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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ch sehe 이희재 Apr 09. 2024

Persona_lity

캐릭터 IP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기믹

※본 글은 MAGAZINE NERD 11호 <TANGO>에 기고했습니다.


STEP.0 캐릭터는 불완전하다.

가려진 시야champ aveugle

“틀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은 이 틀을 벗어나면 절대적으로 죽는다.”

롤랑 바르트, 『밝은 방 (사진에 관한 노트)』


  흔히 사람들은 영화 속 캐릭터를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대게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감상을 늘어놓을 때 사람들은 “아니 글쎄 그 인물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곤 하는데 사실 영화 속,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콘텐츠 속 캐릭터는 인물이 아니다. 편의상 인물이라고 자주 일컬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물과 엄연히 다르다. 인물은 매 순간의 삶을 영위한다는 점에서 연속적이지만 캐릭터는 특정 캐릭터성으로 조합된 하나의 혹은 여러 개의 페르소나에 불과하다. 어떤 사진이 가려진 시야를 만들듯이 영화는 가려진 삶을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캐릭터를 인물로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잠시 그 매력적인 현혹에서 벗어나 영화라는 매체를 직시하면 그들이 영사기가 돌아갈 때까지 혹은 넷플릭스의 두둥 소리가 나야만 작동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STEP.1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기믹gimmick

“그림자와 페르소나 모두 정신에 존재하는 자아 이질적인 ‘인물들persons’이다.”

머리 스타인, 『융의 영혼의 지도』


  한 너드 에디터로부터 ‘2D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스마트폰 액정 너머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자신의 2D딸이라 소개하며 자녀의 생일을 축하해달라는 에디터의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진심 어린 애정이 담겨 있었다. 흔히 매력적인 캐릭터를 보고 “내가 낳았어야 했어”라고 말하는 주접도 맥을 같이 한다. 캐릭터는 현생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떠한 연관도 없지만 콘텐츠 안에서 살아 숨 쉰다는 이유로 우리와 부모 자식의 연을 맺는다. 시공간을 초월한 애정! 얼마나 낭만적인가!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존립을 견인하는 공통된 요소가 있다. 확고하고도 엄청난 기믹gimmick이다. 기믹은 사전적으로 인물이나 상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하는 특이한 전략, 혹은 전략에 쓰이는 독특한 특징을 말한다. 보통 술책, 상술, 눈속임, 기교와 같은 단어로 번역되는데 음악, 게임, 예능,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대중문화 분야에서 넓은 스펙트럼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중문화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기믹은 다름 아닌 프로 레슬링에서 기원하였다. 순수 스포츠라기보다는 경기자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수행이 주가 되는 엔터테인먼트 쇼에서 기믹은 경기자와 혼연일치를 이룬 캐릭터의 특징과 소위 말하는 ‘어그로’를 끄는 컨셉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왔다. 현재는 이 용례가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장되어 기믹은 페르소나, 인격, 컨셉질, 부캐, 자아와 자기, 캐릭터성 등을 관통하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나몰라패밀리


  이러한 기믹은 캐릭터의 매력을 형성하는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뚜렷하고 독창적인 기믹은 확신의 어그로 요소로서 대중들의 관심과 시선을 끌며 큰 화제성을 낳는다. 근래에 가장 핫한 다나카상을 보라. 아르마니 티셔츠와 루이비통 벨트, 00년대를 연상케 하는 샤기컷 머리에 어눌한 한국어와 유창한 일본어까지. 누가 다나카상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SBS                                                                                            ⓒMBC

  확고하고도 엄청난 기믹은 현생의 주민인 인물도 캐릭터로 만든다. 시대를 풍미한 ‘밈이 된 사람들’이 이 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악뮤의 이찬혁, 배우 나문희가 바로 그들이다. 이른바 ‘GD병’에 잡아먹힌 듯한 이찬혁의 스타일과 철학은 “이찬혁 하고 싶은 거 그만해”라는 말을 유행처럼 만들었다. 탈색한 눈썹과 선글라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파격적인 행보, 겉치레뿐일 것 같다가도 진정성이 보이는 그만의 가치관과 아이덴티티는 필자를 비롯한 예술가병에 걸린 자의식 과잉 공상가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배우 나문희 또한 공감과 자기 투영이 가능한 기믹을 가졌다. <거침없이 하이킥(2006)>의 나문희(나문희 분) 캐릭터는 회차를 거듭하며 종잡을 수 없지만 동시에 사랑스러운 모습을 선보였고 2018년 ‘호박고구마’ 열풍을 일으켰다. 그 뒤 꾸준히 다채로운 면모가 밈으로 회자되면서 게으르고 무기력하지만 귀엽고 싶은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중이다.


