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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풀 Nov 12. 2021

발목 잡는 신사도

교수야? 제비야?

  다국적 기업에 근무하던 시절 미국인 상사가 동료 여직원을 대하는 태도로 남녀평등이나 신사도에 대해 당혹했던 기억을 토로한 바 있다. 이후로도 한 차례 더 다른 외국 기업에서 일했고 또 한국 회사에 있을 때도 주로 국제 마케팅을 담당한 터라 이래저래 문화적 접촉이 잦은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얼마 안 되서의 일이다. 교수 임용을 축하한다고 예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대리점 사장-여성 위주의 방문 판매 회사니 당연히 여성들이다- 서너 분이 찾아왔다. 함께 경치 좋은 바닷가 카페를 찾아 담소를 나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며칠 후 가깝게 지내는 동료 교수가 “교수님 제비라는 데요?” 반쯤 웃으며 농담만은 아닌 양 말을 건넨다.

“예?” @@


며칠 전에 누가 (짐작 가는 동료 교수가 있다) 카페에서 교수님이 여자분들에게 의자를 당겨주는 장면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다국적 기업의 마케터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은 자신이 나온 MBA를 내세우는 일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국제 매너를 배운다. 와인을 고르거나 식사 메뉴를 추천하는 일에서 상대를 배려해 경치를 등지고 앉는 일까지. 여성에게 자리를 빼주는 일에서부터 그녀가 자리를 비우려고 일어서면 따라서 일어나는 자세까지... 

 다음으로는 자기가 얼마나 많은 캠페인을 성공시켰는지 자랑한다. 마케터들의 능력은 자신이 참여한 전략이 얼마나 회사에 기여했는지가 매우 중요한 평가 기준의 하나다.(실제로 자기가 주관했는지 아니면 슬쩍 한 다리 걸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끝으로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특정 브랜드의 필기구나 양복, 와이셔츠, 넥타이 등을 착용한다. 이를테면 만년필은 몽블랑, 파카 양복은 페라가모나 보스, 넥타이는 에르메스, 구찌 뭐 이런 식이다. 난 MBA 출신이 아니다. 이 전 회사에서 몇 차례 내세울 만한 실적은 있지만 한국 기업에서는 그걸 자기 업적이라고 구분 짓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닮아가는 건 옷, 넥타이, 펜 등 외모다. 

  학교에 와서는 눈썰미 좋은 누군가가 그걸 본 모양이다. 

그러던 차에…


 다음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앞서 말한 여성 중심의 미국 회사는 두 가지 면에서 특이하다. 첫째는 자신들이 취급하는 상품- 식품 저장용 플라스틱 용기-를 매우 귀하고 소중하게 다룬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도록 훈련받는다. 동시에 회사는 판매원들을 최고의 예의를 갖춰 상대한다.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아내, 밥이나 해 주는 엄마와는 사뭇 색다른 경험이다. 자신의 정체성과 능력을 찾아가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고무한다. 특히 분기별 매출 실적에 따르는 인정 행사의 경우, 이들은 어디서도 받아보지 못한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당시로서는 탁월한 판촉 기법이었고 이를 위해 본사 임직원들도 최선을 다한다. 기업 경영이나 마케팅 전략, 그 하위의 판촉 이벤트에서도 한 발 앞선 저들의 방식을 체득한다. 이후 유사한 한국 판매 회사로 옮겨 배운 바를 시도하지만 그 시차를 확인하고 좌절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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