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인생에 한 번은 사막도 만나봐야 하니까 - 페루 와카치나 마을
으르신들 여행기획의 필수요소 "자랑거리"
TV 프로그램으로 핫했다면 꼭 가드리는 게 필수
으르신들과 여행을 기획할 때 아주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자랑거리"이다. 물론 여행이라는 건 그 자체로도 즐겁고 행복한 일지만(물론 매우 고되기도 하다), 으르신들의 여행의 묘미는 여행 전후에 주변의 친한 지인들에게 "이것은 자랑이 아닌 척~!!" 하면서 적당히 자랑을 하는데에 있다.(그러나 이 자랑이 너무 지나치면 또 쑥덕쑥덕 구설이나 뒷담화의 주인공에 오를 위험이 있으므로 그 경계를 잘 정해야 한다.) 속물스럽고 주책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살짝 시선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맨날 그날이 그날이고,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 같은 평범한 주제로 수다를 떨다가, 꽤 괜찮은 주제 하나로 자랑도 좀 하고, 부러워도 좀 했다가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 뉘 집 딸 자랑도 되고 뉘 집 아들 자랑도 되는 것이 으르신들의 여행인 것이다. 그러니까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 하나의 새롭고 신나는 주제를 제시해 주는 것이다.
사실 으르신들의 해외여행은 이제는 정말 흔한 일이고(해외 나가보면 여행 나오신 으르신들 많잖아요), 오히려 먹고 살기 팍팍한 젊은이들보다 이제 은퇴하시고 넉넉한 시간과 살림살이에 해외로 여행 가시는 으르신들이 더 많아지시는 것 같다. 그러니 나의 해외 여행담이 그렇게 "듣기 거북할 만큼 유난 떨 자랑"일 리도 없고 옆집 진희 엄마, 윗집 꽃분이, 교회 권 집사님이 어디 좋은데 다녀오시고 썰을 푸실 때마다 격한 리액션으로 싫은 티 하나 내지 않으며 그들의 여행 후일담을 들어주었던 나의 인내심이 쌓은 공을, '이번엔 내 차례다'하는 마음으로 내가 이야기 꾼이 되고 그들의 관심과 호응을 돌려받는, 일종의 현대판 상부상조의 한 장르라고나 할까. 여행기념품을 답례떡 돌리듯 사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이 포인트.
그런데 그 여행 자랑이라는 것이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면 잘 될 리가 없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하는 나도 살짝 좀 있어 보이면서, 듣는 그들도 적당히 부러워해 줄 그런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 효과가 직빵인 것! 바로 "꽤 유명했던 TV ㅇㅇ프로에 나왔던 거기"되시겠다. 이 정도면 무난하게 "내가 지금 꽤 핫한 장소에 간다"를 나타냄과 동시에, 다녀와서는 그분들도 TV에서 보았으니 알 수 있는 영상 효과에 기대어 약간의 뻥을 보태서 또 한 번 리마인드 썰을 풀기에도 적절해 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2014년 "꽃청춘"의 여행기에 제일 나이 있어 보이는 청춘들이 찾았던 페루라는 곳으로 여행을 가기로 정했다면! 어차피 마추픽추를 보러 페루에 갈 계획이 있던 참이라면! 적어도 그 프로에 나와서 연예인들이 한 것 정도는 다 해보자고 생각했다. 맛있게 먹었다는 샌드위치 집에도 가고, 신나게 놀았다는 사막도 좀 가 드리고, 비행기를 타면서 신비로운 나스카 라인도 보고, 가수 윤상이 고산병과 멀미로 고생하던 심야 버스도 좀 타드리고 말이다.
장시간의 비행 끝에 무사히 페루 리마에 도착했고, 새벽 도착이라 정신이 아직 도착을 못한 것 같았지만 공항에서 대형 봉고차 아저씨와 적당히 애교 섞인 흥정도 잘 한 뒤 (Tip. 리마 공항에서 우버를 대형으로 부르면, 제일 큰 차가 스포티지 정도입니다. 캐리어 개수가 많다면 작을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첫날의 일정은 무리하게 잡을 생각이 없었고, 그저 몸을 좀 풀고 리마 신시가지 구경을 적당히 한 뒤 본격적으로 시작할 첫 "하드코어" 이벤트를 잘 준비하는 것. 그러니까 이날의 가장 큰 이벤트는 "꽃청춘이 먹던 샌드위치를 먹는 일"정도였다.
