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집
지난 10월 태국을 다녀오기로 했다. 태국에 있는 가족 같은 친구들도 보고 겸사겸사 태국의 실정을 알아보려고 갔다.
우리에겐 아이들이 제각기 갈 길을 찾고 나면 그다지 한 곳에 정착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주변에 친구들은 오레곤으로 가는지 묻는다. 남편이 오레곤 출신이고 사실 집도 하나 장만 해놨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난 오로지 미국에선 이방인이고, 부모님도 돌아가셔서 이제 한국에 가야 할 의무도 없다. 남편은 바늘과 실처럼 내가 가면 갈 것이고 내가 머물면 머무를 사람이다.
태국에 친구들도 있고, 독일에 사는 친구도 곧 아이들이 정착할 나이니, 베트남으로 철새처럼 왔다 갔다 할 것 같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한국에 식구들 보기도 가깝고, 유럽으로 돌아가는 친구들도 있어 미국보다는 태국이 더 편리하다. 일본도 가깝고 물가도 훨씬 싸고 하니 태국이 매력이 있긴 하다. 태국도 24년 만에 가는 길이라 어찌 변했을지 조금 생소하고 낯설 것 같다.
남편도 나의 제안에 솔깃했는지, 한번 가서 시장 조사를 해보라고 한다. 태국에서 집을 멋지게 마련한 친구의 집에 가보니 실세는 집은 멋있고 좋은데, 동네가 없다. 친근한 마켓도 차를 끌고 나가야 하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다들 돈 있는 외국인 뜨내기들의 집들이니 동네의 반은 빈집이다.
아파트나 콘도도 여러 군데 투어를 해보았다. 렌트도 참 싸고 멋진 아파트인데, 부엌도 없고, 발코니도 없다. 아무리 음식값이 싸고 교통이 싸더라도 누가 매일 밥 먹으러 옷 차려입고 나가는가? 외국인들 상대로 투자목적으로 건물을 그냥 생각 없이 뚝딱 지어놓아, 멋진 수영장도 헬스장도 텅텅 비어 있다. 겉으로는 멋있는 리조트 호텔 같았지만, 속은 왠지 병원 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은 마음이 불편하다.
구매를 하여 가끔은 에어비앤비로 이용해도 될 것 같은데, 워낙에 그런 사람들이 늘어 관리를 해주는 좋은 사람을 구하기가 참 힘들다. 그래서 도둑들도 꽤나 늘었다고 한다.
문제는 태국까지 와서 미국사람들과 어울리고, 교통체증도 많은 태국에서 비싼 승용차를 끌고 백화점에 가서 밥 먹고 다니는 태국 아줌마 아저씨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어색해 한두 번이지 싶다.
남편이 한국은 어때라고 묻는다. 샌프란시스코에 오는 비행기도 직항이고, 한국에서 태국을 가고 싶으면 얼마든지 가면 된다. 남편에게는 한국이 제2의 고향이니 익숙하고 편리하니 한국을 참 좋아한다.. 사실 난 굳이 내가 왜 다시 한국으로 가?라고 반항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형제들과의 갈등과 부모님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인해 나의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작은집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있다. 어릴 때 과수원에서 한여름 지내던 단칸방이 자꾸만 생각난다. 아마도 내가 가장 행복하고 순수했던 때 일 것이다.
여름방학을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남동생들과 작은 방에서 옹기종기 붙어 지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불편함에도 부모님이 있어 무섭지도 않고 마냥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아빠가 챙겨 온 한 달 치 여름 간식들을 보면서 오늘은 뭘 먹을까 동생들과 티격태격 투쟁을 하고 내기도 한다.
한여름 비라도 오면 이불에 냄새난다고 아궁이에 불을 붙이며 아빠의 늘어진 러닝셔츠를 대충 걸쳐 입은 엄마의 젖가슴에 땀이 송골송골 매어진, 아마도 가장 아름다웠던 엄마의 모습이고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이었다.
난 아직도 아궁이의 연기 냄새와 동생들의 풋풋한 땀냄새 그리고 이장님의 소여물의 냄새들이 그립다.
우연히 승무원이 되었지만, 언젠가 작은 집이 있는 그런 고향을 찾아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거라고 믿는다. 작은 집이지만, 마음에 아주 큰 여유의 공간을 주는 그런 집을 찾아보자. 한국이든 스페인이든 내 마음이 편한 작은집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