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혼자서 쳐보겠다는 당돌한 마음을 품고 독학을 시작한 지도 이제 곧 2년이라는 세월을 꽉 채우게 된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성취도를 살펴보면 스스로도 형편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번씩이라도 전부 다 치고 넘어간 교재로는 바이엘이 유일하고, 체르니 100은 40번 즈음에서 흐지부지, 브루크뮐러도 초반 6-7곡을 치다가 기브 업, 그나마 간신히 붙들고 있는 소나티네와 체르니 30도 한 악장, 한 곡을 '그나마 틀리지 않고 치는 수준'까지 올려놓기까지는 한 달은 기본이요, 보통 두세 달씩 붙잡고 있기도 한 상태니...
돌이켜보면 피아노를 시작하고 나서 한두 달 동안은 매우 신이 나 있었다.
'가운데 도'가 어디인지 아는 정도가 전부였던 내가 단 몇 주 만에 바이엘 반권을 후딱 쳐냈고, 또 남은 몇 주 동안 마지막까지 소화해 냈으니까. 나 어쩌면 천재 아니야?라는 민망한 생각까지 떠올렸을 정도.
그러나 초심자의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당장 체르니 100의 초반 몇 곡을 제외하고는 리딩에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고, 단 10~20마디 정도의 곡조차도 틀리지 않고 제대로 쳐내기가 버거워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때를 기점으로 현재까지 30대 피아노 독학생의 디폴트 마음가짐은 이 상태다.
---> 나 제대로 치고 있는 거 맞나?
의심이 늘 마음 한구석에서 떠나지 않는다.
가끔 연주의 자문(?)을 구하곤 하는 전공생인 한 친구는 나보고 매일매일이 슬럼프냐며 비웃을 정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지금 새로 열심히 익히고 있는 곡은 자신의 실력이 소화하기에 힘든 부분이 많은 '도전'에 가까우므로, 아무리 연습을 거듭하더라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그럴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어느 정도 마음의 타협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려 독학 초기에 배우던 교재를 다시 펴 보자. 이를테면 바이엘 중반부 정도의 곡이나 체르니 100의 초반부 곡처럼 간단한 것들. 과연 교재를 딱 펴서 단박에 촤르륵 쳐낼 수 있는가? 아냐, 난 못 해. 눈에 익숙한 악보이긴 하나, 이미 머리에서도 손가락에서도 잊힌 지 오래이기에 결국에는 초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수준이다. 이러니 마음이 꺾일 수밖에.
'나 제대로 치고 있는 거 맞나?'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꿔야 옳겠다.
---> 나 한곡이라도 제대로 칠 수 있는 곡이 있기는 한가?
유튜브를 보면 고난도의 곡을 초견으로 단 한음도 틀리지 않고 인템포로 쳐내는 귀신들이 즐비하고, 피아노 시작 단 몇 개월 만에 수준급의 연주를 뽐내는 천재들도 수두룩하다. 난 천재는커녕 사실 재능이라곤 없는 거였네.
사실 냉정하게 따지자면, 그렇다. 재능의 기준이 무엇이건 간에, 나는 애초에 천재도 아니었고, 또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시작한 피아노가 만만할리 없다는 것도 실제론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바이엘 수준의 간단한 곡도 단박에 쳐내지 못하는 스스로가 초조하고 안타까워 견딜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점점 독학에 관한 자신감이 고갈되고 있기도 하고.
불편함이 생기면, 멀어질 수밖에 없고, 멀어지면, 결국 내 것이 아닌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학원이나 개인 교습이라는 구원 투수가 있지만, 공교롭게도 세상은 언택트의 시대. 쉽사리 바깥으로 눈을 돌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귀찮은 게 먼저 아니냐고?)
그리고 슬프게도, 어른에게는 시간이 늘 부족하다. 전염병이 돌아도 먹고살아야 하는 육신의 한계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기에, 오늘도 피와 살을 깎아가며 돈을 만드는 게 인생의 1순위일 수밖에. 반백수나 다름없는 프리랜서에게도 이것만큼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아니,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프리랜서는 오히려 고정적인 근무 시간이 없다는 점에서 정해진 개인의 시간을 내기가 더욱 어렵다.
그래서,,, 피아노 뚜껑을 열지 않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 피아노에서 멀어지려나?
나와 똑같은 고민을 갖고, 나와 똑같은 루트로 피아노를(혹은 다른 무엇이든 간에) 흐지부지 놓아버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을 것이다. 이 불확실함과 고통을 넘어선 소수의 사람들만이 어디 가서 피아노 좀 친다고 하는 사람이 되는 거겠지만...
즐겁게, 멈추지 않고. 그것이 취미생의 궁극적인 목표이겠으나.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까?
나에게 있어서는 아직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