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경[死境]을 헤매다

드라마 [조명가게] 후기. 강풀의 미스터리 심리 썰렁물 시리즈

by 이상

작가 강풀

웹툰 작가 강풀은 떡밥을 잘 뿌리고, 회수를 잘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떡밥 회수를 잘하는 것 같다. 독자에게 스토리 조각을 나눠주면, 독자는 고기가 떡밥을 물듯이 그 조각을 신나게 맞춰 나간다. 독자가 스토리 조각을 모두 맞추어 하나의 그림을 완성했을 때, 독자는 감동을 받는다. 그 스토리 조각 하나하나는 모두 의미가 있었다. 작가는 떡밥 회수를 잘한 것이다.


강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어게인'이었다. 친구가 꼭 봐야 한다는 강력한 추천으로 봤던 것인데, 그 이후, 몇몇 웹툰을 추가로 보았으나, 모든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관련 영상 작품을 본 것은 '통증', '이웃사람', '26년', '타이밍', '무빙' 그리고 최근에 본 '조명가게'.


'조명가게'는 먼저 중국에서 2023년 '조명상점'으로 영화화되었다. 평가는 호불호가 심하다고 한다.

2023년 중국 개봉 영화 [조명상점]


2024년 OTT 디즈니+에 나온 '조명가게' 드라마.

2025-01-19 16 52 25.png


'조명가게'는 의식이 없는 상태의 살아있는 사람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들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이야기는 시작된 것 같다. 작품은 우리나라 전통문화 '혼(정신)'과 '백(육체)'에 기초를 두고 설정되었다. 이 설정으로 사람이 죽으면, '혼'과 '육'이 나눠지고, 정상적인 죽음은 '혼'이 하늘로 '육'이 땅에 남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혼'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면 '귀신'이 된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의식이 없는 상태의 살아있는 사람의 '혼'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이들을 '사경[死境]을 헤맨다'라고 표현한다. 작가는 드라마를 통해 사경, 즉 '죽음에 임박한 경지'를 상상하여 묘사한 것이 아닐까? 물론 내 추측이다.


내 추측이 맞다면, '헤맨다'라는 것을 어둠을 헤매는 것으로 해석한 것 같다. 어둠을 이기는 것은 '빛'이다. 이들이 빛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무엇이 있다면? 작가는 그것을 사람이 아닌 장소로 특정했고, '조명가게'라는 신박한 장소가 생겨났다. '사경'에서 자신만의 '빛'을 찾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고 그 '빛'은 다시 익숙한 '전구'로 변형되어, '조명가게'가 완성된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육체와 분리되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귀신이 있다면, 저승을 떠도는 '무엇'도 있지 않을까? 이들이 바로 '조명가게'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기억을 잃어, 저승에서 길 잃은 채로 떠돌고 있다. '조명가게'는 저승 한쪽에 죽은 자들이 잘 가지 않는 외진 곳에 있다.



1. 5부작 까지는 답답한 내용 전개. 시청자도 길을 헤매는 중이다.

요즘 워낙 다양한 OTT가 쏟아지다 보니, 그 자리에서 전 편을 다 보는 일이 많다. 그만큼 한 편이 끝날 때쯤이면, 다음 편이 궁금해서 자리를 뜰 수 없다. 그러나, '조명가게'는 계획된 일정이 있다는 듯이, 꼼꼼하게 인물 한 명 한 명의 퍼즐 조각을 시청자에게 건넨다. 극 중 인물도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시청자도 사경을 헤매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시청자가 느끼는 이 감정을 의도한 것일까? 아니면, 마지막에 속 시원한 해소를 전달하기 위한 계획일까? 전자의 감정을 의도한 것이라면,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체험한 것이고, 후자를 의도한 것이라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미리 배를 채우면 안 된다.'는 작가의 애정?이라고 해두자.


2. 여기가 어딘가요?

인물들이 이제 하나둘씩, 조명가게에 다다르고, 자신의 '빛'을 찾는다. 서서히 시청자는 '조명가게'를 중심으로 한 사후 세계의 세계관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퍼즐 조각이 맞춰지면서, 비로소 답답함이 해소되고 있다. 퍼즐을 해결한 시청자는 이제 인물들이 어떻게 퍼즐을 완성할지가 궁금하다. 마치 여럿이서 달리기를 하게 되면, 먼저 도착한 사람이 앉아서 나머지 사람을 구경하듯이, 시청자와 함께 길을 헤맸던 인물들이 어떻게 결승선에 들어올지가 궁금한 것이다.


3. 강풀 작품에서 빠지지 않는 것. '사랑'

마지막은 인물들의 사랑이다. 조명가게 역시 마지막은 무언가 의미를 남기려고 한다. 그 의미에 감동을 느끼는 바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조명가게는 인물 간의 사랑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랑 이야기에 눈물을 쏟았다.



여운

내가 '조명가게'를 시청했던 기간에 무안공항참사가 발생했었다. 그래서 작품은 작품대로 참사는 참사대로 더 많은 마음이 쏠렸던 것 같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 주변 사람들이 애통하는 이유 중 하나는 '멀어짐'으로 인한 '그리움'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멀어짐'이라면, 보내는 이의 소망은, 그가 길을 헤매지 않고 다음 세계로 똑바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부디, 사고로 인해 가족들을 떠나신 분들이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상한 사람들만 있는 게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