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여행

오키나와 한 달 살기.

by Goodmorning


3년 전부터인 것 같다. 혼자 여행하기 시작한 것이. 일어를 한다는 이유로 친구, 친·인척의 일본여행에는 당연한 옵션처럼 내가 동행했다.

나도 기꺼이 그들 여행의 가이드가 되어 주었다. 그들은 각자의 여행 가방만 싸고 비행기, 호텔예약부터 여행계획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식사는 그들의 호불호에 따라 결정했고, 관광지 또한 사전에 가고 싶은 곳을 물어본 후 교통편을 고려해 계획했다. 십여 년을 넘게 그런 봉사 아닌 봉사를 한 끝은 아름답지 못했다. 여행이 거듭될수록 고맙다는 말은커녕 불만을 쏟아내고 왜 그곳은 데려가지 않았냐는 농담 섞인 속내를 내뱉기 일쑤였다.

나의 배려를 자신들의 권리인양 착각하는 그들의 태도에 난 점점 지치고 실망했다. 마침내,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일본여행은 안 가겠다고 모든 지인들에게 선언해 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누구와도 동행하지 않고 있다.


건강문제로 한겨울에 오키나와에서 한 달을 체류하게 되며 혼자만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오키나와는 일본 최남단에 위치해 한 겨울에도 온화한 지역이다. 본섬에서도 겨울이 되면 추운 날씨를 피해 한, 두 달씩 머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오키나와의 한 달 살기를 결심한 즈음의 내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3월에 수술이 잡혀있었고 병명을 모른 채 1년 넘게 고생한 몸은 혈액검사로 알 수 있는 수치들이 대부분 정상치를 훨씬 웃돌고 있었다. 계속 그 상태면 수술도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의사의 경고로 고심 끝에 내린 피신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여행을 통해 몸도 수술 가능 할 정도로 회복하고 여행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본래 철저히 계획하고 여행하는 편인데 그땐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든 상태여서 비행기 표와 숙소만을 정해놓고 아무 생각 없이 출발했다.


그렇게 무계획으로 출발해도 아무 문제없는 것이 여행이었다. 처음으로 여행지에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내가 여행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고, 이걸 깨닫기 위해 수많은 동반여행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정도 체류할 예정이었기에 단기 여행자처럼 며칠 만에 관광지 구경을 해야 한다는 조바심도 없었다. 도착해서 며칠은 한 달 살이를 위한 생필품을 구입하고 편의 시설을 알아놓는 등 여행자이면서 현지인처럼 살기 위한 준비에 분주했다. 그리 고심하지 않고 정한 호텔은 가격도 저렴했지만 주변에 버스터미널이 있고 번화가와도 가까웠다.


아침에 일어나 어딜 가볼지 검색한 후 호텔을 나선다. 휴대폰 로밍을 안 해 가서 호텔을 나가면 카메라 기능과 시간 보는 것을 제외하곤 휴대폰은 무용지물이 된다.

버스터미널 안내소부터 들러 내가 가는 목적지의 버스 번호와 탑승지를 물어보고 내릴 정류장 이름을 확인한 후 출발하는 것이 반복된 과정이다. 거의 매일 안내소를 들러 나중엔 안내소 직원들과 굉장히 친숙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관광지도를 들고 출발 전 교통편을 미리 알아본 후 출발해도 엉뚱한 곳을 헤매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럼 마치 그곳이 목적지였던 것처럼 하루 종일 구경하다 돌아온다. 새로 생긴 집으로만 돌아올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우연히 마주친 소박한 카페나 식당에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기대이상의 흡족함에 뿌듯하기도 하고 멍하니 바다를 한 참 바라만 보다 오기도 한다. 길가에서 스쳐 지나가는 일상에 바쁜 사람들만 하루 종일 지켜보다 오는 날도 있다.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능숙하게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여학생, 유모차를 밀며 활기차게 걷는 젊은 엄마,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출장자인 듯 한 무리의 회사원. 이런 모습들은 한국과는 다른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새삼, 타국에 있음을 느끼게 하지만 왠지 친숙한 느낌도 들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돌아오는 길엔 마트에 들러 다음 날 먹을 아침거리를 사며 맥주도 하나 함께 산다. 집 같은 느낌의 호텔에 도착해서는 라벤더 향이 은은한 입욕제를 넣은 욕조에서 하루 종일 고생한 다리를 위로해 주곤 냉장고에 넣어둔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켠다. 그러곤 누워서 티브이를 보다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늘어지게 편안한 잠을 잔다.


개인적으로 혼자 하는 여행의 백미는 새벽시간이라고 생각한다. 4시나 5시쯤 기상하는 나는 소리 날까 조심하지 않으며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잔잔하게 퍼트려 놓는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해뜨기 전의 캄캄한 거리를 내려다보는 호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새벽거리엔 여러 가지 풍경을 담고 있다. 간밤의 지친 모습인지 새 아침을 여는 생동감인지 모를 모호함을 가지고 있다. 귀가하는 사람인지 출근하는 사람인지 궁금증을 가지고 드물게 있는 인기척을 살펴본다. 시간에 맞춰 자동으로 소등되는 가로등 탓에 여명만의 희미함을 의지해 도시는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선명한 모습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마치 꿈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다.

하루의 시작을 이렇게 맞이하는 즐거움이 혼자 하는 여행의 특권이다. 누구 하고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기한을 정해 놓고 온 여행이기는 하지만, 돌아갈 날짜가 다가오면 가고 싶기도 하고 조금 더 머물고 싶다는 미련도 남는다. 그럼에도 역시 여행지에서 나에게 있었던 에피소드를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줄이 꺼내어 보여 주고 싶다는 조바심이 마음을 채우기 시작하면 힘들지 않게 그곳의 향기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조금은 마음이 건강해진 나로.

떠날 때와는 달라진 나로.

돌아오기 위해 떠났음을 상기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