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단 일주일만 옆에 머물러도
그 자리에 향기와 흔적이 남는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면
그 빈자리는 생각보다 크게 남는다.
처음엔 그 공백이 낯설고 어색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빈자리에
조금씩 익숙해진다.
그 자리를 다른 것들로 채워가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시에나는 3년 동안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지냈다.
그 시간 동안
우리 집에는 그녀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빈자리는 처음엔 낯설었지만
우리는 그 낯섦마저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왔다.
어마어마한 짐과 함께.
그녀가 싸 온 짐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3년 동안 쌓인
습관, 감정,
그리고 시에나라는 사람의 결이 담긴 시간들이었다.
그 짐을 풀어내는 일은
단순한 정리가 아니었다.
그녀의 자리를 다시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의 빈자리에 이미 자리 잡은
내가 익숙해진 방식,
내가 만들어둔 질서,
내가 쌓아온 습관을
조금씩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바로 자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내 삶에 들인다는 건
내 공간을 조금씩 내어주는 일이고,
내가 해오던 역할을 조금씩 내려놓는 일이고,
그 사람의 방식과 속도를 존중하는 일이다.
관계에서도
자리를 만든다는 건
생각보다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 자리는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고,
때로는 삐걱거릴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도
그 마음이 닿는 방식은 언제나 같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서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 자리를 만들고 싶다면,
그 사람 곁에 머물고 싶다면,
나는 나의 속도를 조절하고
그 사람의 결을 읽어야 한다.
그건 나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조금씩 다듬어가는 일이다.
내가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마음에 무게를 실어주는 일.
그렇게 조금씩 맞춰가다 보면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그 자리가
어느새 나의 자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관계란 결국,
없던 자리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고
그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서로를 조율해 가는 일이다.
시에나의 짐을 정리하면서
관계를 되짚으면서
나는 오늘도 균형을 배워간다.
무형과 유형은 항상 서로 얽혀 있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관계를 정리하고,
나 자신을 정리한다.
그 속에서 나는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배운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다.
없던 자리를 마련하는 것,
그리고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
그건 결국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맞이하는 방식이다.
정리하면서 찾았다는
본인에게 쓴 5년전 편지.
이런 게 정리의 재미겠지.
우리의 5년 후 모습은
어떤 향기와 흔적으로 남아 있을까.
나의 옆에는 누가 자리 잡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