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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피 Oct 25. 2024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짧은 소회

헤르만 헤세의 가르침에서

날이 서늘해지고 추워지던 작년 이 맘 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영화관에서 혼자 봤었다. 철학적인 논제와 같은 제목을 생각하며 '나는 이 영화 속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은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점점 더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끝나지 않는 세계관의 변화와 종내 몰아치는 애니메션의 생동감을 따라가다 결국엔 생각을 놓았다. 그 다음부터는 영상미에 집중해서 봤던 것 같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자마자부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집에 오는 길에 내내 눈물을 그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도저히 어떤 감정인지 설명할 수 없는 울음이었다. 대체 어떤 슬픔이었는지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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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하먼 오늘과 현재를 잃게 되고 그것과 관련된 현실을 잃어버리게 된다. 넉넉한 시간과 관심은 고스란히 오늘에 허락하라."

-헤르만 헤세, <삶을 견디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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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재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많은 가르침에도 여전히 그 방법찾고 있어리석은 자가 바로 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등장했던, 파괴된 사회에서 삶을 살아내는 많은 주인공들같이 전쟁 같은 일을 겪은 것은 아니건만 자기 삶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에 몸부림치도록 괴로워했다.

이제 알았다. 그날의 울음은 추억과 상처가 뒤섞인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세상을 나아가기 위해 내 안에 있는 가치관을 깨부숴버리지도 못하는, 용기 없는 나 자신에 대한 절망감이었다는 것을.


살면서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렸던 것들에 대해 옳다고 믿었던 신념, 그동안 겪은 고통, 그에 비례한 스스로에 대한 연민들, 그 모든 것들을 지워버려. 물론 쉽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명확한 것은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 때문에 고통받길 원하지 않고, 내일의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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