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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피 Mar 24. 2023

매튜 본 '로미오와 줄리엣'

언어의 향연이 춤이 되다.


무경계 컬처라이프 첫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극적으로 한순간 불타오르다 비극으로 끝난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플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40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비운의 연인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셰익스피어가 탄생시킨 가장 유명한 연인의 이야기는 영화 외에도 또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오늘은 그중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파격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개하려 한다. 매튜 본이 가장 파격적인 '백조의 호수'를 탄생시켰던 것처럼, 새로운 로미오와 줄리엣을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아닌 넌버벌의 댄스 뮤지컬로 그 강렬한 사랑이야기를 그렸다.


'이게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 변천사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매튜본의 작품을 따라가면 처음에는 혼란스럽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누구인지 알겠는데 '캐플릿, 몬테규 가문은 어디 있지?, 두 사람의 관계는 뭐지?' 하는 의문으로 시작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변천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이야기는 베로나에 있던 두 연인에게서 시작한다. 셰익스피어가 새로운 희곡을 쓰기 전까지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의 이야기가 아닌 사회면의 사건을 다룬 것 같은 이야기였다. 중세시대의 끝자락에서 만들어진 '아서브룩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젊은 날의 치기 어린 사랑을 부적절한 욕망에 가득한 것으로 바라본 기성세대의 입장의 교도적인 이야기였다.


"불행한 남녀에게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전하고자 한다. 부정직한 욕망의 노예가 되어 부모와 친구의 조언을 무시하고 정욕을 채우려 성숙하지 못한 일을 저지르며, 적법한 결혼의 이름을  정직하지 못한 인생을 추구한 끝에 다다른 것은 가장 불행한 죽음이로다." - 아서브룩의 로미오와 줄리엣


반면에 르네상스 시기의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에 빠진 청춘을 비난하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인간 개인에 집중하며, 오히려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고 죽음으로 내보는 비극적인 운명으로 이끄는 것은 어른들이 만든 사회임을 말한다. 개인의 관점으로는 비극이나 사회적으로는 해피엔딩인 아이러니가 이들의 사랑을 불멸의 로맨스로 만들었다. 단 5일간의 짧고 극적인 사랑이 원수 같은 두 귀족 가문의 미움이 얼마나 의미 없고 허무한 것인가를 말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는가.


매튜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근본적으로는 두 연인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셰익스피어의 시선을 따른다. 그러나 매튜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소중한 두 청춘의 죽음을 바치고 나서 베로나에 의미 없는 미움을 끝내고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희망적인 결말을 그리는 대신 이후에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연인들이 계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두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이기 이전에 사랑의 열정을 가득 담고 있는 청춘이다. 매튜본의 작품은 그들의 청춘에 집중했다.


절망과 실연의 이야기, 승자가 없다.

권력형 구조 안에서 압박받는 청춘들의 이야기


개인적으로 현대사회는 점점 더 젊은이들에게 열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기성세대와 젊은 청춘들의 갭은 항상 존재했다. 젊은이들의 열정과 개성은 아서브룩의 시선처럼 기성세대와 사회의 기준으로 바람직하지 않게 보이고 통제하고 싶은, 그러나 그만큼 통제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런 시선을 받는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와 사회는 자유를 속박당한 것 같은 답답한 구속의 틀과 다름이 없다.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약자의 존재는 아니지만 그들의 선택을 존중받고 인정받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또한 매튜본은 이 젊은이들을 통해서 사회구조적으로 열악한 사람들에게 특히나 많이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몇 년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일어났을 때 개인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것 이상으로 근본적으로 사회구조적인 권력형 범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개인으로 해결하기 어려워 희생자를 포함한 모두가 쉬쉬했던 이야기들. 이 작품에서는 그와 같이 권력의 힘으로 가해지는 폭력과 스스로 그 상황을 벗어나거나 해방되기 어려운 상황을 베로나 연구소 속 줄리엣과 티볼트를 통해 보여준다.

말이 연구소지 거의 교도소와 같은 강한 통제 아래 티볼트는 줄리엣에게 집착하는 관리자로 폭력적인 통제와 집착으로 당돌하고 주도적이었던 셰익스피어의 줄리엣과 달리 전형적인 성폭력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나마도 이 작품 안에서 티볼트가 뒤늦게 줄리엣에 매달리는 사랑을 표현하는 한 줌 낭만인 것처럼 표현했지만, 사실은 미투 폭로에 대한 변명으로 가해자들이 사랑 '운운'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랑 없이 이 이상으로 사회가 만들어낸 권력형 가해는 사회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새로운 티볼트와 줄리엣은 계속해서 발생할 수 있다. 무서운 것은 티볼트와 같은 존재들이 베로나연구소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있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피어나는 청춘들의 사랑이 눈부시게 반짝거림보다 애처롭고 안타깝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고, 함께 누워있는 장면이 수미상관으로 진행되는 것은 어쩌면 이런 사회가 지속되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매튜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개인도, 사회도 나아가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을 되풀이할 뿐이다. 단 하나, 티볼트가 사라질 때 로미오뿐만 아니라 연구소 내의 다른 이들이 함께 연대했다는 것이 작은 희망이 될지도.