ⓒ주식회사 해리슨앤컴퍼니, CJ ENM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 캐릭터의 기믹 또한 예외가 아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의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 분)는 정교하게 구축된 페르소나가 대중문화 사이에서 얼마나 큰 파급력과 지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캐릭터다. 소름 끼치는 미소로 대표되는 그의 사이코패스 살인자 인격은 밈으로 박제되어 대중들의 잿빛 일상에 조소를 날리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조커(2019)>의 조커(호아킨 피닉스 분)도 캐릭터 페르소나가 지니는 호소력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조커>가 개봉했을 당시 광대 분장과 초록 머리를 하고, 빨간 양복을 입고 계단에서 춤을 추는 패러디 영상이 대거 양산되었다. 호아킨 피닉스의 흡입력 있는 연기는 조커 캐릭터 특유의 광기 어린 마스크와 그 이면에 적층된 심리를 빼어나게 표현해내었고 관객들은 대체할 수 없는 그의 페르소나와 그림자에 빨려들었다. 조커 캐릭터는 대중들 사이에서 광기의 아이콘으로 소비되면서 아폴론적인 세태와 현생에 디오니소스적인 흥취를 북돋아 주고 있다.


STEP.2 캐릭터는 살아있다.

페르소나persona

“화면으로부터 나오는 인물은 계속해서 살아간다.”

롤랑 바르트, 『밝은 방 (사진에 관한 노트)』


  캐릭터의 기믹이 치밀해지고 행동의 핍진성을 확보할수록 그들의 활동 영역은 더 이상 프레임 내부로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에게 매료되면 그들은 우리에게로 향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와 하나의 생동하는 존재자가 된다. 콘텐츠에 의해 주조되고 수용자에 의해 잉태되는 캐릭터는 크게 세 가지의 효용을 낳는다.


1. 캐릭터는 세계관을 만들고 관객은 세계관의 주민이 된다.

2. 사람들은 캐릭터의 기믹을 입고 바르며 자신의 기질을 발현한다.

3. 캐릭터를 기반으로 존재자의 존재, 가능 세계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


ⓒ숏박스                                                               ⓒ너덜트

  스케치 코미디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숏박스, 너덜트와 같은 유튜브 스케치 코미디 콘텐츠는 현실에서 마주친 적 있는 것같이 친근하지만 동시에 개성 넘치는 기믹을 소유한 캐릭터들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에피소드를 풀어가며 고유한 세계관을 확장해오고 있다. 약간의 현실 풍자와 리얼리즘으로 무장한 그들에게 매료된 사람들은 해당 캐릭터에 자기 자신이나 현생의 빌런들을 투영하여 그들이 대변하는 상황에 쾌감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세계관 안에 녹아든다.


ⓒKCC창호                                            ⓒTAMBURINS

  이러한 효용을 활용한 광고 콘텐츠도 적절한 사례다. 배우 성동일이 모델로 선 KCC창호의 광고 영상, ‘무한 광고 유니버스에 갇힌 성동일(Feat. KCC창호)’은 미장아빔mise en abyme, 즉 액자식 구성의 정수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통해 연결할 수 있는 다층 세계관의 극한이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2분 48초 동안 13번 연결되는 세상을 보면서 다층 세계관에서 광고를 이끄는 호쾌하고 뻔뻔한 성동일 캐릭터에 매혹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매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광고를 보는 시청자가 됨으로써 해당 세계관들의 거주민이 된다. 코스메틱 브랜드 탬버린즈의 향수 캠페인 영상, ‘TAMBURINS x JENNIE PERFUME - [SOLACE]’도 유사한 맥락에서 보는 이들이 능동적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빨려들게 만든다. 공감각적인 전달 방식을 사용하는 캠페인 영상은 블랙핑크 제니의 아이코닉한 캐릭터성과 그로부터 구축된 세계관을 보여줌으로써 그들만의 ‘향’을 풍긴다. 제니가 연기한,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엽기적 행동을 일삼으면서 움직이는 순간마다 매력을 내뿜는 캐릭터는 심미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자기실현 욕망을 자극하고 그가 탐닉하는 향긋한 세계에 살고 싶게 만든다.


