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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Feb 25. 2018

나의 지하철 독서법

  저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 집에서 매일 한시간 걸려 지하철로 출근합니다. 작년 전셋집을 옮겼는데 열차를 한 번 놓치면 10분을 기다려야 하는 서울의 끝자락이죠. 회사가 있는 광화까지는 지하철로만 꼬박 37분이 걸립니다. 왕복으로 하루 74분. 만만찮은 통근시간이지만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마음 속 오래된 숙제를 푸는 시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껏 취미란에 ‘독서’라고 써왔지 사실 제 취미는 ‘책 읽기’가 아니라 ‘책 사기’입니다. 페이스북에서 누가 책을 추천하거 서점 매대에서 본 눈에 드는 책은 일단 교보문고 앱 장바구에 담아놓습니다. 지금도 21권이 담겨 있습니다. 문제는 사놓고 잘 읽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런 말들이 위로가 됩니다. 교수 진중권은 “독서 문화의 요체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사는’ 데에 있다”고 했 소설가 김영하는 “(독서는)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고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맞는 얘기 아닙니까?


  저의 ‘지하철 독서법’은 좋은 자리를 찾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자리가 여럿일 땐 보통 여성분의 옆자선호합니다. 넓기 때문입니다. 저는 몸집이 큰 편입니다. 두툼한 패딩 입은 어깨 건장한 남자 둘 사이에 끼어앉았던 어떤 날에는 어깨 싸움하다 책 읽기를 포기한 적도 있습니다. 자리가 없을 땐 출입문 옆 자리를 꿰차고 섭니다. 문가 기둥에 바짝 붙어서면 사람들에게 덜 휩쓸리면서 책을 볼 수 있습니다.


 책은 세 가지 정도의 주제를 정해놓고 읽습니다. 저의 경우는 IT‧과학, 인문학, 잡서(雜書)인데 주기적으로 분야를 바꿔가며 읽습니다. 이런 지도가 없으면 ‘뭘 읽어야 할지 몰라’ 헤매고, 문득 돌아보면 읽기 편한 책들만 편독(偏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보 펜으로 죽죽 밑줄 긋고 메모를 적는 식의 적극적인 독서는 하기 어렵습니다. 책을 더럽히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렇기도 합니다. 대신 스마트폰 사진첩에 ‘book’ 폴더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내 머릿속 생각을 거의 정확하게 표현했거 이건 언젠가 써먹어야겠다 싶은 부분은 스마트폰을 꺼내 찰칵 찍습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는 ‘2017년 독서노트’를 만들어두고 책 제목과 다 읽은 날짜를 기록합니다. 보통 일주일이면 책 한 권을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독서를 지속하는 힘은 간단하고 한편으로는 속물적입니다. 지하철 가득한 스마트폰족(族) 사이에서 홀로 책을 펼치고 있다 보면 ‘나는 다르다’는 왠지 모를 우쭐한 마음이 듭니다. 아침에 40여분 책을 읽고 지하철에서 내리면 어두컴컴한 밤 야자(야간자율학습)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 고3 처럼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도 좋습니다. 스마트폰이 사람의 시간을 뺏는 거의 유일한 매체가 되면서 요새는 ‘책을 몇 권 읽느냐’가 아니라 ‘독서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묻게 되는 시대이지 않습니까. 이런 때 ‘독서인’의 편에 섰다는 지적 허영심도 좋습니다. 기자란 직업이 무언가를 계속 쏟아내는 일이다보니 늘 ‘채울 것’을 찾게 되는 본능도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싸게 읽는 나름의 방법도 공유해볼까 합니다. 우선 대형 서점에서 책을 1000원씩 깎아주는 카드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산 책은 얼른 읽고 교보문고 중고장터에 올립니다. 신간은 중고가 거의 없어 팔릴 확률이 높습니다. 중고책은 구매자가 2500원의 택배비를 부담하는데 이를 감안해 새 상품보다 4000원 정도 싼 가격에 올리면 곧잘 팔립니다. 살 때 1000원을 싸게 샀으니 3000원 정도에 신간 하나를 읽은 셈이죠. 이런 식이면 책 10권을 사보는데 3만원이면 충분합니다.


   중앙일보 대기자였던 김영희 선생은 2011년 신문의 날(4월7일)에 ‘기자는 읽는 대로의 존재다’란 기고를 했습니다. 인상깊었던 구절을 인용합니다. “나는 기회가 닿으면 후배 기자들에게 두 가지 충고를 한다. 술 잘 사는 선배, 2차, 3차까지 붙들고 폭탄주 돌리는 선배를 경계하라는 것이 그 하나요, 늦기 전에 5개년, 10개년 독서계획 같은 것을 만들어 신들린 사람처럼 책을 읽되 맡은 분야에 관계없이 문사철의 바다에 한 이삼 년 푹 빠져보라는 것이 그 둘이다. 기자가 왕성한 독서를 한다고 반드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동시에 우리는 독서가 싫은 사람은 기자로, 아니 적어도 라이터(Writer)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어디 기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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