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산책 길

소풍 같은 삶

by Goodmorning


“이번 여행 완전 실패다!” 예약해 놓은 호텔 근처에 들어서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한 달간의 긴 출장을 떠나 혼자 있는 시간이 무료해 3박 4일 일정으로 온 나고야는 생각보다 크고 복잡한 도시였다.

시골스러운 정취를 좋아하는 탓에 이곳의 삭막하고 차가운 거리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교통 편의를 위해 도심에 잡은 호텔은 오피스 빌딩과 쇼핑센터로 둘러 쌓여있어 삭막하기 이를 데 없다.


나무와 꽃이 가득한 정원을 한 시간 걷는 것과 빌딩 숲 돌바닥 인도를 한 시간 걷는 것의 피로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데 달리 방도가 없다는 낭패감이 든다.


도심의 거리라고 해도 걷는 즐거움이 있는 거리도 있는 데 이곳은 멋없는 쇼핑몰과 기세 높은 오피스 건물이 일렬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쇼핑 몰도 그리 흥미를 끌지 못했고 몇 안 되는 관광지는 대충 의무감으로 일찍 마쳤다. 더 이상 돌바닥을 걸어 다니며 관광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 할 것도 없어 카페에 들어가 앉아 있으며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 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거리의 풍경은 시간에 맞춰 단체 행동이라도 하듯 한꺼번에 움직이는 수많은 회사원들의 무리를 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출근을 하느라 우르르, 점심 먹으러 나와 우르르, 퇴근하느라 우르르.

출근길과 점심시간, 퇴근길의 사람들 표정은 많이 다르다. 출근길에 덜 깨고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 점심엔 조금 활력이 생기고 퇴근길엔 발걸음도 경쾌해진다. 여성의 경우는 화장도 약간 진해지는 느낌이다. 물론, 2~30대 얘기다. 4~50대는 점심시간 빼고는 계속 피곤해 보이고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다.


별다른 감흥 없이 돌아온 여행 후, 아들 회사 근처로 가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의 사무실이 있는 높은 건물에서도 직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건물 앞 인도 끝에서 무리가 몰려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낯익은 얼굴을 계속 찾는다. 몇 무리가 빠져나간 후 한 무리의 속에서 아들이 보인다.

회사 근처의 식당에서 잠시 기다린 후 자리를 잡고 둘러보니 모두 회사원 같은 사람들이 웃고 얘기하며 점심을 즐기고 있다.

아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다. 간절히 입사하고 싶었던 곳인데 기대와는 다른 조직에 점점 실망의 빛이 얼굴에 어린다. 그가 들려주는 짧은 푸념을 기반으로 경험을 밑바닥부터 끌어올려 그의 상황에 가장 근접한 스토리를 만들어 보느라 머리는 바삐 돌아간다. 그럼에도 측은한 생각보다는 그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지나면 알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그리 이상적인 직장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점심식사 후 서둘러 들어간 그를 뒤로하고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생각이 많아졌다.

아들이 힘들어 보여도 내 눈엔 눈물 나게 아름다운 그의 젊음이 보인다. 젊음은 너무나 빛나는 존재라는 것을 세월의 나이를 더 할수록 실감하게 된다. 빛 속에 있을 땐 그 빛의 강도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강한 빛의 뒷면엔 길고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동반한다.

젊음은 말 그대로 빛나는 청춘이지만 빛 앞에 당당히 서지 못한 젊음은 더 큰 어둠으로 빛을 누른다. 아직 영글지 않은 사고에 수많은 선택과 다양한 기로 위에 늘 서있게 된다. 불안감이 엄습하고 확신에 대한 자문자답을 멈출 수 없다. 그럼에도 앞으로 전진할 수밖에 없다. 출구의 작은 빛만을 의지해 달릴 수밖에 없는 터널 안에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청춘의 터널을 통과한 후 또 다른 터널 안을 지나고 있다. 이미 지나온 터널은 돌아갈 수 없다. 또한, 지나온 터널처럼 앞에 펼쳐져 있는 터널 또한 밝지만은 않다는 걸 안다.

지금의 터널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그때의 실패를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그 경험은 더불어 이미 겪은 터널과 앞으로 지날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 과정임을 절실히 체득했기에 그들을 격려하고 가능한 한 다정하게 대하고 싶다.

삶은 즐겁지 만은 않은 소풍이다. 우리가 늘 작은 행복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 기뻐하려고 하는 노력이 그것을 반증한다. 이 삶이 살만하고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우린 늘 증명하고자 애쓰며 산다. 하지만, 그것 또한 녹록하지 않다.

현재 어느 시간대의 터널 안에 있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선한 눈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오늘이라는 산책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진심을 담아 격려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