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이 우리 안의 좋은 점을 알아봐 주고 우리를 축복해 주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
<마음이 아플 땐 불교심리학>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들이 떠오른다. 나는 당시 형편이 어려워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들을 수 있는 수업은 오로지 공교육뿐이었으므로 수업시간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고 아마 그래서 선생님들에게는 내가 눈에 띄는 학생이었을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3년간 두 분의 수학선생님에게서 수업을 들었는데 두 분 다 참 감사한 분들이다. 덕분에 졸업때까지도 수학수업을 질리지도 않았다.
한분은 어설픈 매력이 있는 푸근한 남자 선생님이었다. 이과반 담임이시기도 했고 아이들이 썩 친근하게 생각했던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좋으면 무엇하나. 고등학교 수학 수업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과 멍한 눈으로 칠판을 응시하는 학생들이 가득했다. 선생님 말소리와 칠판에 분필이 맞닿는 소리들만 울리는 활기없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 수업시간이 과외시간 같았다. 선생님은 문제풀이를 할 때마다 나를 보면서 '맞지?' 하는 눈빛으로 문제를 풀었다. 틀리면 수정해 줄 만큼 집중하는 학생이 나뿐이었는지 칠판에 써 내려가다가 내가 어디에 있던지 등을 돌리면서까지 확인하곤 하셨다. 신뢰 가득한 선생님의 눈빛을 받는 게 만족스러워 즐겁게 수업에 임했고, 정말로 선생님 계산 실수를 더러 바로잡기도 했다. 나는 우리가 문제를 같이 푸는 듀오가 된 게 참 마음에 들었다.
다른 한분은 말하는 톤이나 표정이 B사감 같은 아우라가 있으신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남자 선생님과 달리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때문에 학생들은 선생님의 깐깐함에 혀를 내둘렀었다. 그러나 그분은 내겐 눈물 나게 감사한 스승님이셨다.
고3 때 나는 어려운 형편에 외부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면제받았었는데 그 사실을 선생님이 아셨는지 언젠가부터 내게 본인에게 제공되는 자습서를 주곤 하셨다.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면 내게 와서 '이따가 교무실 와서 골라가렴.' 조용히 얘기해 주셨고 나는 나중에 조용히 교무실에 가서 자습서를 받아왔다. 모두 선생님용으로 배급되던 자습서였기 때문에 내 수학 문제집은 언제나 문제에 바로 풀이가 쓰여 있었다. 친구들 것과 다르다는 사실에 가난에 대한 부끄러움이 못내 떠오른적도 있었지만 학생용 종이 회수권 10장 짜리를 11장으로 나눠 내는 꼼수를 부리느라 양심에 가책이 드는 것보다는 훨씬 당당했다. 공부를 잘하고 대학에 가면 어엿한 성인으로서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희망으로만 살던 시기였다. 공부만이 살 길이었다.
그분들의 배려와 애정에 보답하는 것은 수업을 잘 듣고 공부를 잘 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나는 수학 성적만은 정말 잘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들이 베풀어주신 그 마음이 비록 연민과 동정이었다 하더라도 선생님과 나 사이에는 다른 학생들과는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믿었다.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했다. 그분들의 선함이 내가 바로 설 수 있게 하는 든든한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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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행복보다 구체적이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내가 그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에 대해 써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드는 것을 최대한 절제하려 노력했다. 그래도 그 고통에서 마주한 따뜻함에 감사한 마음이 넘친다. 나 사랑받았구나. 고통과 기쁨 안에서 과거를 마주한다.
알아차림에 관련된 글을 읽거나 명상을 하다 보면 오늘처럼 내가 잊고 있던 찬란했던 과거가 가끔 선명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나 이야기했듯 그 당시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그때의 일을 상기하면서 다짐한다. 현실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감사하며 살자고. 그리고 내가 받았던 사랑을 떠올리며 그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타인의 선함을 보려고 노력해 보자.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