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오브워터>
오늘 오전, <셰이프오브워터>를 봤다. 아무런 계획없이 급히 예매했는데 알고보니 오늘이 개봉일이었다. 궁금하던 영화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는 행복한 시즌이다. 지금까지 확인한 영화는 <패터슨>, <콜미바이유어네임>, <킬링디어>, <굿타임>, <쓰리빌보드>, <머드바운드>정도인데 <셰이프오브워터>까지. 행복하다. 아직 보고 싶은 작품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사실 <셰이프오브워터>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예고편은 기대보다 뻔한 예상을 하게 했고, 소재도 그닥 끌리지 않았더랬다. 로맨스? 로맨스라는게 뉘집 개이름인가 밥반찬인가...하고 사는 인간에게 동화같은 로맨스는 의심의 눈을 치켜뜨게 만들고 '그 얼마나 진정한지 증명해보거라'하고 비스듬한 태도를 취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에 갖는 선입견이 조금 있는 편이다(개취). 대단하고 초월적인 사랑은 일상의 소박한 사랑보다 일면적이니까. 하지만 <셰이프오브워터>는 약자들의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로 역사의 한 시기와 그 시기를 담당했던 백인 남성 주체를 비꼬는 것에 성공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거창하지 않은 것이 매력이랄까.
<셰이프오브워터>는 소박한 사랑을 단순히 밀어부침으로써 대담한 주장 “ 젠장, 넌(타자) 신이구나.”하는 인간의 시인을 얻는 것에 성공한다. 한 여인의 사적이고 소박한 일상에서 시작되는 <셰이프오브워터>는 1960년대 우주 경쟁으로 치열하던 냉전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중심인물들은 이 우주 경쟁의 정치적 포지션에서 캐릭터를 부여받는다. 악으로 설정된 실험실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섀넌)는 영화에서 누구보다 가장 인간적인(영화상 부정적 의미에 가까운)인간으로 등장한다. 이 인간적인 인간은 엘라이자(샐리호킨스)와 양서류인간(더그존스)의 사랑을 훼방놓는다. 스트릭랜드는 양서류인간을 학대/고문하고 심지어 해부할 계획이다. 그는 젤다(옥타비아스펜서)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치않으며, 말하지 못하는 엘라이자를 농아라고 빈정대고 심지어 그녀에게 상처가 될만한 핸디캡에 자신의 성적환상을 투사하기까지 하는 등 인간 이하의 모습을 보인다. 스트릭랜드의 비인간적 행동은 사실 자신이‘하나님 형상대로’빚어졌다고 믿고 곤봉을 휘두르며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정상적인 백인 가정의 아버지로 군림하는 전형적인 백인 남성의 모습이다. 냉전시대 남성성을 대표하는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실수를 용인해주지 않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이 투덜거림은 장군의 명령 한마디에 불식된다. 존재의미를 부여해주는 주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는 성난 개처럼 잔뜩 흥분해 쫓아다니고, 썩은 손가락을 서슴없이 뽑기도 한다. 그는 이렇게 행동함으로써, 주인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진정한 인간이 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이 60년대의 남성(특히 군인)은 흑인(젤다), 게이(자일스), 특히 말못하는 장애-여성(엘라이자)과 양서류인간 커플의 종을 초월한, 희생적인 사랑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타자(들)가 바로 신이었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시대의 환상이자 백인 남성의 환상이 깨진 것은 엘라이자의 믿음‘나를 온전한 존재로 바라본다고 믿어지는 -나처럼 목소리를 잃은 동일한 처지의- 양서류 인간의 (상상된)시선’과 주변의 여타 약자들과의 행위로부터 가능했다. (엘라이자 목의 상처와 강가에 버려졌던 아이라는 출신은 양서류 인간과 운명적으로 연결된 듯한 인상을 준다)
‘올바름’이란 특징만이 <셰이프오브워터>의 매력은 아닐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는 에로틱한 시선 대신 사랑의 순수한 자연스러움이, 인용된 영화는 명작이기보다 당대의 흔한 영화들이 삽입되고, 권력자들의 거대담론보다 개인 간의 연대와 사랑에 촛점을 맞춘 이 영화는 작게 간질거리는 느낌을 강하게 남긴다. 작은 물방울들이 이런저런 흐름에 뭉쳤다 흩어지듯 아기자기한 아름다움. 언어나 기호처럼 정형화되지 않는 몽글몽글한 의미, 이것이 사랑의 모양일까.
아. 첨언, 샐리 호킨스의 섬세하고 황홀한 연기가 열일함. 이 연기 덕에 설득력을 얻는 양서류인간의 사랑.
* 추가된 생각:
곰곰히 생각해본다. <셰이프오브워터>에 대한 삐딱한 시선. 개취라고 얼버무렸던 부분.
중심인물들이 히어로다. 그야말로 판타지 중의 판타지. 이들은 핸디캡을 갖곤 있으나 어떠한 내적동요도 없는 강인감을 지님. 스트릭랜드만이 내적으로 항상 불안하고 동요하니까 인간적으로 보이는 역설;; 오직 이 백인 남성만이 고통받는 판타지는 극장나오자마자 무너짐. 여성이, 소수자가 아픔없이, 내적갈등도 결핍도 없이 사랑만으로 단단하게 나아가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만화, 왕자님 구해주는 공주님의 '동화'라는 허구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는걸 확인하고 나온듯한 온도차. 물기 눅눅한 세계를 나와 건조하고 답답한 미세먼지의 현실을 마주하는 탓도 있겠다. 매일 자학과 분노로, 나의 기억과 마주하면서도 미투 운동을 그저 바라만 보는 이 몹쓸 눈은 환상의 세계를 받아들이질 못하고 삐딱하기만 하다. 참 쉽네, 영화 속 세상은. 용기를 배우긴 했는데 공감이 안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