사회적 소수자, 약자를 표현하는데 탁월한 작품

매튜본이 여성, 동성애를 소비하는 방식


매튜본이 선보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2019년 작으로 매튜본 작품 중 최신 작품이다. 앞선 다른 작품 역시 고적의 파격적인 해석으로 놀라운 작품이지만 매튜본의 그 어떤 작품보다 그의 최고 파격 히트작인 '백조의 호수'를 닮았다. 매튜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여성 '줄리엣'이 주인공인 작품이지만 성별을 활용해서 사회 속에 있는 개인을 표현하는데 탁월하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특히 동성애는 그저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여자의 이야기를 남자 감독이 만드는 것과 진짜 여자가 만드는 것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단지 게이 캐릭터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매튜본은 사회적 소수자, 약자를 표현하고 남, 여 성별과 상관없이 작품을 이끌어 가는 힘을 새롭게 부여한다. 백조의 호수의 압박에 짓눌린 연약한 프린스처럼 이 작품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원작과는 달리 결핍에서부터 출발한다. 셰익스피어의 줄리엣이 가문에 규율에 갇혀있긴 하지만 당돌하고 주도적이었던 것과 비교해서 매튜본의 줄리엣은 그녀의 잘못과 상관없이 피해자가 되고 트라우마를 얻게 되는 캐릭터가 된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프지만 그녀는 베로나의 큰 가문 안에서 보호받는 줄리엣이 더 이상 아니다. 사회에 던져진 하나의 존재는 그저 현재를 살아낼 뿐이다. 나는 매튜본이 그려낸 줄리엣이라는 여성의 이야기가 어떠한 여성 연출이 그려낸 것보다도 정확하게 현실을 반영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하게는 신부님이 여자로 나왔던 것부터 시작해서 몬테큐가 동성인 것도, 그 때문에 티볼트가 그를 혐오했던 것도, 로미오가 죽게 되는 원인이 사회가 만든 그녀의 정서적인 문제였던 것도 좋았다.

나는 이 작품이 어떤 평론가의 말처럼 '새로운 천년을 위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것에 완전하게 공감한다. 매튜 본이 '다음 세대를 위한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하는 것에 공감한다. 새로운 시대, 이 파격적인 비극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우리 시대에 이러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계속 만들어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본격 덕질 타임! Charming point


1. 이 작품도 '로미오와 줄리엣' 발레 버전의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차용했다. 프로코피예프의 큰 편성의 관현악의 웅장함 대신 15명 정도의 앙상블 버전으로 구성해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느낌을 준다. 대표적으로 발레 원작 작품 속 캐퓰릿 가의 무도회 장면(#Scene : Dance of the Knights)에 사용되는 곡으로 가문을 벗어나기 어려운 그들의 상황처럼 엄숙하면서도 음악의 이름처럼 캐퓰릿가 사이에 몰래 숨은 로미오를 표현하는 두 가문 사이의 긴장감이 음악의 분위기에 녹아있다. 그 음악이 이 작품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대표되는 청년들의 아찔한 성적 긴장감으로 표현되는데, 조명과 댄스의 합이 음악과 어우러져 그들이 닿는 신체적 접촉은 오히려 보통의 듀엣보다 더 적지만 그 안에 가둬둔 욕망과 열망이 절제된 상태에서 섹슈얼텐션을 극대로 만든다. 같은 무도회 다른 씬, 음악이 나오자마자 놀라움과 감탄으로 소름이 끼쳤다. 이거 보고 나면 빰빠밤빠빰빠밤빠 빠져나올 수 없음...


2. 최애장면은 역시 발코니 씬이다. 역시 듀엣 댄스. 무용 공연에서 가장 긴 키스 장면이라는데 그런 것보다도 둘이 서로 기대며 안무하는 게 너무 좋았달까. 대사와 노래 같은 말 한마디 없는 작품에서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더라도 함축적 메타포를 통해 미묘한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보면서도 놀란다. 원작을 알면 아는 대로 표현력에 놀랍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이해가 다 되니 무슨 일이니... 사다리에 매달려서 키스하면서 도는 slow turn에 내 심장 pause...


3. 이 작품은 '줄리엣과 로미오' 였어야 한다. 초기 기획안이 백조의 호수처럼 남-남커플이었다 하는데, 결정된 이 이성커플의 주인공은 줄리엣이다. 티볼트의 죽음도, 죄책감도, 로미오와의 사랑도 줄리엣이 중심이다. 발레 공연에서는 로미오가 힘없는 줄리엣을 일으켜 세워서 춤을 추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줄리엣이 다시 일어나 죽은 로미오를 데리고 서로 기대어 춤추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발코니씬의 서로 기대어 행복하게 춤추었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애잔한 사랑의 몸짓....


4.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는 미니멀 그 자체이다. 흔한 무대 전환이나 회전도 없이 오로지 하나의 대형 구조물만이 무대 위에 존재할 뿐이다. 이 무대에서 움직이지 않는 구조물은 테라스의 로맨스적인 상하구조가 동시에 티볼트의 시선을 벗어나기 어려운 이 공간의 억압적인 상황을 만든다. 측면의 계단, 사다리, 후면에 숨겨진 계단만으로 무대 내에서 다양한 동선을 만들었고, 상하로 움직이거나 벽을 오가는 것만으로 공간의 전환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놀랍도록 심플한 세트가 지루할 새 없이 얼마나 다양하게 쓰이는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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