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한때 스타플레이어였던

by 에메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참 모질고도 신기하다.


씨에나를 낳기 직전, 나는 잠시 외국인 회사에서 비서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시댁에서는 일을 원하지 않았지만, 나는 집에만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 직전까지 일을 했으니,
가장무도회 콘셉트였던 연말 파티에서는 내가 가장 준비를 잘한 직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코스튬은 뱃속에 있는 씨에나였으니 말이다.


그 직장은 평생 다닐 곳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인 사장님을 모셨고, 유럽인의 여유 있는 태도(나중에 그것이 환상임을 알게 되었지만)는
당시의 나에게는 잉여의 시간을 보내고, 나만의 공간에서 음악을 들으며 태교를 하고,
알맞은 영어를 쓰며 호텔에서 회식을 하는 나름 외국인 회사의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다.


그곳에는 영업부장님이 계셨는데, 비서인 나와는 크게 접점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음 인연은 부천에 살고 있을 때였다.
부장님께서 연락을 주셨고, 부천 백화점에 일을 보러 오신다고 하셨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간 그 자리가 꽤 민폐였을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명절 인사로만 이어지던 인연이,
어느 날 갑자기 부장님의 연락으로 다시 이어졌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시는데 도움을 달라는 말씀이셨다.

예전에 육아에 지친 나를 찾아준 그 인연이 고마웠는지,
여전히 호탕하신 성격이 고마웠는지,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돕고 싶었다.


한 달 남짓 사업 파트너로 함께 연락하며 일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 달 전, 또 연락이 왔다.

“캐리 씨, 나 **로 이사 왔는데, 캐리 씨 여기 살지 않아?”


그렇게 인연은 다시 이어졌고,
오늘도 오랜만에 부장님과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도 알았다.


내가 잠시 다녔던 화장품 회사는 업계 1위라기엔 부족했지만,
보통 회사보다는 조금 괜찮은 이미지를 가진 곳이었다.


잠시 다닌 회사라 잘 알지는 못했지만,
오늘 알게 된 사실은 내 앞에 앉아 있는 부장님이 나름 ‘스타 영업사원’이었다는 점이다.


백화점이라는 공간에는 핵심이 되는 본점이 있고,
그 밖에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지점, 비교적 수익이 잘 안 나는 지점,
그리고 새로 생기는 지점이 있다.

회사들은 본점에 입점하기 위해 애를 쓰고,
백화점은 브랜드 파워가 있는 회사들을 들여오기 위해 노력한다.

새로 생기는 지점이나 비교적 수익이 낮은 지점에는 다양한 브랜드를 채워 넣으려 하지만,
본점은 백화점의 얼굴이자 상징이기 때문에 모든 브랜드가 들어갈 수는 없는 구조이다.

본점 입점 자체가 브랜드에게는 큰 가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업계 2~3위 이하의 회사들은 본점에 들어가기 위해 백화점을 갑으로 모셔야 한다.

한편, 당시 내가 다녔던 회사는 전국의 거의 모든 지점에 입점해 있었지만,
유독 본점의 문턱은 넘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본점이라는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브랜드 파워, 성과, 그리고 전략적 관계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어려운 일을 부장님이 해내셨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여러 가지 타이밍과 인연들이 얽혀 있었다.


스타플레이어인 부장님(현재는 대표님인데 내가 편하니까 부장님)의 일하는 스타일은
당시 대표이사였던 프랑스인 사장님과 잘 맞았고,
둘 사이에는 투자와 협상, 여러 가지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성과를 내고, 성과에 따라 회사는 더 큰 회사에 합병되었고,
나는 출산으로 회사를 그만두었으며,
프랑스인 사장님도 회사의 성격에 맞지 않아 떠나셨다.
부장님 역시 또 다른 스타플레이어를 원하는 곳으로 이직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다른 회사의 대표님과 영어 강사로 다시 만났다.


참, 타이밍이란.
그리고 인연이란.


그래서 궁금해졌다.
어떻게 그 어려운 일을 해내셨는지.


많은 사람들이 본점 입점을 위해 매니저와 친분을 쌓거나 인맥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장님의 관점은 달랐다.


“칼을 쥐어 줘야지.”


