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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Oct 01. 2024

엄마가 사라지다 / 05 씻는 건 싫어

엄마의 방문을 열면 노인에게 나는 특유의 냄새가 납니다. 젊을 때는 신진대사가 잘되어 땀과 피지 등으로 금방 날아가지만, 나이가 들수록 활동 능력이 떨어지면서 노폐물 배출이 어려워집니다. 피부에 노폐물이 오래 남아 체취가 진해지고 공기를 만나 산화되면서 냄새가 점점 더 진해지지요. 엄마는 아흔한 살, 할머니가 맞습니다. 고로 노인의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엄마 좀 씻어. 머리도 좀 감고, 목욕하자.”

하루 세 시간씩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방문합니다. 처음 보호센터에서 정해진 일정은 일주일에 한 번 목욕하기였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기간이 계속 늘어났습니다. 2주에서 3주, 그리고 한 달. 엄마의 방에선 심한 냄새가 나고 엄마의 움직임에 강한 체취가 퍼졌습니다. 요양보호사에게 목욕 이야기를 했더니 ‘할머니가 싫어해서 못 씻는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엄마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움직이지도 않고 땀도 안 나는데 뭐 한다고 물 아깝게 자주 목욕하냐!”

혼자 씻는 일이 힘에 부쳐 요양보호사가 도와준다고 해도 맨몸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나는 괜찮을까 싶어서 씻자고 하면, 더럽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은데 왜 씻냐며 거부합니다.

“엄마가 못 느끼는 거지. 냄새 많이 나. 세균이 눈에 보이나? 평소에 깨끗이 하고 있어야 엄마도 아프지 않지!”      

노인은 면역력이 약해서 감염성 질환에 취약합니다. 세균성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감기나 독감에 걸리게 된다면 큰일입니다. 약해져 있는 몸에 무리가 가면 몸 상태가 크게 떨어져 폐렴으로 진행될 수 있고요. 노인에게 호흡기 질환은 치명적입니다. 건강한 성인과는 달라서 치료가 쉽지 않고 기존에 앓고 있는 병이 나빠져 합병증까지 올 수도 있습니다. 노인의 건강은 아프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평소에 충분한 영양과 수분을 섭취하고 규칙적인 운동과 청결한 생활을 해서 면역력을 높이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옛 어른들 말씀에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말이지요. 주변에 엄마보다 나이가 훨씬 적은 어르신도 갑자기 돌아가신 분들이 많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는 칠순이 되기 전 인사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친한 언니의 어머니는 갑자기 암이 발견되어 손쓸 수도 없이 두 달 만에 가셨고. 아버지 또한 뚜렷한 병명도 없이 세상을 등지셨습니다. 저녁 식사 후 드라마까지 다 보고 주무시는 듯 돌아가셨다는 외숙모의 친정어머니는 엄마와 나이가 동갑이었습니다. 외숙모는 친정엄마가 생각이 날 때면, 엄마에게 자주 전화하고 안부를 묻지요.

나 역시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덜컥 겁부터 납니다. 어디가 아프냐 물으면 어디가 아픈지 모른다고 합니다. 답답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노인의 몸 상태는 일반인과는 다르게 좀 더 잘 보살펴야 합니다.      

나는 세 살부터 서른 살까지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화장실은 그야말로 옛날 화변기가 있었고 볼일 보는 용도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샤워실은커녕 보일러도 없어 따뜻한 물을 쓰려면 양동이에 물을 데워서 써야 했지요. 부엌은 주방 겸 거실 겸 샤워실로 사용했습니다. 씻는 일이 번거롭고 불편하다 보니 조금은 게으른 생활을 했었지요. 그때는 엄마가 잘 씻지 않는 나를 두고 잔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고개를 숙여 구들장 밑에 부지깽이를 넣어 연탄 통을 밀었다 끌었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중학교 때, 아침에 일어나는데 너무 어지러워 일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깊이 잠든 엄마를 겨우 불러 깨웠고, 엄마는 연탄가스를 마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동치미 국물을 한 사발 들이켜고 정신을 차린 기억이 있습니다. 엄마는 예전에 이미 연탄가스중독으로 죽다 살아난 경험이 있었고, 나는 처음 겪는 일이라 아주 많이 놀랐었지요.

그때 비하면 지금은 천국입니다. 오래된 집에 살기는 하지만, 신식 화장실에는 수세식 좌변기와 욕조가 붙어있습니다. 언제 틀어도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옵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몸을 푹 담그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에게 예전 집 이야기를 꺼냅니다. 우리가 이렇게 수세식 화장실을 쓴 생활이 불과 이십 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요. 세상이 생활하기 좋게 변하기도 했고, 다행히 예전보다 살림이 나아져서 이렇게라도 살고 있어 감사하다고요. 어릴 때는 엄마가 나에게 씻지 않는다고 잔소리했는데 지금은 왜 반대가 되었냐고 묻습니다. 엄마 건강을 위해서라도 자주 씻는 게 좋겠다고 슬쩍 말해봅니다. 엄마는 예전 기억 속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옛날에는 가난해서 너무 힘들었지.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관데. 이렇게 좋은 시대 오래 살아야 하는데….”

아이를 달래듯 엄마를 달래며 설득합니다.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 예전 이야기에 순순히 씻는다고 하는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나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즐거운 건지, 예전 일들을 추억하는 것이 좋은 건지요. 엄마는 아마도 지금보다 예전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듯합니다.     

씻지 않아도 건강할 수 있다면 엄마 하고픈 대로 두고 싶습니다. 엄마의 말대로 너무 자주 씻으면 몸에 수분과 영양이 날아가 건조하고, 머리도 자주 감으면 머리카락이 빠져 못쓴다는 말을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라는 전염병과 독감이 유행 중입니다. 

당신의 건강보다 자식을 걱정하는 엄마를 위해 바꿔 말해 봅니다.

“엄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내가 더 잘살지. 그러니까 아프기 전에 미리미리 관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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