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박사 유학 할까 말까

N년째 유학을 고민하고 있는 당신에게

by 뚜비뚜밥

N년째, 직장 권태기가 올 때면 한 번쯤 드는 생각.

'박사 유학, 할까 말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고는 싶은데, 뭘 연구해야 할지 몰랐다.

세상을 향해 던지고 싶은 '나만의 질문'이 없다는 핑계 뒤에, 나는 비겁하게 숨어 있었다.



작년 여름, 아빠가 물었다.

"박사는 언제 하냐? 1-2년 안에 가면 서포트해줄게."

나는 담담하게,

나와는 1도 관련 없다는 듯 무심히 말했다.

"아니, 박사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나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없어서 안 돼.

그리고 가도 풀펀딩으로 갈 거라 서포트 필요 없어.

애초에 안 갈 거지만."


마음 한 켠을 늘 차지하고 있던 ‘박사’를

아빠가 오랜만에 깨워내자마자

안 보이는 구석으로 꾹꾹 밀어 넣어버리는 나를 보고,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두 달 뒤 엄마와 단둘이 떠난 베트남 여행.

평소에 엄마와 같은 집에 살지 않는 나.

엄마랑 하루종일 붙어 있다 보니

엄마와 엄마 친구들의 일상을 자연스레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게 되었다.

외할머니를 돌보는 사회복지사의 전화,

고독사한 노인들을 몇 번이나 발견한, 노인 생활지원사로 근무하시는 엄마 친구들의 이야기.

100세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야 하는 70대 큰아버지 얘기.

그밖에 수많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현실,

그 고됨에 대한 이야기들.


여행에서 돌아온 어느 월요일 새벽 3시,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번뜩,

하고 머릿속을 스치는 단어.

'고령화.'


나는 홀린 듯

노트북에 미친 듯이 글을 썼다.

그러다 타자 소리가,

내 생각의 속도보다 한 박자씩 느리게 들리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놓쳐버린 생각의 조각들이

먼지처럼 흩어지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나는 녹음기를 켰다.

댐이 터진 듯 흘러넘치는 조각들을,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그 뜨거운 생각들을,

간신히 말로 붙들어 소리의 형태로 기록해 두었다.


N년을 찾아 헤매도 없던 '나의 질문'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러고 아무 일 없이 한 달 반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맑고 쾌청한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내 근황에 묻어 나온 고령화 이야기를 듣던 후배가

나지막이 말했다.

"선배, 그 정도면 그냥 올해 지원하는 건 어때요?

내년까지 왜 기다려요?

미국은 떨어지면 왜 떨어졌는지 피드백 준대요."


밑져야 본전이네.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폭발했다.

나는 그날 바로 일주일 뒤 토플 시험을 접수했다.

그리고 정확히 2주 뒤,

나는 스탠포드에 첫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나는 8개의 대학에 원서를 말 그대로 “쏟아부었다”.


다 붙으면 어디 갈지를 고민하면서

유학 준비 오픈 카톡방과 Grad cafe를 보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갔다.


그러다,

2월 말부터 하나씩 리젝이 오기 시작했다.

쓰라렸다.

매번 아릿한 고통.


다 떨어졌다.

간신히 받은 대기 하나 빼고(이마저도 결국 불합격).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민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납득이 안 갔다.

“왜 날 안 뽑지?”

산산이 부서진 마음을 붙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 그럼 직접 가서 물어보자.

‘대체 제가 왜 떨어졌어요?'


이 글은, 박사 유학이라는 길 위에서 넘어지고 깨지며 레벨업 하고 있는 한 직장인의 현재진행형 성장일기다. 작년의 아쉬웠던 첫 도전부터,

진짜 답을 찾아 무작정 날아갔던 미국에서 콜드 이메일로 만난 소중한 만남들,

그리고 돌아와서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거듭난, 시시각각 진화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다.


혹시 당신도,

N년째 같은 질문의 궤도를 맴돌고 있다면.

나의 이 유쾌하고도 찬란한 여정을 함께 하며,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할 다음 스텝을 상상해 볼 수 있기를,

나아가 그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