즉, 단순히 술을 마시며 친분을 쌓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점은 백화점의 메인 무대이고, 다른 지점은 연습 무대나 보조 무대에 가깝다.
연습 무대에서 아무리 공연을 잘해도 메인 무대에 오르려면
관객과 평단을 모두 설득할 만한 명분과 성과가 필요하다.


결국 본점 입점은 단순한 영업 성과가 아니라
브랜드가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증명하는 과정이며,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직 메인 무대에 설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본점 입점에는 다른 지점에서의 성과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성과가 있어야 매니저에게도 ‘명분’이 생긴다.


하지만 많은 다른 부장님들과 과장님들은 인맥으로 그 자리를 따내려 했지만,
부장님의 접근법은 결국 인맥이나 관계를 넘어서는
실질적인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부장님은 2위 지점에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여러 프로모션 등을 그쪽으로 집중하셨고

단기적이지만

동종 다른 업계보다 단기간에 입지를 확 올렸다고 하셨다.


그렇게 수년간 넘지 못했던 본점의 문턱을 넘으셨고


부장님도

그 매니저도 한동안 승승 장구 하셨다고 하셨다.


이 대목은 단순히 영업의 기술을 넘어,
나에게는 사회생활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적 관점이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단순한 친분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도구’와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다.


* 성과가 곧 신뢰: 작은 성과들이 쌓여야 큰 기회가 열린다.

* 인맥은 결과 위에 세워진다: 결과가 있어야 인맥도 힘을 발휘한다.

* 전략적 배려: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생각하고 제공하는 것이 결국 나를 돋보이게 한다.


결론적으로 사회생활은 단순히 사람을 ‘쥐고 흔드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가 움직일 수 있는 이유와 근거를 만들어주는 과정이다.


스타플레이어

백화점 영업 업계의 스타플레이어였던 부장님과의 대화에서 오늘의 키워드가 있었다.


“9번의 실패 끝에 1번의 성공을 가져다줄 스타플레이어가 필요한가.
아니면 큰 성공은 아니더라도 실패를 안겨주지 않는 안정적인 플레이어가 필요한가.”


스타플레이어는 언제나 화려하다.
그가 가져다주는 성공은 팀의 역사를 바꾸고, 모두에게 환호와 영광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수많은 실패가 따른다.

9번의 실패를 감수해야 1번의 성공이 찾아온다.
그 실패는 때로는 팀 전체의 사기를 꺾고, 때로는 조직의 기반을 흔들기도 한다.

스타플레이어를 선택한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이자,
큰 성공을 향한 도전의 선택이다.


반면, 안정적인 플레이어는 화려하지 않다.
그는 큰 성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하지만, 실패를 최소화한다.

늘 일정한 성과를 내고, 팀을 안정적으로 지탱한다.
그의 존재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팀 전체의 흐름을 무너지지 않게 한다.


안정적인 플레이어를 선택한다는 것은 지속 가능한 신뢰를 택하는 것이며,
작은 성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꾸준함의 선택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스타플레이어처럼 큰 도전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고,
때로는 안정적인 플레이어처럼 실패 없는 꾸준함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누군가와의 큰 사건이 관계를 바꾸기도 하지만,
작은 배려와 꾸준한 신뢰가 관계를 오래 이어가기도 한다.


개인의 삶에서도 화려한 도전은 성취감을 주지만,
안정적인 일상은 마음의 평화를 준다.


결국 필요한 것은 균형이다.

스타플레이어와 안정적인 플레이어는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다.
큰 성공을 꿈꾸는 순간에는 스타플레이어가 필요하고,
팀을 지탱하고 실패를 줄이는 순간에는 안정적인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도전과 안정은 서로를 보완한다.

도전이 없다면 삶은 정체되고, 안정이 없다면 삶은 무너진다.
결국 우리는 도전 속에서 안정의 뿌리를 내리고,
안정 속에서 도전의 가지를 뻗어야 한다.


9번의 실패 끝에 1번의 성공을 가져다줄 스타플레이어,
그리고 실패를 최소화하며 꾸준히 성과를 내는 안정적인 플레이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롭게 활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삶은 팀 경기와 같다.
때로는 화려한 스타가 필요하고,
때로는 묵묵한 안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균형을 찾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더 단단한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그렇게 한때 스타플레이어였지만,
지금은 안정적인 플레이어로 살아가는 부장님,
지금은 대표님과의 대화는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나는 오늘도 안정적인 스타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내 오후를 다시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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