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모든 날들-열 번째 날.
한참을 신나게 놀고 있다. 여느 이십 때들의 모습이 그렇듯.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김없이 그 시간이 되면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지금 어디니"
"늦지 말고 들어와"
통금이라고 정해진 시간은 남아 있지만 벌써부터 가슴은 답답하다. 놀고 있어도 노는 게 아니다. 신경은 온통 시계바늘에 있고 엄마의 잔소리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스물 끝자락이 다된 자식에게 통금이라니...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나는 그 흔한 친구들과의 외박은 꿈도 못 꿨던 시절이 있었다. 외박은 고사하고 정해진 통금 시간을 어길 시에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통금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어긴 날에는 집 앞에서 한참을 망설여야 했다. 들어갈까 말까 ‘이대로 도망갈까’ 너무 무서웠던 나머지 차라리 어디로든 가버릴까 하는 가출도 생각했었다.
그렇게 엄마는 나의 이십 대에 아니 삼십에 들어서서도 온통이 호랑이었다.
어쩌다 친구들과의 빠질 수 없는 여행이라도 있게 되면 허락을 받기 위해 며칠을 계획적으로 잘 보이려 애를 써야 했다. 다른 날보다 일찍 들어와 엄마의 기분을 맞추고 살피며 아양을 떨어 외박의 그 달콤함을 승낙받고자 나름 고금분투를 해야 했으니 남자 친구와의 여행은 ‘하;;;;;그게 뭐야 먹는 거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꽉 막히신 분이냐?? 그건 아니었다. 밖에서 자고 들어오는 것 외에 다른 건 비교적 개방적이셨다. 가령 입고 다니는 옷 이라던지, 무엇을 하고자 할 때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는 모습에서 가끔은 세련미를 보이기도 하셨고 서울여자 특유의 깍쟁이스러움도 있었다. 그러나 외박이나 늦은 귀가만큼은 한치의 너그러움은 없으셨다. 엄마의 눈밖에서의 행동들에 대한 경계는 무서우리만큼 용납은 없었으니 아이러니한 모순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난 유달리 언니 동생보다 엄마를 더 무서워했던 거 같다. 그 흔한 반항도 안 했으니 다 큰 어른이 되어도 엄마의 룰 안에서 답답했지만 착한 딸의 모습으로 비교적 얌전히 살았다. 그렇게 서른여섯 독립을 하기 전까지는.......
'대한 독립 만세' 혼자 독립하고 살게 된 첫날 내뱉은 말이다. 이 날을 위해서 그토록 착한 딸로 숨죽여 살았나 보다. 억눌러 있었던 시간의 제약부터 고삐를 제대로 풀어 나의 자유를 마음껏 즐겼다. 여행과 연애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히 했었다. 그렇게 나의 자유 속에서 엄마는 이빨 빠진 호랑이의 모습이 되었다.
아빠의 부재는 여리고 소녀 갔던 엄마를 강하고 무섭게 만들었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식을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 그 책임감에는 당신의 자식들이 어디 가서 예의 없는 행동으로 분별이 없다는 말을 듣게 하고 쉽지 않으셨을 것이고, 당신의 자식들이 아빠가 안 계시는 빈자리에 구김살이 생기지 않도록 애쓰셨을 것이다.
엄마의 통금 시간은 당신이 버티셔야만 했을 무게이고, 우리들을 안전하게 키우셨을 사랑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오시면서 호랑이보다 무서웠던 나의 엄마는 이제는 이빨이 다 빠지신 순하디 순한 호랑이가 되셔서 나의 곁에 머물고 계신다.
엄마는 우리의 작은 우주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존재이자, 무한한 사랑과 따뜻함을 안겨주는 존재이다. 엄마의 눈은 항상 우리를 위로하고, 손길은 언제나 위안을 준다. 엄마의 소우주는 작지만 위대하다. 빛나는 별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별들은 우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항상 빛을 발하며, 우리가 어려울 때 별빛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셨다. 나에게 머물고 계시는 엄마의 소유주 속에서 나엮시 아직 머물러 있고 싶다.
오늘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