가족 남미 여행의 첫 코스는 "사막"
페루 이까의 와카치나(Huacachina) 마을
(나만 그런지는 모르지만) 여행 준비의 난이도는 한국으로부터의 거리와 비례하여 어려워진다. 예를 들면 [한국 근처의 동남아 < 그래도 몇 번은 다녀왔던 유럽 or 유럽과 느낌이 살짝 다르지만 캐나다/미국 << 나도 한 번도 안 가봤지만 남들도 그렇게 많이 안 가는 것 같은 남미 <<< 아프리카] 이런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게 또 혼자 갈 때는 "아 뭐 어떻게 되겠지"하고 일부는 포기하고 가서 보자 하고 그냥 가는 경우도 있는데, 같이 가는 가족의 수가 늘면 신경 쓸게 참 많다. 이곳이 그분들의 "흥미"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 한 장소에서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 이동거리에 따른 교통수단이 적합한가, 도착해서 지내시는 곳의 숙소의 퀄리티를 보장할 수 있는가, 액티비티가 할만할 것인가.
그런데 내가 지금 한 29시간 날아와야 하는 페루를 여행지로 설정한 다음에, 첫 액티비티로 이동거리가 4시간이나 걸리는 "사막"을 고른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숙소는 인공 오아시스 근처의 젊은 배낭여행가들이 잘 가는 게스트 하우스를 잡고, 모래 위를 내달리는 버기카를 타고, 사막서 샌드보드를 타겠다고 정한 것이다. 물론, 사전에 "할 수 있겠어요?", "괜찮겠어요?", "여기 어때요?"라고 의견을 묻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단 으르신들의 특징은 "1) 묻고 나면 금세 까먹으시거나, 2) 계획표를 보내드려도 안 보시거나, 3) 봤다 해도 까먹으셔서 늘 새롭거나, 4) 일단 건성으로 응응 하고 대답해 버리므로" 준비과정의 질문과 대답이 사실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공감하시는 분들 꽤 있지 않나요 ㅋㅋㅋ)
그냥 그분들의 의향은 짧게 묻고(안 물어보면 또 그건 귀신같이 기억하신다), 그 시간을 아껴서 숙소가 괜찮을까 걱정돼서 후기를 엄청 찾아보고 댓글을 빌어 질문도 엄청 하고(그래서 저도 댓글로 누가 물으면 최선을 다해 답하려고 합니다), 차량 이동이 4시간이면 한국에선 거의 서울에서 부산 가는 거리인데 버스는 괜찮을까 하여 또 어느 버스회사가 괜찮은지, 어떤 타입 좌석을 사야 하는지 엄청 찾아보고, 버기카의 안정성 및 샌드보드의 난이도까지 검색하는 편이 빠르다.
그렇게 걱정되는데도 "사막"을 이 여행 일정에 욱여넣은 이유는, "어쩌면 엄마 아빠에게는 일생의 단 한 번이 될지도 모르니까"라는 것. 어려서부터 신비한 동화의 이야기에서 사막을 만나고, 과학시간에도 사막의 생성과 특징을 배우고(주관식 답이 "사구"였어요), 영화의 배경으로 TV에서 수도 없이 낙타와 함께 건넜고, 나이가 좀 들으니 인생을 이야기하는 에세이 책들에서 사막을 만나라는 둥 건너라는 둥 은유와 직유로 자주 접했지만, 그 강렬한 느낌은 사실 진짜 보지 못하면 알 수가 없는 크기의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나는 이미 두바이의 사막, 호주의 사막을 온몸으로 구르고 온 전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난생처음으로 만났던 두바이 사막의 그 광활하고 뜨겁고 부드러운 붉은 느낌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벅찬 감동을 엄마 아빠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으르신들은 "얼이 빠진다"는 표정으로 감격스럽게 사막을 만나셨다.
