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삶이었던 워킹맘에서 시간 부자가 된 삶으로의 여정앞으로의 삶을 어떤 색깔로 채워갈까 고민하다 우선 그동안 시간 제약으로 미루어두었던 리스트들이 하나둘 떠올려졌다.
어느 날, 조용하고 한적한 조천리 바다 근처 마을을 거닐다 참새당이라는 무인카페 겸 갤러리가 눈에 들어왔다.
참새당: 양지바른 정자에 올망졸망 모여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재잘재잘 행복하게 살자는 의미의 치유센터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제주도만의 특색인 돌담집 풍경들이 액자 안에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이 정겹고 사랑스러워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펜으로 그린 돌담 안에 수채화로 채색되어 있는 그림에 홀릭해버렸다.
돌담 풍경을 감상하는 동안 잠시 나의 십 대 사춘기 시절로 잠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시간을 거슬러, 중학교 2학년 미술시간이었다.
5월의 학교 교정에서 풍경화를 담는 시간이다. 신록으로 물든 다채로운 나무들과 기다랗게 울타리를 감싸안은 담쟁이넝쿨, 벤치, 연못 등을 스케치하고 수채화물감으로 채색하였다.
미술 선생님께서 그림을 보고 말씀하셨다.
"오~ 풍경화 잘 그리네." "너 혹시 그림 그려볼 생각 없니?"
미술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칭찬과 제안에 어리둥절했지만 속으로는 내심 기뻤다.
하지만 선생님의 달콤한 제안은 지나가는 바람처럼 무심히 흘려보내버렸다.
이때 , 우리 집의 가장 형편은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아버지가 몇 년째 병마와 싸우다 하늘로 떠나시고, 작은 셋방 한 칸에 온 가족이 전전긍긍하며 삶을 견뎌내던 시기였다. 미술, 음악 등 예술 쪽은 딴 세상 이야기였다.
친구들이 피아노, 플루트를 배워 각자 재능을 뽐내던 때, 나는 열악한 집안 형편을 원망하며 열등감과 비교의식으로 점철된 채, 질풍노도의 힘겨운 십 대를 보내던 찰나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불혹 중반을 향해가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돌담집 풍경 수채화를 마주하는 순간십 대의 감성으로 몽글몽글 충전되면서 붓을 잡고 싶은 열망이 샘솟았다.
그렇게 홀리듯 수채 펜 드로잉에 첫걸음을 뗐다.
0.05mm 펜에 의지한 채 사물 일러스트를 표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무던히도 어색했다.
먼저 샤프심과 비슷한 얇은펜촉의 감각에 익숙해져야 했다. 컨튜어드 로잉(제시된 인물사진을 보고 펜을 떼지 않고 그리는 과정)을 시작으로, 눈을 감고 그리는 블라인드 드로잉, 같은 그림을 다양한 틀 안에 다양하게 그려 넣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드로잉에서제일 중요시되는 요소는 바로 "선"이다.
선의 굵기가 일정해야 하며, 끊어짐 없이 이어져야 한다. 선이 겹쳐지지 않아야 하며 공간의 모서리와 연결되어야 한다. 이 요소들을 머릿속에 각인하며 연습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순간 극도의 몰입감이 요구되었다. 순간순간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공방 안이 더운 열기로 가득해졌다.
숨을 가다듬으려 공방 창문을 열었다.
시원 바닷바람이 창문 틈으로 들어와 내 볼을 스쳐갔다.
'아, 좋다. 나만을 위한 공간, 나를 돌보는 시간'
이 시간만큼은 잡념, 걱정거리, 육아, 살림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며 나를 찾는 시간이 되어, 쉼 힐링은 물론 감사로 채워졌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의 선 연습이 끝에 드디어 풍경을 그리는 과정에 돌입했다.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은데 과연 잘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용기를 내어 하얀 캔버스에펜으로 그림을 조심스레 그려나갔다. 공방 맞은편 작은 돌담과 집을 시작으로 펜 드로잉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어 제주도 집의 세밀한 풍경(나무, 텃밭)을 더하며 그림 작업을 해나갔다.
단순히 도화지에 그림만 그려 넣으면 될 줄 알았던 생각은 많은 오차를 낳았다. 선을 표현할 때 사물들의 구도, 원근감, 소실점, 질감, 펜의 선 굵기와 힘 조절, 보이지 않는 곳까지 배려가 요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