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LY Sep 26. 2023

가난은 모두에게 처음이고, 모두에게 차갑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어릴 땐, 어느 날 눈을 뜨면 멋진 어른이 되기를 꿈꿨다. 천장이 낮고 좁은 집은 숨이 턱 막혔고, 지루한 학교 숙제를 하는 대신 하루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아빠는 왜 돈을 벌지 못할까? 엄마는 왜 먹다 남은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또 넣을까? "나는 그런 어른이 되지 않겠다"라고 몇 번이고 다짐하던 호기로운 시절은 지나갔고, 지금에서야 나는 그들도 인생이 처음이기에 그들이 아는 최선에서 가족을 위해 노력했음을 안다. (게다가 그들이 가진 것이라곤 나처럼 오만방자한 외동 딸 뿐이었다. 먹여 살릴 입 하나 주제에 세상에 대한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하지만, 그 노력을 알고 있는 지금도 가난을 예쁘게 포장할 수는 없다. 사탕 껍질처럼 얇고 바스락거리는 몇몇의 행복했던 기억을 덧씌워보아도, 내 가난의 거무죽죽한 색은 그 껍질을 비집고 나온다. "너는 코스트코에 못 가? 너 가난해?", "정말로 저번에 그 차가 너희 아빠 차야?"라는 말로 뒤덮인 내 어린 시절은 아무리 되감아도 예쁘게 포장하는 법을 모르겠다. 문방구에서 팔던 싸구려 아바타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도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던 나의 공책을 닮았다.



    여기, 싸구려 아바타 스티커의 촌스러운 옷만큼이나 화려한 보라색 '매직 캐슬'에 사는 무니와 그녀의 엄마 핼리가 있다.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친구 엄마네 가게에서 밥을 얻어먹고, 퇴근한 엄마와 목욕을 하고 잠에 드는 무니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엄마인 핼리는 무니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 된다고 말하고, 무니는 그 말만을 듣고 자란다. 무니에게 세상은 핼리가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무니는 엄마를 따라 밥을 얻어먹을 식당으로, 일을 구할 인력 사무소로, 불법 상행위를 할 디즈니월드로 숨어들어 세상을 본다. 하지만, 그 세상도 얇고 투명한 사탕껍질 같은 핼리의 거짓말을 섞은 세상이다. 분홍색 사탕껍질에 투과되는 환상의 세상을 보던 무니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공무원들에 의해 필터 없는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핼리는 그동안 무능하고 자격 없는 엄마이기만 했을까? 



    핼리에게도 이 세상은 처음이었다.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저소득층으로 보이는 핼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일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일을 하는 와중에도 무니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겨우 얻은 일자리마저 빼앗겼다. 수렁에 빠진 핼리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하고, 자신과 무니가 행복해지기만을 바랬던 그 선택으로 무니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어른들을 피해 무니와 친구가 도망친 곳은 디즈니월드이다. 또 다른 환상의 세계로의 도피를 선택한 아이들은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반대방향으로 걷는 디즈니월드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결국 현실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핼리가 씌워준 사탕껍질 필터가 없는 사회 복지 시설이 무니가 돌아갈 곳이며, 그녀의 가난은 절대 아름답게 포장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가난은 아름답지 않다.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이며,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또 한 번 느꼈다. 하지만 누군가 알아줄 수 없었을까? 어른이 처음인 어른도 보호의 대상임을,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배워야 할 존재임을 알아줄 수 없었을까? 핼리가 일하는 동안 무니를 돌봐줄 기관이 있었다면, 나의 부모에게 나름의 최선의 방법이 아닌 옳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려주었다면, 무니와 나의 인생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