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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Apr 01. 2024

내 마음 같지 않던 하루

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16

' 2022년 5월 25일

 걷기 12일 차: 비야프란카 몬데스 데 오카 -> 아헤스 

 오늘은 해발 1162m까지 올라가는 날이다. 산 밑이라 아침부터 쌀쌀하다. 가지고 있는 옷을 껴입고 출발했다. 아침부터 오르막이다. 다행히 조식을 먹고 출발해서 속은 든든하다. 

 비가 내릴 듯 먹구름이 가득하다. 오늘은 갈 길이 멀진 않지만 산을 올랐다 내려가야 해서 걱정이 앞선다. 비가 내리면 길이 미끄러워 힘들어질 텐데.

<엄청난 내리막과 오르막 코스>

 길을 걷다 보니 엄청난 경사의 끝도 보이지 않는 내리막과 내려간 만큼 올라가야 하는 오르막이 눈앞에 보였다. 그러고 보니 4년 전에도 이 길은 힘들었던 것 같다. 

<역시 오르막은 엄마 먼저>

 오늘의 코스는 10km 정도 마을이 없는 구간이다. 그래서 일부러 간식을 꽤 챙기기도 했는데 다행히 오아시스가 문을 열어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마을이 없으면 바가 없으니 쉴 곳이 마땅치 않다. 거기에  계속 흙길만 계속되는 산이다 보니 앉을 곳도 없다. 그런 곳마다 이런 오아이스가 있는데 순례자들에게는 아주 귀중한 쉼터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아저씨는 꽤 호탕하고 유쾌한 분이었다. 여러 배지가 달린 조끼를 입고 계셨는데 태극기도 있었다. 그걸 계기로 아빠와 간단히 얘길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간단한 과일과 작은 빵 등 먹을거리가 있어서 가볍게 요기를 했다. 

 비가 내릴 듯 말 듯 먹구름 아래에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다 만난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알베르게. 예전에는 못 봤던 거 같은데 초입에 알베르게 겸 바가 생겼다. 

 비가 부슬부슬 내릴 듯하여 얼른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따뜻한 커피와 함께 피자를 시켰다. 그런데 커피를 다 마시고도 피자가 안 나오는 게 아닌가?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오픈에 직접 구워서 조금 오래 걸린단다. 아~ 냉동이 아니란 말이구나. 그제야 살짝 피자 맛에 기대가 됐다. 기다림 끝에 마주한 피자는 정말 보기에도 맛있어 보였고 실제로 맛도 훌륭했다. 순례길에서 피자는 처음 먹어보는데 성공적이어서 기뻤다. 무엇보다 피자가 입에 맞을까 했던 아빠도 맛있게 드셔서 다행이었다. 

 잘 쉬고 나오니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다가 말다가 이건 뭐 우비를 꺼내 입기도 그렇고 안 입기도 뭐 했다. 다행히 우리나라 등산복은 고어텍스니까 아빠와 나는 우비는 안 입고 아침부터 춥다고 하던 엄마만 방한기능으로 우비를 입었다. 그리고 찍은 사진을 보더니 우비가 쨍한 주황색이라 아빠는 사진이 더 화사하게 나오는 거 같다며 좋아하셨다. 

 가는 길에 다행히 구름 사이로 언뜻 파란 하늘이 보였다. 이제 슬슬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나올 때가 됐는데라며 그곳에 간 순간.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들판만 보였다. 

 그땐 이곳에 커다란 카우벨을 단 소떼가 있었고 돌로 만든 달팽이 길도 있었는데. 진짜 목가적인 풍경이라 부모님께도 꼭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정말 아쉬웠다. 아무래도 2년 간 순례자가 없다 보니 가꾸는 손길이 없어진 것 같았다. 그나마 부모님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좋아하셨고 아빠가 사진도 많이 찍어서 다행이었다.

 이제 이 언덕에서 내려만 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아헤스가 나온다. 

 아헤스에 도착하니 해가 쨍하다. 먼저 예약한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그런데 아직 동키로 보낸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주인은 동네를 돌고 돌아 늦게 올 수도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시계를 보니 1시 15분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구나 싶었다. 15.5km를 5시간 30분 만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오늘 숙소는 도미토리다. 아헤스에 괜찮은 곳들은 예약이 다 됐고 이곳도 평이 나쁘지 않아서 예약했다. 그렇지만 방이나 다른 컨디션을 봤을 때 아타푸에르카로 갈걸 그랬나 싶었다. 최근에 아타푸에르카에도 꽤 괜찮은 숙소가 생긴 것 같던데...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숙소를 예약하고 다니면 이런 게 좀 아쉽다. 쉬고 싶거나 더 가고 싶거나를 당일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최근에 예약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숙소를 잡기도 쉽지가 않다. 

 짐이 도착을 안 해서 씻을 수도 없고 씻지 못하니 빨래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휴대폰으로 다음 일정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을 때쯤 가방이 도착했다. 빠르게 씻고 빨래하고 마을을 둘러봤다. 

<아헤스의 메리다의 산타 에울랄리아 성당>

 마을이 작아 둘어보는 것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작은 성당에 가려고 하니 어떤 아주머니가 오셔서 문을 열어주시고 성당 설명을 해주셨다. 무슨 설명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래도 친절히 알려주신 아주머니께 감사한 마음으로 헌금함에 헌금을 했다. 

 오늘 묵는 알베르게에서 저녁도 먹을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안 한다고 했다. 급하게 근처 식당을 알아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뭔가 종일 마음대로 되지 않은 아쉬운 하루였다. 2층 침대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야 하는 것도 그렇고. 나야 괜찮지만 부모님이 잘 주무실 수 있을지 걱정된다. 물론 하룻밤이지만. 내일 부르고스에 도착하면 이틀을 머물 예정이니까 푹 쉬면 괜찮겠지. 부르고스 이후 일정을 좀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온타나스로 갔다가 다음 날 조금만 걷고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알베르게로 가야겠다. 지금까진 하루 이틀 정도만 고민하고 예약했는데 어느 정도 일정을 짜봤으니 숙박 예약을 미리 해놔도 괜찮을 같다. 



* 숙소 정보: EL PAJAR DE AGES

 저녁도 된다고 하더니 식사는 안된다. 하룻밤 지내기엔 나쁘지 않으나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만약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아헤스에는 머물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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