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꾸는 내꿈이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적은 없었는가.
나는 종종 가족, 친한 친구들의 건강과 그들의 인간관계에 관련된 꿈을 꾸기도 한다.
앞선 이야기에서 우리는 유방암 진단을 받기 전 무시 못할 수의 여성들이 꿈을 통해 자신의 건강에 대한 경고를 받은 것을 보았다. 그들은 가족 중 죽은 이가 꿈속에 나타나 알려주기도 하고, 때론 꿈속 자신이 자신에게, 형용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 암의 경고를 알려줬다고 진술했다.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꿈을 꾸는 나는 멀쩡하지만 내 주변, 가족이나 친구들의 삶에 닥쳐올 위험을 그들이 아닌 '내가' 꾸는 경우.
안전의 위협을 받는 당사자가 아닌 바로 제3자, 꿈을 꾸는 나 자신 말이다.
예지몽이 뭔지 모르고, 내가 그런 꿈을 꾸는지 몰랐던 어린시절.
그저 부모님이 보고싶어서 혹은 그 친구와 이전에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서, 꿈속에 그들이 나온다고 여겼다. 어떤 꿈들은 가족들이 나온다고 해도 황당한 내용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우리 모두가 '꿈'에 대해 말할 때 대개 비현실적이라고 초공상적이라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던가.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꿈이 이끄는 길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내 꿈이 '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 제3자의 삶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꾸는 꿈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건강이나 안전을 경고하는 예지몽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왜냐면, 당사자에게 내가 주의하라고 말을 하기 전까지, 경고의 꿈은 중단되지 않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변주로 내가 그 당사자에게 이야기할 때까지, 때론 무섭고 때론 불쾌하기까지한 꿈이 거의 매일 밤 이어졌다.
이것 역시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다. 많은 고통 뒤에 오는 깨달음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상상이 되는가? 그것을 깨닫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어지는 불안한 꿈의 세상에서 내가 느꼈을 당혹감과 불안함...
처음엔, 역시나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혹은
'이성적인' 사람들처럼, 대수롭지 않게 무시했다.
'뭐지? 왜 이런 꿈을 꾸는 거지? 왜 벌들이 A의 이마에 있는 걸까'
무시하면 꿈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엔 꿈속에서 엉망인 모습으로, 울고 있는 A의 얼굴을 보게 된다.
엉엉 우는 친구의 목소리가 너무 생생해서 화들짝 잠이 깨고 만다.
꿈의 변주는 놀랍다.
절대 동일한 꿈은 아니지만, 하나의 '주제'에서 묘하게 변주된 꿈이 계속 이어진다. 변주와 변형 속에서도 그 변치 않는 주제는 바로 '경고' 혹은 위험에 대한 '각성'이다. 꿈속에 등장하는 장소가 조금 변하고 등장하는 사람이나 일어나는 사건이 달라져도 그 '경고'의 메시지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
처음엔 그냥 모른 척을 했다.
하지만 어제 이어 오늘도 또 '그런' 꿈을 꾼다.
'내게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려는 걸까.'
불안한 마음에 행동도 조심하게 되고 종일 신경이 곤두선채 날카로워진다. 하지만 내 삶에는 큰 변화도 위험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런 꿈을 계속 꾸는 걸까.
꿈이 이어지면 처음의 황당한 기분은 재빨리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바뀐다. 대개 그렇게 꿈이 이어지면 낮에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야말로 안절부절, 종일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으로 거래처 사람을 대하고, 업무를 보고, 웃고 조용히 속으로 불가사의한 꿈의 이유를 되씹어 본다.
두 세계를 살고 있는데, 한 세계는 다른 한 세계의 존재를 몰라야 한다.
타인에게 밤에 내가 사는 그 세계를 공유할 수 없고 나조차 이해를 할 수 없기에 이해시킬 수도 없다.
이 두 세계는 늘 서로가 서로를 해킹하고 그에 맞서 방어하고 또 가차없이 침입한다.
그리고 밤. 밤에 잠이 드는 것이 어떨 때는 불안하기까지 하다.
참고 또 참다가.... 결국 터트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