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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의 모순된 삶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23년작 오펜하이머 리뷰

by 이상

오펜하이머는 개봉 당시 내가 눈여겨 봤던 작품이었다. 난 한사람의 인생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를 좋아한다. 다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테넷'을 보고 난 뒤,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놀란의 작품이라면 겁을 먹는다. 놀란의 작품은 여러 회차를 봐야 이해된다는 점에서 꺼리게 된다.


최근 윤석렬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영상에 자주 노출되곤 한다. 유투브를 안 봐도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터라, 피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우연치 않게 청문회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나는 이 영화를 대중 영화로 추천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순으로 쉽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아니다. 2개의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선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2개의 시간 축은 정확하게 컬러와 흑백으로 구분된다. 청문회가 컨셉이다 보니, 대화량이 굉장하고 증인과 증언으로 언급된 인물들이 화면에서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면서, 각 인물들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웠다. (장면을 잘 기억하지 못하면, 증인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는 부분에서 영화의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어려운 영화임에도 이 작품의 유익이라면, 오펜하이머의 삶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고민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시사하면서, 우리에게 그 질문을 던지는 점이다.


해석

오펜하이머, 보안 권한, 비공개 청문회
스트로스, 상무부 장관 임명, 공개 청문회

1. 컬러와 흑백 청문회

왜 감독은 이렇게 구성했을까? 추가로 감상한 유튜브 리뷰 속에서,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지만, 수소폭탄을 반대하는 인물로서, 놀란(각본)은 수소폭탄도 영화에서 함께 언급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오펜하이머의 전성기뿐 아니라 전체 삶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의 후반부 인생은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후에 오펜하이머가 다시 회자되었던 스트로스 공개 청문회를 다루게 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나는 단순히, 3시간을 한 인물의 삶으로 채우는 것은 지루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감독이 2개의 시간 축을 넣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화려한 장면이 적은 영화이므로, 아예 대놓고 말로 조지는 청문회를 정공법으로 선택한 듯 하다. 그렇다면 시간순으로 봤을 때, 더 과거인 오펜하이머 청문회를 컬러로 한 까닭은 무엇일까? 유튜브 리뷰에서는 여기에 심도있는 해석을 하기도 하는데, 나는 단순히 이 영화가 두 개의 청문회를 보여주고 있지만, 주인공은 오펜하이머 라는 점을 잊지 말라는 감독의 환기라고 예상한다.


2. 그의 연애사 모순은 영화의 복선?

유부남이 사랑했던 여자(아내말고)가 죽자, 아내 앞에서 정신줄 놓은 모습

오펜하이머는 연애관과 결혼관이 조금 독특하다. 이런 장면들은 공격적인 청문회 대사와 복잡한 물리학 대사에서 조금 벗어나 잠을 깨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이야기는 그냥 주인공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겠거니 생각했다. 유튜브 리뷰에서는 이 연애스토리는 '원자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사용을 억제하는 모순'을 관객에게 설득하기 위한 복선인 것 같다고 말한다.


3. 과학자의 소울메이트는 군인

'독일나치보다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해야 하는 임무'를 받은 장교 레슬리 그로브스(좌)와 오펜하이머(우)

맨하튼 프로젝트의 연구책임자로 오펜하이머를 선택한 레슬리 그로브스. 둘의 대화 속에는 미묘한 신경전이 있는데, 선 넘지 않는 대화가 영화 속 또다른 재미로 느껴진다. 감독은 맨하탄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오펜하이머와 그로브스의 신뢰에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그로보스의 비중을 높게 두고, 대사에도 신경을 쓴 것처럼 보인다. 과학자와 군인이 서로를 잘 이해하는, 과장해서 말하면 소울메이트 였다는 점을 이색적으로 본 감독은 이를 영화에 담고 싶었던 것 같다.


4. 속좁은 사람에서 리더로 변신

맨해튼 프로젝트의 핵실험 명칭은 트리니티(Trinity). 이 장면에서 핵실험을 앞두고 직접 점검에 나선, 그의 리더십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초반부 타국에서 '실험물리학'을 공부하던 오펜하이머는 향수병에 시달려 잠못 이루곤 했다. 한 번은 담당교수의 무시에 정신이 잠깐 나가서 사과에 몰래 독극물을 주입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다른 교수의 조언으로 '이론물리학'과 '양자역학'으로 연구분야를 바꾸고, 미국으로 돌아가 교수가 되고, 레슬리 그로브스의 눈에 띄어 맨하튼 프로젝트의 수장이 된다. 내가 기대했던 분량은 바로 이런 성장스토리 였는데, 복잡한 영화 구성때문에 온전히 성장스토리를 즐길 수 없었던 게 아쉬었지만, 한가지 느낀 것은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때' 숨겨져 있던 잠재력이 폭발적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5.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에 대한 모순된 견해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그를 환호한다.

