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 #2
예전에 한창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폭삭 속았어요”에는 마음을 울리는 대사가 많았다.
정확한 워딩은 가끔 흐릿하지만, 문득 나의 일상생활에서 떠오르는 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과거와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오늘 아침은 그중에서도 이런 말이 떠올랐다.
“인생이 공수 교대다, 그렇지? 반드시 뿌린 대로 와, 꼬숩게.”
시댁은 넉넉했다.
우리 집도 찢어지게 가난한 건 아니었지만, 돈을 쓰는 그릇 자체가 달랐다.
결혼이라는 큰 일을 치르면서 부모님도 그 집안의 씀씀이에 조금은 영향을 받으신 듯했다.
내가 받은 예물을 보고 새언니에게도 비슷하게 해 주려다, 결국 “이건 우리에겐 무리다”라는 말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결혼 후 전남편과 첫 여행을 계획했을 때, 시어머님은
“오래간만에 놀러 가는데 엄마가 용돈을 줄게”라며 50만 원인가를 내어주셨다.
나는 그 이야기를 자랑삼아 친정엄마에게 했는데,
다른 때는 여행을 가든 무엇을 하든 크게 인사치레를 하지 않으시던 엄마가
웬일인지 김밥과 간식을 정성껏 싸주셨다.
그때 나는 시어머님께는 온갖 미사여구를 담아 인사를 드렸으면서,
엄마에게는 정작 “고마워”라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 집이 가난한 것도 아닌데 돈으로 주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전남편은 “봐, 너 시집 잘 와서 이런 대접받는 거야”라며 어머니의 돈을 자랑했고,
나는 그 앞에서 “봐, 우리 엄마가 김밥 싸주신 거야”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의미였을지, 지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공수교대
이혼을 할 때,
대학까지만 내가 어떻게든 책임지자.라는 마음으로 아이들 둘을 맡았다.
그리고 대학이 결정되면서
이제 내 노후를 계획해 볼까.라는 안이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오히려 더 많은 돈이 필요해졌다.
등록금, 집 문제, 운전면허, 이제는 규모가 커진 용돈까지…
이제는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채워줄 수 없는 현실적인 부분을 돈으로 해결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성인이 된 딸은 고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많이 힘들지?”, “엄마는 너 편이야”라는 말보다
통장에 꽂히는 돈에서 더 큰 위로를 받는 듯했다.
주말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딸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등록금은 다 내주신대. 집을 구하면 아빠가 생활비를 대주실 거고, 아빠가 엄마한테도 용돈처럼 50만 원씩 꼭 받으래. 엄마, 그거 감당할 수 있어?”
자존심이 조금 상했지만, 나는 대답했다.
“시에나가 필요한 돈이면 당연히 주지. 그런데 엄마는 그냥 돈을 주는 것보다 의미 있는 걸 해주고 싶어. 보험을 들어줄까, 아니면 기름값을 대줄까, 아니면 카드를 줘서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을 맡아줄까? 보험이 괜찮겠다. 보험이 약간 증여의 개념도 있어서..”
"음.. 아냐. 아빠에게는 엄마가 용돈 준다고 말할게."
결혼을 한 후,
전남편은 보험 하나 없는 나에게 그랬다.
" 너희 부모님은 보험 하나 안 들어주셨어? "
그래서 보험 이야기를 했는데
아이는 조금 생각을 하더니
" 보험은 무슨.. "
그래서 내 딸들은 20살이 되면 보험을 꼭 들어주어야겠다, 생각했는데..
보험은...
좀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아이가 크면서
새로운 고민거리들이 생겼다.
운전면허도 그러했다.
수능이 끝나고 아이는 운전면허 시험을 덜컥 등록해 버렸다.
“엄마 그런데 거의 100만 원이야.”
그거 엄마가 다 대줄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실 쉽지 않았다.
“ 엄마가 50만 원 대줄게. 혹시 더 필요하면 이야기해.”
" 아냐 부족하면 아빠에게 이야기할게, 엄마는 나중에 기회 될 때 줘. "
먼가 어색한 기류에
지금이 기회인가?라는 생각으로
나는 큰맘 먹고 50만 원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저번에 운전면허 엄마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그거야.”
딸은 그 돈을 식탁 위에 두고 외출 준비를 마쳤다.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돈이 순간 섭섭했지만,
내가 50만 원, 100만 원을 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는 없었다.
" 이거 안 가지고 가? "
나는 돈을 들고 아이 방으로 갔다.
" 잘 쓸게. " 라며
아이는 돈을 서랍에 두고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출발했다.
둘째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괜히 마음을 털어놓았다.
“씨엘, 힘든 거 있으면 언제든 엄마에게 이야기해.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엄마가 해줄게.”
“아침에 언니 때문에 엄마가 속상하구나. 엄마 노후는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아냐. 엄마는 씨엘이 언니처럼 하고 싶은 것들을 누리고 살았으면 좋겠어.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아이는 내렸다.
그리고 카톡이 왔다.
[이쁜 시엘] [오전 9:49] 엄마 힘내
[나] [오전 9:54] 아냐
[나] [오전 9:54] 그래도 아빠께서 등록금 내주시는 게 어디야
[나] [오전 9:54] 대학 간 게 어디고
[이쁜 시엘] [오전 9:54] 엉..?
[이쁜 시엘] [오전 9:54] 나 시엘인데
[나] [오전 9:55] 시엘. 알지..
[이쁜 시엘] [오전 9:55] 응
[나] [오전 9:55] 체고 간 게 어디야
[이쁜 시엘] [오전 9:55] ㅋㅋㅋㅋ
[이쁜 시엘] [오전 9:55]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요
[이쁜 아연이] [오전 9:55] ㅋㅋㅋㅋㅋ
[나] [오전 11:15] 아니야
[나] [오전 11:16] 하루아침에 들어갈 수 있는 거 아니니까
[나] [오전 11:16] 대단한 거야
그래,
어찌 보면 오늘 아침은 공수교대라기보다 감사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등록금, 생활비, 운전면허.
그 모든 것을 내가 다 감당해야 한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자존심, 엄마의 자리,
그런 것들 자체는 생각조차 안 났을 수도 있다.
삶은 늘 공수교대처럼 오고 간다.
내가 엄마의 김밥에 “고마워”를 말하지 못했던 것처럼,
아이도 지금은 내 마음을 다 헤아리지는 못할 것이다.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기 위해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나는 생각할 것이고
언젠가,
오늘의 기억이 나의 발전과
아이들의 발전에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언젠가 딸이 나의 입장이 될 때
작은 정성과 부족한 돈이
아이의 기억 속에 따뜻한 빛으로 남을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오늘의 이 아쉬움마저도
감사로 채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