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아버지는 치매라서 좋겠다

300만 원

by 열정의 개척자

아버지가 처음 쓰러지신 것은 초등학교 4학년때였다. 뇌로 가는 혈관이 코에서 터져 바로 대학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으셨다. 6개월 가까이 병원 입원을 하셨고 어머니는 그동안 병간호를 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엄마가 아니었으면 아빠는 죽었을 거라고 했다. 아니 아빠가 아니라 우리가 죽을뻔했다. 엄마는 차로 2시간 거리를 매일 오가셨다. 병원에서 쪽 잠을 주무시고 새벽차를 타시고 집에 오셔서 아침을 먹이고 도시락을 싸고, 자식들 얼굴을 보고 집안 살림을 하고 점심이 되면 저녁을 챙겨 두시고 다시 병원으로 향하셨다. 그렇게 6개월을 사셨다. 엄마는 아빠만 살린 게 아니라 자식들도 살리셨다.


병원에서 퇴원한 아버지는 정말 단 며칠만 모범적으로 사셨다. 다시 술, 담배를 시작하셨고 방탕한 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또 쓰러지고 엄마의 병간호로 살아나면 다시 쓰러졌다.


아버지의 병원 생활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 집은 흔들렸다. 아버지 월급은 없고 병원비는 늘어갔다. 아주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그리고 다시 더 작은집으로 우리는 옮겼다. 하지만 그런 병도 아버지를 바꾸지는 못했다. 그래서 처음 아버지에게 치매 증상이 나타났을 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뇌혈관 질환을 달고 살고, 술 담배 없이 하루를 지난 적이 없는데 치매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고1이 지나 방황으로 성적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서울대 하위권 대학부터는 지원이 가능했다. 학교에서 같이 지내던 친구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과 수능점수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어느 대학에 갈까? 고민이 많았다. 혹시 몰라 3년간 저축을 했다. 정확하게는 6년간 저축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 모은 돈과 고등학교 때 모은 돈을 합하니 300만 원 정도의 돈이었다. 이 돈이면 사립대 한 학기 등록금은 될 듯했다. 그래도 기숙사비와 생활비가 부담스러웠다. 보통 이런 고민은 아버지들이 해야 하는데, 난 공무원 아버지를 두었지만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평생 동안 배운 게 기대하면 아프다는 것이었다.


“엄마 돈 있어?”


엄마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이 없는 눈빛이었다. 아니 그런 눈빛이 싫다. 왜냐하면 엄마는 그 돈을 구하기 위해 뭐든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돈을 위해 내일 당장이라도 공사장에 나갈 분이고, 쓰레기를 치우고, 식당에서 일할 분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다.


“나 근처에 있는 국립대 간다. 내 성적이면 엄마 국립대 4년 장학생이야.”


그런데 충격은 그때 시작되었다. 내가 300만 원이 있는 것을 아버지가 알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듯 술을 먹고 들어와서 300만 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엄마가 큰 소리를 냈다.


“애가 중학교 때부터 장학금 받고, 용돈 모으고, 차비도 아끼고, 밥값도 아끼고, 고등학교도 장학금 받고 학교에서 생활비도 받아서 모은 게 왜 당신 돈이야. 그건 그냥 당신 아들 주라고”


“짝!”

엄마가 아버지에게 맞았다.


그래서 난 통장을 주었다. 가져가라.


난 그 300만 원이 아버지의 술값이 될 줄 알았다. 그 돈이 차라리 술값이 되었으면 나에게 한으로 남지는 않았을 거다. 아버지는 그날 나에게 뺏은 돈을 내연녀에게 가져다주었다. 내연녀의 큰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자기가 등록금을 주기 위함이었다. 자기 부인을 때리고 자기 자식의 앞길을 막으며 피도 섞이지 않은 내연녀와 그 자식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 돈을 들고 갔다.


그 집 아들과 나는 동갑이었다. 안타깝게도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나는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무시하는 게 아니라 아는 척을 하지 않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다행인 건 그 친구도 매너가 있는 친구였다. 어렸지만 자기 엄마의 책임을 친구에게 묻고 싶지 않았고 친구도 우리 아버지의 행동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 녀석이 조용히 와서 말했다.


“고맙다. 등록금 받았다.”


아마도 나름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좋겠다. 치매에 걸려서 이제 기억을 못 하니까. 아마도 평생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억해야 한다. 둘 중에 한 명은 기억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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