ⓒ그린나래미디어(주)

  위와 같은 캐릭터들은 콘텐츠의 호소력을 소생하는 엄청난 매력을 지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앞서 말한 세 효용을 가장 티 없이 맑게 함유하는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는 곳은 영화다. <토니 에드만(2016)>의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 분)는 기믹을 통해 자신의 기질과 열망을 실현한 대표적 캐릭터다. 딸의 삶에 융화되고자 하는 마음, 매사를 심각하게 만드는 진지함에서 벗어나 삶을 유쾌하게 바라보는 관점을 전파하고자 하는 빈프리트의 열망은 ‘토니 에드만(페테르 시모니슈에크 분)’이라는 기믹을 탄생시켰다. 빈프리트는 덥수룩한 가발과 튀어나온 틀니를 스타일 삼아 ‘인생 코치 토니 에드만’이라는 페르소나를 쓰고 커리어우먼인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 분)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닌다. 토니 에드만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부녀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빈프리트는 딸의 세계라는 새로운 삶의 장을 경험했고 이네스는 날것의 나에서 기인한 새로운 차원의 세계관을 마주했다.


ⓒ워터홀컴퍼니(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의  에블린(양자경 분)과 조이(스테파니 슈 분) 또한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세계관을 확장하고 자아ego 이면의 자기self에 다다른다. 에블린과 조이 모두 각박한 세상과 도무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멀티버스를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성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나의 존재를 경험한다. 둘은 온 우주의 모든 곳에서 모든 형태로 한꺼번에 살 수 있게 되는 경지에 다다르지만 조이는 그 모든 곳에서 자신이 갈구하던 엄마의 품을 찾지 못하고 에블린은 다른 세계에 비해 하염없이 초라한 자신의 캐릭터에 실망한다. 허무주의에 빠진 딸을 구하고 깊어진 자기 연민을 극복하기 위해 에블린은 딸이 겪었던 여정을 똑같이 밟으며 파편화된 자기를 하나로 응집한다. 가능 세계의 형태로 잠재된 자기의 능력을 지체 없이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블린은 온 우주를 가로질러 수많은 페르소나가 지니는 캐릭터성을 발현하였고 온 힘을 다해 타인과 자기를, 그리고 그들이 따르는 운명을 사랑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에블린은 딸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모녀는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감싸 안는다. 영화는 캐릭터의 저력을 통해 볼품없고 이상해 보이는 나라도 진심으로 함께하고자 하는 가족으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STEP.3 캐릭터는 완전하다.

인물persona_lity

“영화는 사진의 객관성을 시간 속에서 완성시킨 것으로 보인다.”

앙드래 바쟁, 「사진적 이미지의 존재론」


  영화로 대표되는 프레임은 캐릭터를 가두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든다. 프레임에 가려진 삶을 상상하는 것은 관객의 소관이기 때문에 우리는 스크린에 상영된 캐릭터들의 매력적이고도 핍진성 있는 행동에서 동력을 얻어 논리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세계를 그려낸다. 관객을 맴도는 캐릭터는 불완전하지 않다. 영화 속 시간 안에 국한된 캐릭터는 한정적으로 살아 움직일지라도 삶이 단절되는 모든 편집점에서 관객이 투영한 시선에 의해 다시 태어난다. 그런 점에서 캐릭터는 관객의 차원에서 살아있고, 또 완전하다. 영화와 콘텐츠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앞으로도 마음껏 캐릭터의 불완전함이 자아내는 완전함을 마주하길 바란다.




[참고 문헌]

1. 롤랑 바르트, 『밝은 방 (사진에 관한 노트)』, 김웅권 역, 동문선, 2006, 75쪽.

2. 머리 스타인, 『융의 영혼의 지도』, 김창한 역, 문예출판사, 2015, 174쪽.

3. 이윤영, 『사유 속의 영화 (영화 이론 선집)』, 문학과지성사, 2011,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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