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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Jun 28. 2021

유튜브로 피아노를 배운다고?


2021년, 인터넷은 이미 일상의 일부분이 아니라 삶 그 자체에 스며든지 오래다. 음악이나 스포츠같은 취미생활에서도 예외는 아니라서, 레슨이나 혹은 서적 등을 통한 정보 습득보다는 인터넷 영상 매체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는 일에 다들 익숙해 진 듯 하고. 또 그것들을 통해 실제로 양질의 정보를 종종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리라. 그러니 나처럼 혼자서 피아노를 공부하는 사람에게게 전통적인 의미의 '독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것은 어쩌면 낡은 생각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도 싶다. 오늘도 수많은 피아노 취미생들은 유튜브를 통해 얻은 정보를 토대로 다양한 연습 방법을 계획하고, 또 적용해보려 노력하면서 과거의 전통적인 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독학을 꾸려나가고 있으니까. 나 또한 예외는 아니고.


그렇다면 독학생을 돕는 영상 매체와도 같은 것이 아예 없었던 옛 시대에 비해서, 다시 말해 피아노를 배우고자 하면 학원이나 개인레슨만이 선택지의 전부였던 과거에 비해서 피아노 취미생의 실력은 더 효율적으로 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영상 매체와 실제 레슨 사이에는 극명한 질적 차이가 있다'와 같은 고리타분한 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음악대학 교수님의 레슨이든, 동네 학원 강사님들의 강습이든, 혹은 독학생의 구세주인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영상이든간에, 그 안에 담긴 내용적인 퀄리티의 높고 낮음과 관계 없이 피아노를 배운 지 몇년 안 지난 취미생에게는 큰 차이 없는 인풋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쇠귀에 경 읽기' 까지는 아니더라도, 열가지의 가르침을 쥐어 줘 봤자 내게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단 하나에도 못 미친다면 나머지 아홉 이상은 그것이 아무리 주옥같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실력 향상의 골자는 언제나 인풋되는 내용을 '잘 소화할 수 있는 그릇'을 키우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쉽게도 혼자서는 좀처럼 개발하기 쉽지 않은 영역의 일이다. 사실, 훌륭한 레스너의 역량이란 바로 이 소화능력을 일깨워주고, 길러주는 능력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혼자서는 도무지 키우기 어려운 영역이기에 언제까지나 작은 그릇만을 들고 이리뛰고 저리뛰는 우리 취미생들은 결국 얼마 못 가서 한계점에 도달하기 십상이고, 안타깝게도 큰 포부를 품고 시작한 독학생들이 그 시점에서 방황에 빠지거나, 최악은 포기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내 피아노 전공생 지인은 이러한 조기 탈락의 위기를 ‘1년 병’이라고 부르더라)


현재로서는 영상물을 통해서 얻는 배움의 기회들은 이 부분만큼은 해결해주기 힘든 듯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영상 매체는 아직까지는 일대 다수의 일방통행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 그릇의 성분과 가능성을 유튜브의 레스너들은 모른다(그들의 자질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그릇이 얼만큼 크고 또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지 못한 상황에서 그것에 적합한 내용물을 마련해 담아주는 것은 어떤 천재 교육자에게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유튜브를 통한 배움은 늘 피상적인 이해 단계를 넘기 힘들다.


그렇다면 독학생이 혼자서 그 그릇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아예 하나도 없는 것일까?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방법이 존재한다. 이번에야말로 고리타분한 소리가 되겠지만, 그것은 다름아닌 ‘피아노 앞에 줄기차게 앉는’ 것. 유튜브에서 발굴해 낸 마법같은 꿀팁 혹은 지름길이나 왕도 같은 환상일랑 잠시 물리치고, 하루 하루 충실한 기본기 연습을 진득하게 해 내는 것. 일주일, 한 달, 일 년... 그렇게 하다보면 아주 티끌만큼씩, 그러나 분명하게 내 그릇이 커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비단 피아노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떠한 배움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이겠지만, 결국 기본이 답인 것이다. 단조로운 길이지만, 그 누구도 결코 쉽게는 정복하지 못하는 길이기도 하다.


물론 ‘유튜브같은 영상물을 통한 정보는 영양가 없는 칼로리 덩어리일 뿐이니 절식하라 소리는 아니다. 다만 우리는 어쩌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스스로 소화할  없을 만큼의 과도한 정보를 너무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번쯤 되돌아 봐야 한다는 .  손가락의 완벽한 독립, 몰토 프레스토쯤 콧방귀가 나오는 속주, 눈부신  해석 능력, 귀신같은 초견력... 이런 것들을 어떠한 묘수를 통해 단시간에 이룰  있다는 환상을 떨쳐내자는 것이다( 그대가 천재라면 이야기는 다르겠으나). 기본기를 성실히 연습하고 나서도 시간이 남는다면 유튜브 등에서 얻은 다양한 팁들을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으나, 사실 그럴 여유가 있다면  수준에 맞는 연습곡을 정직하게    치는 것이 초보자에게는 더욱 유익할 일이리라.


리도 잘난  떠드는 필자가 오늘 피아노 앞에 얼마나 앉아 있었냐 물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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