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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피 Jul 16. 2023

10. 기억의 재구성(하)

그건 이미 지난 일이야.

저녁에 잠을 청하며 내일 아침 눈뜨지 않기를 바란 적이 많았다. 그러나 죽고 싶었다면 그것 또한 억울한 마음이었다. 이 양가감정이 어디서 왔는가 생각해 보니 이 의미 없는 생에도 여전히 '내 삶이 괜찮았지, 헛되지 않았어'라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 듯싶다. 이 삶의 미련을 다 내려놓을 각오가 되는 그 순간이 죽음이 내게 오는 그 순간일 테다. 대부분 인간은 생의 소멸까지 작은 의지의 불꽃을 끝까지 태우는 존재이니 나 역시 내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기억 덧입히기


즐거운 순간을 기록하면서 과거의 미화를 강하게 하려는 것은 그런 삶의 전략의 일환이다. 행복했던 순간을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원하면 언제든지 다시 그러한 행복한 순간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암시와 세뇌이다.

그러나 아직 내 낡은 서랍에는 여전히 행복함에 대한 추억보다 슬픔과 불안을 가중시키는 기억들이 많은 탓에 나는 이 기억들을 관리하고 치유할 필요가 있었다. 작고 큰 파동을 일으키는 나비들은 슬픈 과거에서부터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니.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엄마는 정신과에서 수면제를 처방받곤 하셨는데 사실 그 약을 복용한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나였다. 엄마도 내게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고 화를 내었지만 나는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뭐든지 처음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내가 받았던 카운링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이었다.

교양으로 들었던 심리학개론 수업에 과제 제출을 위해 성격, 심리 검사들을 받으면서 교내 상담실에서 처음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삶은 힘들었지만 우울증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묻는 질문에 답을 하다 차츰 '아 나는 이래서 우울하구나.' 납득해 버렸던 것 같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 데는 이유가 있는데 잊어버린 슬픈 기억들을 무의식에서 수면으로 올리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나는 오히려 우울한 바다의 심해에 빠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렇게 꺼내어진 하나의 기억으로 인해 남산타워를 볼 때마다 상기되는 감정으로 미친 사람처럼 눈물을 펑펑 쏟아댔다. 문제는 남산이 내 등하교에 피할 수 없는 루트였다는 것이다. 전에는 그냥 눈앞에 있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보던 대상을 슬픔을 상기시키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상담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한 학기가 지나고는 더 이상 상담센터를 찾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남산타워를 볼일이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가끔 한 번씩 볼 때마다 버스에서 울던 장면들이 스쳐가곤 했다. 기억보다 감정이 남은 탓에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대체 왜 이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감정이 좀 둔해지자 남산은 잘못한 게 없는데 이렇게까지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 좋은 추억으로 한번 덮어보자 마음먹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의 시간을 겪었으니 그 장면도 바꿀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그건 이미 지난 일이야. 그건 지금의 너에게 영향을 미칠만한 일이 아니었어.'



그렇게 남산 극복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거창한 이름은 단순히 과거의 순간을 덮는 것을 넘는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틀어진 신체와 허약한 체력 때문에 십여분을 걷는 일에도 극심하게 괴롭히는 두통과 허리통증으로 타이레놀을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금도 올바른 자세로 걷는 지구력과 체력을 갖는 것이 내 일상 회복의 최우선 과제인데 그때는 겨우 30분 걷기만으로도 스스로 뿌듯해하던 시절이었다. 남산 타워까지 50분 남짓, 중도로 포기해봤자 걸어 내려오는 방법밖에는 없는 이 챌린지가 두려웠다. 그래도 좋아하는 푸르른 나무들과 이른 아침의 풀내음들이 과정의 고통을 감내하게 만들어주리라 다시 다짐했다.

남산자락 아래 작은 숙소를 잡았다. 고된 해외출장으로 모아둔 리워드를 이렇게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것 뿌듯했다. 5월의 봄날 아침에 연차를 내고 물 한병 들고 남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고비는 시작인 백범광장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앞서 걸으시는 어르신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뒷짐을 지고 걸으시는 어르신이 내 시야에서 멀어 사라졌다 다시 보였다가 몇 번 반복하면서 '나중에 저 어르신 나이가 되어도 여기를 걸을 수 있게 만들어야지' 의지를 불태우며 걸어갔다. 다짐이 무색하게 사실은 그 뒤를 쫓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뒤 한번 돌아보고, 지도 앱에 남은 거리와 시간을 확인하고, 타워의 크기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살펴보느라 바빴다. '아직은 너무 무리한 도전이었나' 하면서 포기 선언을 하고 싶을 즈음 드디어 전망대가 보였다.

남산타워 있는 곳까지는 더 이상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장시간의 걷기 운동을 성공했다는 자기 효능감에 충분히 보람차고 벅찬 감동이 있었다. 그곳에서 즐거운 기분의 방점을 찍고 싶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슬펐던 장면에는 엄마가 함께 있었는데 엄마도 예전의 나처럼 그날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걷는 것이 괴로워 엄마와 산책도 쇼핑도 못하는 딸의 성공을 엄마도 너무 기뻐했다. 이제 그 괴로운 기억이 날 괴롭히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정말로 행복해서 울고 싶었다.

버스로 내려오는 시간은 올라온 것에 비해 너무나 찰나의 시간이어서 헛웃음이 날 정도였지만 올라오면서 제대로 즐기지 못한 나무내음과 시원한 바람을 맞는 기분으로 행복이 가득 차 발 저릿저릿함 따위는 내 기분을 조금도 다운시키지 못했다. 내게 남산은 이제 내 체력이 조금 늘어난 것을 증명한 즐거운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남산프로젝트를 봄마다 하는 연간 자체 체력테스트 프로젝트로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실제로 이번 봄에 두 번째 성공을 하고 왔다. 이번 도전은 남산타워까지였다. 성공이었다.)



그건 이미 지난 일이야. 새로운 추억으로 덧입히자.

   - 인간은 기억의 조각들을 무의식적으로 편집하곤 한다. 과거의 진실의 여부와 상관없이 무의식도 그런 일을 하건대 의식적으로 '더 행복한 의미'를 찾는 일이 가능하다면 최선을 다해서 그렇게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곧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법입니다. 즉 어떤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지, 경험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뽑아낼지를 충분히 의식적이고 자각적으로 선택할 줄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인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선택 능력을 훈련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겁니다.

<모든 것은 빛난다> 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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