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이름의 역설
자유.
우리는 누구나 그것을 꿈꾼다.
그리고 그 단어를 쉽게 이야기한다.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것처럼,
마치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것처럼.
하지만,
자유란 무엇인가.
내가 느끼는 자유는
진짜 자유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허락한
조건부 해방일 뿐일까.
자유를 꿈꾸던 첫 순간
학업에 치여 살던 시절을 지나
대학에 들어가던 날,
나는 자유를 얻었다고 믿었다.
스스로 결정하고,
내 시간과 몸을
내 뜻대로 쓸 수 있다는 환상.
하지만 사회가 나에게
조금씩 공간을 열어줄수록,
부모님은 그만큼
나의 반경을 좁혀왔다.
아빠는 수업이 끝난 저녁,
내가 친구들과 웃고 있을 시간에
“어디니?”,
“언제 오니?”
그 말들로
나의 자유를 조용히 조여왔다.
9시가 되면
집 앞에 서서
말없이 나를 기다리던 아빠의 모습은
사랑이었지만, 동시에 속박이었다.
나는 자유를 누리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나의 자유는 사라졌다.
자유를 향한 갈망
시간이 지나
그 속박은 오히려
자유에 대한 갈망을 더 깊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유학을 떠났다.
“이제 진짜 혼자다.”
“진짜 자유다.”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혼자라는 건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자유로우니 오히려
스스로를 더 조이고,
더 일찍 집에 들어가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를 더 단단히 붙잡았다.
자유는 가까워진 듯,
그렇게 더 멀어졌다.
자유의 또 다른 얼굴
결혼을 했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편은
나를 터치하지 않았다.
무엇을 하든,
몇 시에 들어오든
그는 나를 자유롭게 두었다.
그 자유는
이상하게도 나를 불편하게 했다.
무심한 듯한 그 배려는
외로움이 되었고,
나는 그제야 알았다.
때로는 약간의 속박이
더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자유의 부재, 그리고 책임
그리고 출산.
그 순간,
나의 작은 자유마저도
송두리째 사라졌다.
밥을 먹는 자유,
잠을 자는 자유,
심지어 화장실을 가는 자유까지.
모두 아이에게 내어주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자라고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주어진 자유 속에서
나를 더 조이고 있었다.
자유란 무엇인가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누군가의 허락이 아닌,
누군가의 시선이 아닌,
내가 원하고, 내가 편안한 삶.
그게 진짜 자유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구속이 있을 때
자유가 좀 더 빛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영원히 그 자유를
완전히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자유를 꿈꾼다.
그 꿈은
내가 나를 지켜내는 방식이다.
그리고 언젠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는
그 하루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유는
나에게
자유는
네가 나를 구속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