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아버지는 치매라서 좋겠다

엄마, 안녕

by 열정의 개척자

IMF가 끝날 무렵 아버지는 갑자기 명예퇴직을 한다고 선언했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명예퇴직은 오히려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몇 년치의 월급을 주고, 공무원 퇴직금도 보장하며 모든 것을 일시불로 주는 큰 돈을 절대 그냥 둘 아버지가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말 할때는 이미 그 돈으로 할 일도 정해진 상태였다. 여관을 하나 사겠다는 것이다. 자기가 가 보았는데 여관이 공실이 없을 정도로 늘 가득하다고 했다. 한참 은퇴하는 공무원들에게 접근해서 사기치는 일당들의 수법이다. 여관, 치킨이나 피자, 식당등에 전문가들이 붙어서 엄청난 홍보비를 쓰며 홍보를 하면서 인수할 사람을 찾다가 권리금을 주고 인수하면 거품이 빠진다. 알고 보면 수익보다 큰 적자를 내면서 몇 달간 홍보를 하고 팔아 넘기고 빠지는 수법이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당하는 수법이었다. 그거 유명한 수법이라고 아무리 말 해도 소용이 없었다.


“야! 이 새끼가 누굴 호구로 아나, 내가 벌써 몇 번을 가고 한 달이상 계속 봤어. 어린 새끼가 뭘 안다고 싸가지 없게”


괜히 말을 붙였다 싶었다. 우리가 말린다고 들어 본 적이 없는 분인데 실수했다. 그렇게 퇴직을 해 버렸다.


인수한다는 여관을 가 보았는데 생각보다 허름하고 낡았다. 5층 건물이지만 엘리베이터도 없었고 방은 여관이 아니라 여인숙 수준이었다. 뒷골목에 주차장도 없이 붙어 있는 건물이었다. 누군가 제대로 해 먹었다. 아버지는 이런 건물에 퇴직금을 모두 넣고도 부족해서 여관 건물 대출에 집을 담보로로 대출을 받았다. 그야말로 이자는 폭탄이었다.


평생 놀고 먹은 공무원이 장사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철저한 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을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나이 먹고 변하는건 더 어렵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


어머니가 여관으로 떠난지 열흘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집에 오셨다. 엄마를 여관에 데려다 놓고 아버지는 열흘동안 한 번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는 열흘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해야 했다. 열흘만에 돌아온 아버지를 보고 죽을 것 같아서 도망쳤다고 한다.


“엄마, 다시는 가지 마! 우리끼리 살아보자”


“그래도 가 봐야지. 엄마 한 숨 자고 다녀올게”


엄마는 그렇게 하루 종일 자고 다시 짐을 싸서 여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떠난 엄마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집에 돌아왔다.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아니야가 아니야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엄마가 없는 여관에 내연녀를 데려다 놓았다. 내연녀는 자기가 장사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내연녀 편을 들었고 엄마보고 집에 가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돌아왔다.


“엄마 괜찮다. 차라리 잘 되었다. 우리 그냥 우리끼리 살자”


엄마는 말이 없었다. 시집간 누나는 이런 집이 너무 치욕스러워 매형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나는 학교에서 과돌이를 하고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동생도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 하며 자기 용돈을 알아서 챙겼다. 엄마도 다시 일을 찾아 출근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아르바이트가 없어 집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바쁜 엄마를 위해 구석구석 청소를 시작했다. 거실과 방을 돌며 청소기를 밀고 다니고 걸레질을 할 때 엄마의 화장대 앞에 써 놓인 메모를 읽었다.


“살아야 한다”


엄마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을 뭐라고 표현할까? 내가 아는 단어중에 엄마의 마음을 표현할 단어를 배운 기억은 없었다. 걱정이 되면서 엄마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런데 사건은 며칠 지나지 않아 일어나고 말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인데 전화가 왔다


“여기 병원인데 어머니께서 쓰러지셨어요. 응급실입니다.”


급하게 달려간 응급실 침대에 엄마는 의식이 없이 쓰러져 있었다.


“어떻게 된건가요?”

“어머니께서 머리가 너무 아프시다고 응급실에 오셨는데 혼수상태가 되셨어요. 어서 큰 병원으로 가셔야해요.”


앰뷸런스를 타고 큰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 날은 일년중 가장 상춘객이 많고 벚꽃이 아주 예쁘게 핀 토요일 저녁이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벚꽃 거리를 지나야 우리는 대학병원에 도찰 할 수 있다. 다른 길은 없었다. 모든 차선이 주차장처럼 멈춰버린 도로에서 아무리 싸이렌을 켜도 차들은 비킬 곳이 없었다. 차들이 피하려고 해도 피할 곳이 없는 상황이었다. 30분이면 갈 거리를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앰뷸런스 안에서 본 벚꽃은 평생 본 벚꽃 중 가장 예쁜 주말의 벚꽃이었다. 그게 나의 마지막 벚꽃 구경이었다. 30년이 지나도록 벚꽃 구경을 간 적이 없다.


어머니는 간단한 조치 이후에 바로 뇌수술에 들어갔다. 뇌지주막하출혈로 어머니의 뇌는 파괴되고 있었다. 의사는 수술중에도 출혈이 계속 되었다고 하고 수술후에도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당시에는 중환자실 보호자는 병원 지하에 군대 내무반처럼 생긴 곳에서 지낼 수 있었다. 한달을 지내면서 점점 지쳐갈 무렵 젊은 어머니 담당의사와 밤에 음료수 한잔을 했다.


“선생님 어머니 가망성이 있나요?”

“다행히 소생하신다고 해도 의식이 깨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는 며칠 동안 뇌에 출혈이 몇 번이나 더 있었다. 의사는 이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다음에 고비가 오실 때 연명 치료를 중단 하시겠습니까?”


모든 가족들이 대답을 피했다. 그때 아버지가 말했다.


“니가 아들이니까 니가 정해라”


마지막까지 아버지는 치사했다. 엄마는 대단했다. 뇌출혈로 몇 번이나 쓰러졌던 아버지 병간호를 버텨내셨고 어릴적부터 병치레가 많던 나를 살리셨는데 나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중환자실 보호자로 한달을 살면서 만신창이가 되었다.


“엄마 미안해.”


나는 엄마를 지키지 못했고 나는 엄마의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처음 치매가 발병하고 10년을 이상 없이 잘 버티던 아버지의 병세가 갑자기 심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곧 여든이 되는 아버지는 그 여관에서 여전히 내연녀랑 살고 있다. 어느날 전화가 와서는 내게 물었다.


“너희 엄마는 어디서 살고 있니?”

“돌아가셨어요. 이미 30년 가까이 지났어요.”

“이혼한 게 아니고 죽었어?”

“네. 뇌출혈로 아프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자살한게 아니고”

“네”


아버지는 치매라서 좋겠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문뜩 궁금해졌다. 아침에 눈을 떠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왜 옆에 모르는 여자가 있지?라는 생각은 안 할까? 그리고 그때마다 대답해야 하는 내연녀 아줌마는 어떤 생각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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