꽃청춘들이 묵었다던 그 숙소를 미리 예약하고, 도착한 그날 바로 투어를 나섰다. 해가 질 즈음에 맞춰 투어를 나가야 훨씬 아름다운 사막을 만난다길래 그 모든 것을 고려하여 일찌감치 예약을 해둔 일정이었다. 리마에서 이까로 오는 내내 하늘이 흐려서 걱정이 많았는데, 날씨여신 두 분이 등장하신 덕일까? 이까에 도착하자마자 하늘이 쨍하고 갠다. 이 정도 되면 날씨여신 인정을 안 해 드릴 수가 없다.
드디어 사막의 입구에 들어섰을 때! 숙소 뒤로 조금 걸어 올라가자 나오는 사막의 입구만 보았을 뿐인데, 그러니까 아직 인공적인 오아시스도 좀 껴있고, 투어 회사의 버기 차량도 잔뜩 있어서 완전한 사막의 실체를 만나기도 전인데 엄마아빠이모아저씨의 표정이 대단하다. "와.....", "이야.....", "허허허...." 이런 감탄사가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서 으쓱한 것은 나의 몫. 하늘은 새파랬고, 사막은 말 그대로 끝이 없었고, 하늘에선 사막의 기류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패러글라이딩 라이더들이 바람을 타고 있었고, 알록달록한 버기카들이 새로 오신 손님들을 태우려고 대기 중이었다.
"야....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어떻게 내가 사는 지구에 이런 것이 있나 싶다" 매사에 감사하고 진심으로 감탄 잘하는 이모는 뭐 이미 감동으로 벅차올랐고, 겉으로 큰 감동 내색 안 하는 아빠도 "야... 진짜 어마어마하다..."라고 한마디 하신다.
드디어 사막을 내달릴 시간. 으르신들은 투어 회사에서 정해준 젊은 외국인 관광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한차에 앉았다. 처음엔 속도를 살짝씩만 올리던 버기카가 조금씩 낮은 내리막들을 골라 타기 시작한다. 소리를 더 지르면 더 신나게 만들어 주는 영종도의 디스코 팡팡처럼, 버기카도 승객들의 호응이 커지면 속도도 내리막의 경사도 급커브도 더 많이 타기 시작했다. 숙련된 드라이버의 아찔한 곡예운전에 어른들은 소리도 맘껏 질렀다가, 까르르 깔깔 웃기도 하고, 드라이버에게 박수도 날리며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셨다. 이미 두어 번의 경험으로 익숙한 나와 달리, 네 으르신들은 "지금 정말 재미있고 즐거워!"라는 느낌을 온몸으로 표현하셨는데, 나한테는 오히려 이 광경을 지켜보는 것이 더 큰 즐거움과 뿌듯함이었다.
샌드보드가 무섭지 않냐고?! 한번 더 타고 싶어
그렇게 한참 질주를 하던 버기카가 멈춰 선 곳은 샌드보드를 타고 내려갈 슬로프 앞. 그러니까 이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샌드보드의 시간이다. 투어 회사에서 나온 버기카 드라이버들은 숙련된 눈썰미로 적당한 길이와 경사의 모래 슬로프들을 골라냈고 초급에서 연습을 하고 중급으로, 중급을 무사히 통과하면 고급으로 우리를 데려간다고 설명해 주었다. 보드판에 초를 칠하고, 자세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어떻게 정지하게 되는지 간단한 설명을 듣고 드디어 출발 자세를 잡는다. 가이드가 "Go"를 외치며 쭉 밀어주는데, 모래 위 썰매 타는 기분은 부드러운데 매끄럽고, 속도감도 있다.
"꺄~~~~~"하고 소리를 지르며 내려가시는 으르신들을 같은 버기에 탔던 외국 젊은이들이 박수도 치고 환호도 해주면서 응원해주었고,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성공!! 덩치가 작고 겁이 많은 이모를 조금 걱정했는데, 의외로 깡다구 있게 끝까지 잘 타는 이모에게도 박수를! 심지어 아빠는 그 사이에 그 힘든 모래 언덕을 후다닥 다시 올라오셔서 한 번을 더 타시겠단다.
