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기는 왼손도 춤추게 한다.
32살의 어느 날, 문득 오른손이 불쌍해졌다.
나의 생존을 위해 밥 떠먹이고, 화장실 뒤처리까지 하는 것도 모자라,
어릴 때는 밀린 숙제 하느라, 연습장 빽빽하게 채우느라 혹사시키고,
어른이 되어서는 밥벌이 때문에 하루 종일 키보드를 치게 하고
마우스를 눌러대게 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다림질을 하고, 칼질을 하는 소소한 일상부터
무거운 짐을 들거나 힘 좀 써야 하는 일도 웬만해선 오른손이 도맡아 했다.
일방적으로 나에게 희생당하고 강요당하는 오른손이 불쌍하고 미안해져서
나는 오른손과 왼손을 슬쩍 불러다가 조용히 얘기했다.
“이제 왼손 너에게도 기회를 주겠어!”
“30년 동안 오른손이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남은 인생은 왼손이 좀 해도 괜찮지 않겠어?”
“왼손에게도 다양한 삶의 기회와 경험을 느끼게 해주는 게 공평하잖아.”
그리하여! 나는 서른 살이 훌쩍 넘은 어느 날 갑자기 왼손을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너무 늦게 배운 탓인지 처음에는 왼손이 하는 일들이 서툴러서 나를 아주 바보로 만들기도 했다.
젓가락질을 못해 밥 한 끼 먹으려면 한참이 걸렸고, 손보다 혀가 먼저 마중나왔다.
양치질을 할 때는 마치 안면마비라도 걸린 것처럼 치약 거품이 질질 흘러내렸다.
화장실 뒤처리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ㅠㅠ
그 정도도 못하냐고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찝찝함을 꾹 참고 또 참았다.
가장 큰 문제는 마우스였다.
당장 밥벌이를 해야 되는데, 마감은 코앞인데 왼손으로 마우스를 잡으니
영~ 속도가 안 붙었다. 그냥 포기해야 하나?
수없이 고민하며 왼손을 달래도 보고 짜증도 내보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막노동에 왼손이 너무 힘들다고,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결국 난 욕심부리지 않고 천천히 함께 가기로 했다.
급할 때는 오른손이 도와주고 조금 여유가 있을 때는 서툴더라도 왼손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1년, 2년 시간이 지나면서 왼손도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고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10년쯤 지나니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도 왼손으로 자연스럽게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일할 때는 아예 왼손으로 마우스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손에게 아직 맡기지 못하는 것이 있다.
가위질과 칼질, 화장실 뒤처리…
일단 위협적인 도구들을 쥐어 주면 뇌세포들이 겁을 잔뜩 집어먹어서 손이 덜덜 떨린다.
화장실 뒤처리는 그 찝찝함을 참지 못해 여전히 우왕좌왕 중이다.
아직 왼손에게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그래도 오른손을 쉬게 하고 왼손에게 기회를 준 건 참 잘한 일이다.
몇 년 전 오른쪽 어깨 수술을 해서 깁스를 했을 때
당당하게 왼손으로 병원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나 자신을 칭찬했던가!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95년도 최고의 인기곡이었던 패닉의 노래 [왼손잡이]의 가사이다.
이 노래 한 곡으로 왼손잡이를 비롯해 비유적으로 표현된 다양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증가하던 시기였다.
그래! 왼손잡이도 괜찮아.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그런데 노래는 신나게 불러도 사람들은 왼손잡이가 될 생각은 잘하지 않았다.
“야~ 왼손으로 어떻게 해? 넌 정말 이상한 짓을 잘해.”
“이렇게 나이 먹고 이제 와서 무슨 왼손이야?”
대부분 나를 철딱서니 없는, 뜬금없이 이상한 짓하는 오춘기의 반항 정도로 생각했다.
밥 먹다 질질 흘리는 나에게 제발 그냥 생긴 대로 평범하게 살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조금은 삐딱하고 생각이 많은 오춘기는 결국 왼손도 춤추게 한다!
세상의 많은 오춘기들이 우울하고 불안한 이유 중에 하나는
원래 못해서가 아니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왼손처럼.
그대들은 어떤가? 오늘부터 왼손에게도 기회를 한번 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