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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샘 Jun 16. 2022

시간부자가된 삶에 조급함이 끼어들다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을 타이밍

지난 17년간 내 삶은 전형적인 워커홀릭이었다. 오랜 시간 자신을 돌보지 않고 과부하가 걸린줄도 모르고 앞만 보며 달려왔다.  지금 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가는지, 방향을 잃고 허둥대다 번아웃이 왔다.

지난해 극심한 번아웃으로 인해 조그마한 일에도 화를 내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채, 극한까지 몰아붙이며 모든것을 부정적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번아웃 시기의 극한 상황에  맞물려 남편이 지내는 제주도로 어쩌면 도망치듯 이주하였다.


그렇게 갈망하던 온전한 24시간의 자유와 해방이 주어졌다. 그야말로 시간부자가 되었다.


처음 자유를 맞이했을땐 어린아이처럼 마냥 신나고 즐거웠다. 번아웃의 지뢰밭이었던 직장이라는 조직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그저 감격스러웠다. 더이상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란 이분법의 타이틀 안에 속하지 않아도 되었다. 학부모들의 민원도, 다양한 기질의 유아들의 소란스러움에서도  벗어났다. 시간을 단위, 단위쪼개쓰던  고단한 워킹맘의 삶을 영위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깊은 날숨이 쉬어졌다.


이주후 4개월동안  매일 매일 제주의 오름과 명소들을 둘러보며 그야말로 자유를 온몸으로 만끽했다. 자연의 경이로움, 신비스러움, 이국적인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채 하루하루 여유와 행복으로 물들어갔다. 작은 텃밭을 일구고 마당에서 매일 캠핑분위기를 자아냈다. 남편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 이런게 진정 행복이지!' ' 이것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지!'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아 갔다.

남편과 예쁜 까페를  찾고, 해안도로를 달리며  데이트하듯  맛난 음식점들을 방문하며 오감으로 제주를 누렸다.


그런데 불현듯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자유로운 해방감과 행복감 가득한 나날보내는 가운데 어느새  그 감격스런 감정은  저멀리 달아나고  조급함, 불안감이 스멀스멀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 이렇게 살면 내가 쌓은 커리어는 다 무산되는 건가? '

'의미없이 사라지는 건가?'

'이제 선생님아닌 그냥 엄마로서의 삶으로 지내는건가?

'아직은 직장인의 쳇바퀴 삶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은데...?'


켜켜이 쌓은 커리어가 끝났다는 불안감과 자유를 누리는 해방감 사이의 양가 감정의 저울질이 시작되었다.  이에 더해  존재자체를 인정해주는 소속감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것에 대한 공허함이 또아리를 틀었다. 며칠전 받은 그리움이 짙게 묻어난 편지도 한몫했다. 몇주간 계속된 감정의 소용돌이가 멈추질 않았다.





나대는 마음을 진정하려 도서관에 들러 우연히 마주하게된 .

"인생에서 너무 늦은때란 없습니다"를 만났다.


평생 농장에서 일했던 할머니는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평소 하던 자수를 할수 없게 되자,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흔들의자에 앉아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다. 80세에 개인전을 열었고, 100세에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



"살다보면 좋은일도 있고 나쁜일도 있지요. 다 우리가 겪어내야 하는 일들입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니 하루 일과를 돌아본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마쳤고 내가 이룬것에 만족합니다.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겁니다."


나만의 속도로 정말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신이 기뻐하시며 성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나이가 80이라 하더라도.  
-모지스할머니-
                         


모지스의 할머니 말씀에서위로와 다독임을 전달  받았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버리고  마흔을 넘어 택한 제2의 삶의 터전, 미래에 대한 조급함과 불안함을 내려놓고 우선 내 몸과 마음을 충분히 돌본후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물색해보려 한다. 나만의 속도로 실행해 보고픈 작은 실낱같은 희망과 평온함이 찾아왔다.



 지난 삶의 여정에서 나조차도 무관심했던 나, 그런 나에게 잊고 있었지만 설레는 질문들, 단순하고 사소하지만  한편으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질문들을 해보려 한다. 운전대를 놓고 다음을 기다리듯,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고 잠시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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