나는 오펜하이머의 생각(논리)의 변화가 그의 역할(자리) 변화에 기초한다고 추측한다. 오펜하이머는 프로젝트 수장을 맡으면서, 과학자가 아닌 조율가 및 협상가로 활약한다. 때문에 기간 내에 트리니티 실험을 성공하는 것에만 몰두 하는데, 실험이 성공하자 잊고 있었던 이슈들이 그의 머릿 속으로 물밀듯이 밀려온다. 실험 중에는 '나치로부터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면, 더 강한 무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외에는 모두 잊었다. 어쩌면 그 논리는 프로젝트 수장을 맡게 되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프로젝트 완수를 위해, 상대방을 설득할 논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위 사진 속,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 앞에서 한 그의 연설은 쓸모 없는 확신에 가까웠지만, 수장으로 해야할 말을 겨우겨우 내뱉은 책임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조율가 및 협상가 자리에서 만든 논리가, 프로젝트 성공 이후 결정권이 모두 정부에게 넘어가자, 다시 과학자의 자리로 돌아오면서 그의 머릿 속에는 새로운 논리가 자리 잡은듯 하다. '이쪽에서 더 강한 무기를 만들면, 저쪽에서도 더 강한 무기를 만들 것이기 때문에 무분별한 무기 경쟁을 막아야 된다'는 논리를 펴면서, 그는 이전과 완전히 모순된 활동을 한다.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언론에 자신의 논리를 전달한다. 트리니티 핵실험 현장 속 그의 심경을 표현한 장면을 보면, '이정도 충격을 받으면, 심경의 변화가 일어날만 하지'하고 관객은 수긍하겠지만, 그의 심경을 시각적으로 볼 수 없는 영화 속 인물들은 그를 '모순된 인물'로 만들어 버린다.


6. 잘난척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습관

트리니티 실험 이후, 스트로스는 원자력 위원회 자리를 오펜하이머에게 제안한다.
솔직한 성격의 오펜하이머는 스트로스의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면서, 스트로스를 공개적으로 망신 준다.

영화의 한 축인 스트로스의 흑백 이야기는 이 두 가지 사건으로 요약된다. 오펜하이머에게 새로운 직을 마련해준 스트로스지만,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영향력을 키울 목적으로 스트로스의 호의를 받아들인다. 더군다나, 스트로스의 입장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채 망신을 주는데, 이때의 행동이 단초가 되어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에게 적대심을 갖는다.

그럼 이러한 스트로스의 이야기가 과연 중요할까? 아마 스트로스가 당한 일을 통해, 감독은 오펜하이머의 성품을 드러내려 했을 것으로 본다. 잘난척하고 무시하는 장면들은 주인공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겠니 하고 지나칠만 한데, 트루먼 대통령 앞에서 감정적으로 표현하다가, 대통령에게 무시 당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다. '똑똑한 사람은 어느정도 허용되는 부분이 있어'라고 허풍 떨던 그가,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 앞에서는 언제든지 개무시 당할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는 맨하탄 프로젝트의 수장일 때, 여러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던 모습과 상반된 부분이다. 이를 통해,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은 본인에게 필요한 사람과 필요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고 말과 행동도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감독은 단순히 '그가 안좋은 성품도 갖고 있다'라는 것을 전달하기 보다, '그는 매우 계산적인 사람이라 그의 관심 밖인 사람들(스트로스)로 부터, 자신이 홀대한 대가(비공개 청문회)를 치르게 된 점'을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생각

영화 곡성의 대사가 떠올랐다. 뭣이 중한디? 자유주의, 파시즘, 공산주의 뭣이 중한디? 주인공은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파시즘이 아닌 모든 이에게는 적대심을 풀었다.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공산주의가 새싹처럼 자라나도, 파시즘보다 빨리 무기를 만들기 위해, 공산주의자를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그리고 그때의 일이 주인공의 발목을 잡는다. 파시즘이 패전하면서, 경쟁상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은 어떠한가? 미국은 냉전시대 만큼이나 공산주의 진영을 두려워 하고 있을까? 아마, 소련이 무너지고 나서는 한동안 공산주의 진영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휴전중이며, 대치중인 북한은 공산주의 사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공산주의를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우리를 위협하는 국가가 공산주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만약 그 국가가 같은 자유주의라면 공산주의를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라면, 우리는 그 사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사상을 두려워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요즘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는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두려움이 아니라, 비난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안타깝다. 상대방을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네거티브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만약 누군가가 '공산주의' 단어를 사용하면서, 마음 속으로 통쾌함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공산주의자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과학자와 연구책임자(PI), 개발자와 프로젝트매니저(PM)

주인공이 과학자였을 때는 비범해 보였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연구책임자가 되면서, 그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연구책임자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세간의 주목을 받는 모순적인 행동을 하면서 독특한 사람이 되었다. 어떤 일에 책임져야 할때, 그 일을 성공시키는 데 몰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패했을 때의 비난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책임자는 목적없이 개성을 드러내는 일을 함부로 할 수 없다. 결국 나는 이러한 모습이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에 의해 좌우된다고 본다. 즉, 한 사람의 비범함과 평범함은 그가 어떻게 행동해야 겠다는 마음에 영향을 받는다고 예상한다.

내가 두 직무간의 비범함과 평범함을 말하는 이유는 내가 요즘 개발자와 프로젝트매니저 두 직무간에 진로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매니저는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이고 개발자는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직무다. 하지만, 나는 개발자가 비범한 면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개발자와 비교하면 프로젝트매니저는 상대적으로 단순해 보였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개발자는 독특해 보일 수 밖에 없는 자리고 프로젝트매니저는 평범해 보일 수 밖에 없는 자리라는 것을 말이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삶을 그의 말, 행동, 인격 등 그의 모든 것을 총체적 분해하여 보여준다. 과거에 그의 생각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반복된 실수를 하고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첫번째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두번째로 그의 모순된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과 내 주변에서 그와 비슷한 모순을 생각해보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깊은 여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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