어지럽게 놓여 있으면 아버지의 불호령을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들어오실 시간이 되면, 우리는 마치 사단장님을 맞이하듯 현관 앞에 차렷 자세로 서 있곤 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아버지는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귀싸대기가 날아왔다. 서너 대를 맞고 나서야 욕설이 뒤따랐다.
"이 새끼가, 너는 성적표도 숨기냐. 며칠 전에 성적 나왔다면서. 옆집 애는 성적 잘 나왔다고 자랑하던데, 넌 성적표를 가져오기는 했냐? 내가 너 때문에 개망신을 당했어."
또 한 대가 날아왔다. 분이 안 풀리셨는지 방으로 들어가시면서도 욕을 퍼부으셨다. 어릴 적부터 익숙한 풍경이었다. 누나가 화가 났다. 아버지를 따라 방으로 가려는 누나를 내가 붙잡았다.
"누나, 이미 맞았어. 그냥 끝내자."
"야! 너 억울하지도 않니?"
"난 바라는 거 없어. 그냥 끝내고 싶어."
나도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와, 세상에. 우리 아버지가 내 성적에 관심도 있네.'
잠시 후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부부동반 계모임에서 갑자자 아버지가 사라지셔서 혹시나 하고 집으로 찾으러 오신 것이었다. 방 안에 있었지만 누나가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화가 끝난 듯, 어머니가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아들, 미안하다."
"괜찮아요. 아버지 술 드신 것 같은데 그냥 두세요."
그런데 참지 못한 건 누나였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자리. 누나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아빠 아들 성적 알아?"
"저 새끼가 성적표를 가져온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아."
"쟤가 왜 성적표를 안 가져와? 그 성적표를 안 가져오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래서 옆집 성적이 어떤데? 몇 등인데?"
"누나, 그만해라."
"야, 너는 억울하지도 않냐?"
"아빠, 옆집 성적이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이 집 아들은 전교 1등이고 전국에서 100등 안에 들어. 그런 성적표를 누가 안 가져와? 성적표는 늘 우리 식탁에 있었어. 아빠가 단 한 번도 안 본 거야.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한 번도 아빠가 우리 성적표 안 봤다고."
아버지는 한량이었다. 할아버지가 노는 아들을 데려다 강제로 공무원을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유명한 선생님이셨다. 할아버지의 제자들은 고위공무원부터 시작해서 지역유지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제자들에게 고개 숙여 아들을 공무원 만들었다. 당시에는 그게 가능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제대로 출근도 하지 않았다. 놀러 가고 싶으면 놀러 다녔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샀다. 술을 먹고 싶으면 술을 먹었고, 아침에 일어나기 싫으면 일어나지 않았다. 술집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참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좋아해서 운전면허를 따기도 전에 차부터 샀던 사람이다.
잘 사는 집안에 시집온 가난한 엄마는 동네 문제아와 결혼해 밥 굶는 걱정은 이제 안 해도 되었지만, 다른 걱정을 매번 해야 했다. 그런 아버지가 자식들 성적에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본인의 학창 시절에도 자신의 성적에 관심 없던 분이었다.
며칠 후,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너 성적이 그렇게 좋다고 하니, 한의대를 가라."
어이가 없었다. 이제 아버지 노릇을 하시려나. 한 번도 사춘기다운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그때부터 공부가 갑자기 싫어졌다. 공부를 하면 아버지의 만족을 채워주는 일이 되었다. 내 인생이 망가져도 아버지의 만족을 채워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날 무렵, 공부의 손을 놓았다.
그렇다고 다른 애들처럼 노는 것도 싫었다. 노는 애들을 보면 늘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도서관으로 숨어들었다. 책이나 읽자. 어차피 놀 용기도 없는 놈이고, 공부는 죽어도 하기 싫으니, 책이나 읽자. 분류기호 000번 총류부터 900번 역사서까지, 학교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을 때쯤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나 있었다. 성적은 추락했고, 평생 관심 없던 아들의 성적에 드디어 관심을 가진 시점부터 아버지의 실망은 점점 커졌다. 한의대에 대한 기대는 멀어져 갔다. 통쾌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인생 망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래도 통쾌했다. 나를 망쳐서 복수할 수 있어서, 지금도 후회가 없다.
그렇게 30년이 지났다.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 치매래."
"당연한 거 아니야. 치매를 안 걸리면 그게 이상하지. 부럽네, 부러워. 참 인생 편한 분이다."
아버지의 치매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기억이 바로 이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