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장난감이 있는데 제발 한 번만 봐 주세요.”
세일즈맨은 끈질겼다. 현관문 틈으로 구두를 밀어 넣은 채 벌써 20분 가까이 버티고 있었다.
“정말입니다. 사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저에게 딱 5분만 시간을 내 주십시오.”
“어쩔 수 없군요. 딱 5분만입니다.”
결국 나는 두 손을 들고 세일즈맨을 안으로 들이고 말았다. 모처럼 아내도 없이 즐기던 일요일 오후가 자그마한 균열을 내며 망가지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이건 겉으로 보면 그냥 천으로 보입니다.”
세일즈맨이 내민 상자를 열어 보니 흰색 천이 고무막처럼 씌워져 있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 보니 움푹 들어갔다가 손가락을 놓으니 탄력 있게 원위치로 돌아왔다.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런데 이 천 조각을 어떻게 쓴다는 거죠?”
“아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천을 손바닥 전체로 좀 더 깊게 눌러 보시겠습니까?”
세일즈맨이 시키는 대로 손바닥으로 누르자 밑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움푹 꺼진 눈두덩이며 콧날 같은 것이 만져졌다. 나는 깜짝 놀라서 손을 떼었다.
“이…… 이게 뭐요? 설마 천 밑에 사람의 얼굴같이 있는 건 아니겠지?”
세일즈맨은 한바탕 껄껄거리고 웃었다.
“안심하십시오. 보시다시피 천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천이 씌워진 액자를 들어 보니 밑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드러났다.
“하지만 아까는 분명히 사람 얼굴 같은 것이 느껴졌었는데…….”
“그러니까 이게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는 겁니다. 조금만 더 보여드릴까요? 이 제품은 천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높이를 낮추시면…….”
상자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천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서서히 천 한가운데가 산처럼 우뚝 솟아오르더니 사람의 코 모양으로 변했다. 곧이어 입술, 눈두덩 등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얇은 스타킹 천에 얼굴을 들이민 것 같은 형상이었다.
“흐음 확실히 이건 좀 신기하군. 일종의 형상 기억 섬유 같은 건가? 그런데 이걸 어떻게 활용하죠?”
“이걸 보세요.”
세일즈맨이 엄지와 검지로 코 부분을 잡아 비틀자 얼굴이 찡그려지면서 ‘그만 둬!’ 하고 고함을 치듯이 입을 벙긋거렸다. 그러나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이 얼굴은 주위의 자극에 반응을 합니다. 실제 사람 얼굴과 똑같죠.”
이번에는 콧구멍 부위를 간질이자 묘하게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재채기를 했다. 물론 침이 튀거나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재채기를 한 후에도 코를 킁킁거리는 표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특별한 용도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가지고 놀든 고객님 마음대로입니다. 살다보면 직장에서 상사에게 욕을 먹고 화가 날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홧김에 상사의 뺨을 때리면 직장을 잃게 되겠지요. 그럴 땐 이 얼굴을 직장 상사라고 생각하고 마음껏 따귀를 때려 보세요. 아주 건전한 스트레스 해소 방식입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세일즈맨은 소리를 낮추고 얼굴을 가까이 접근시켰다.
“절대로 천을 찢거나 손상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굉장히 무서운 일이 일어납니다.”
세일즈맨의 꼬임에 넘어가 얼굴을 구입한 나는 당분간은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 할지 몰랐다. 그저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찔러보거나 턱 밑을 간질이면서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처음에는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지며 반응하는 게 재미있었다. 하지만 몇 번 반복하다보니 곧 싫증이 났다. 나는 괜한 곳에 돈을 썼다고 후회했다. 반품기간이 지나기 전에 환불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상자를 책장 위에 올려두었다. 사건은 주말 저녁에 터졌다.
“다음 주에 우리 부모님 생신이셔. 모처럼 해외여행이나 보내드리자.”
아내의 말에 나는 기가 턱 막혔다.
“지난번 우리 부모님 생신 때는 돈 없다고 외식으로 때운 거 기억 안 나? 그것도 뷔페도 아니고 중국집 갔었잖아.”
“그땐 애들 학원비 때문에 힘들었잖아. 하나뿐인 우리 부모님 생신이야. 내가 가난한 집에 와서 얼마나 고생하는데 그 정도도 못 해줘? 남자가 돈도 쥐꼬리만큼 벌어오면서 정말 쪼잔하게 이럴 거야?”
“지금 그 말이 왜 나와? 누군 뭐 부모님이 둘이니? 우리 부모님은 푸대접하면서 친정만 극진히 대접하는 게 불공평하다는 거야. 왜 내가 뼈 빠지게 벌어 온 돈으로 장인장모님만 호강시켜 드려야 하는데? 지난번에 장인어른 암수술 병원비도 내가 대출받아서 내드린 거 기억 안 나? 처남들은 뭐하고? 순 날건달들같이 아직도 자리 못 잡고 쯧.”
“야! 고작 그까짓 돈 몇 푼에 치사하게 집안까지 들먹거릴 거야? 너야말로 결혼할 때 남들처럼 아파트도 한 채 못 해오고 전세로 시작한 주제에.”
“뭐? 당신 지금 말 다 했어?”
이렇게 시작한 부부싸움은 세간을 다 때려 부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아내는 짐을 챙겨서 친정으로 가버렸고 나는 엉망이 되어버린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막상 아내가 가고 나니 화를 풀어야 하는데 마땅한 대상이 없었다. 그때 마침 책장 위에 올려놓은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하필 이런 여자가 내 아내라니…….”
나는 포크를 들고 얼굴의 눈알 부근을 내리찍었다.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뭐라고 입을 벙긋거렸다. 포크 날의 개수대로 흰 천에서 빨간 점이 번졌다. 나는 이미 아내에 대한 분노로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포크로 내리찍을 때마다 일그러지는 얼굴을 아내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닥치는 대로 포크질을 했다. 너무 힘을 줘서 포크 날이 구부러지자 이번에는 부엌에서 칼을 가져와서 난도질을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피로 빨갛게 물들은 천은 다 찢어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그때 비로소 세일즈맨의 말이 생각났다.
- 절대로 천을 찢거나 손상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굉장히 무서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천이 찢어지면 그 속에서 괴물이라도 튀어나오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의 아래쪽은 텅 빈 공간 그대로였다. 혹시나 해서 아내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앙칼진 목소리로 욕을 퍼붓는 걸 보니 무사한 게 틀림없었다. 나는 세일즈맨이 신비감을 조성해서 물건을 팔아먹으려고 실없는 소리를 한 것이라고 웃어넘겼다. 어쨌든 모처럼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어서인지 기분이 한결 개운했다. 상자는 반품시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새벽, 나는 뭔가 섬뜩한 느낌에 잠을 깼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분명히 누군가가 내 얼굴을 잠시 어루만지다가 곧 사라졌다.
다음 순간 보이지 않는 손은 내 코를 세게 잡아 비틀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