"아빠 저기 가서 어차피 더 긴 데서 또 탈 거야~!"
"그래? 따봉이네? 그래도 여기서도 한번 더 타고 싶어!"
"아이고, 니아빠다 니아빠, 저렇게 좋아할 거면서 맨날 안온대지?"
그러했다. "환갑"이 하기엔 너무 무섭고 어려운 놀이가 아니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환갑 이상의 으르신 두 분이 제일 잘 노셨고, 곧오십 이실 젊은으르신 두분도 신나게 뛰어노셨다. 마지막 코스는 나도 아찔할 정도의 길이와 경사였는데 모래를 뒤집어쓰고 굴러도 까르르르, 얼굴에 모래를 서로 털어주면서도 까르르, 누가 더 빨랐나, 누가 더 멀리 갔나, 이번엔 내가 더 잘 탔다, 다음엔 니가 잘해라, 서로서로 웃고 소리 지르고 즐겁다. 딱 해맑고 즐거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의 그 모습이다. 사막에서 4~50년쯤 과거의 동심으로 순간이동 성공!
그래서 이후에 내 블로그에 "엄마랑 같이 가는데 괜찮을까요?"라고 종종 질문이 들어오면 "나이가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체력이나 성향이 맞으시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라고 답을 드리곤 한다. 20살에도 무서워서 못 타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60이 넘어도 우리 엄마 아빠처럼 신나서 몸을 날리는 분들도 있을 테니까. 마지막 코스는 오히려 내가 보기에도 아찔할 길이와 경사였는데, 걱정할 시간도 없이 몸을 날리시는 으르신들 덕에 사진 찍으랴 따라 내려가랴 무서울 겨를이 없었다. "이거 못 타겠으면 그냥 버기카 타고 내려와도 괜찮아"라고 말한 내가 오히려 머쓱.
해지는 사막에서, 인생 샷은 덤으로 받은 선물
슬슬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자 해가 지기 시작했고, 불타듯 새빨간 노을이 지는 날은 아니었지만 은은한 분홍으로 사방을 물들여 충분히 아름답고 분위기 있었다. 웨딩촬영 후 이렇게 각 잡고 설정 사진을 찍어본 적이 있을까 싶은 피사체 꼬꼬마 이모랑 아저씨 다정샷도 찍어주고(아저씨가 의외로 모델 꿈나무), 이모랑 엄마랑 각 잡고 느낌 있게 서보라 고도 한컷 찍어주고. 그저 카메라 하나만 있어도 우리끼리 충분히 즐거운 이곳이 사막이었다. 아쉬운 대로 돌아오는 버기카에서 열렬히 환호해 주시는 으르신들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드라이버 아저씨는 남들보다 좀 긴 시간을 태워주셨다.
버기카에서 내려 어두움이 순식간에 찾아오기 전에 정말로 숙소로 돌아갈 시간. 다들 얼굴에 아쉬움에 가득이다. 사막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마치 놀다가 엄마가 불러서 들어가는 동네 꼬마 아이들처럼 계속 아쉬워서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느리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저~쪽에 올라가 보면 안 되겠지?" 하는 아빠를 "사막은 위험해서 혼자 그렇게 나가면 안돼요"라고 뜯어말리고. 이렇게 다이내믹한 첫 일정을 마무리한다.
즐거움 앞에 나이가 문제 되지 않았다. 사실 그 정도의 체력을 가지고 계셔서 감사했고, 몸 사리지 않고 뛰어들어 놀아주신 것도 감사했다. 인생에 처음 만나는 사막 앞에 끝없이 감동하고 정말 좋다고 고맙다고 말씀해 주신 것도 감사했다. 특히 늘 진심을 듬뿍 담은 이모의 감동의 표현들은 여행 설계자를 뿌듯하게 만드는 특별한 힘이 있다. 본격 여행 첫날부터 고객만족 백 프로를 실현시키고 났더니 으쓱으쓱 기분이 좋다. 엄마 아빠랑, 이런 여행 한 번쯤은 해보시길 추천한다. 정말, 젊은이들만 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