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번역을 영어로는 translation이라고 한다. 통역은 interpretation이라고 하는데 업계에서는 번역과 통역을 분명히 구분 짓는다. 번역사로서.. 번역이 정말로 어려운 작업인 이유에 대해 한 번 소소한 소회를 풀어 보고 싶다. 사실 자기 생각을 정확한 글로 풀어내기도 어려운 일인데, 남의 생각을 이해해 다른 언어로 정확히 푼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사는 AI에 대체될 직업 1 순위로 종종 꼽히고 번역은 외국어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로 취급되는 등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번역은 단순한 노동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흔히 인식되는 것과 달리 번역 일은 종종 창의성을 요한다. 그래서 어렵다. 번역이 어려운 이유는 수 없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창작의 관점'에만 초점을 두고 싶다.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원어 제목은 'Lost in Translation'이다. Lost in translation은 번역 중 의미가 소실되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번역 중 의미 소실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번역은 두 언어를 다루고 각 언어권은 다른 문화를 갖고 있다. 그래서 한 문화에서 존재하는 개념이 다른 문화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흔히 있다. '먹방'을 예로 들어 보자면 필자가 통번역대학원 입시 준비를 하던 당시 국내에서 먹방이 막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때, 이 먹방을 영어로 'binge eating show'라고 외웠었다. 아마도 먹방을 보여주지 않고 영어권 외국인에게 저런 표현을 썼다면 먹방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며, 돌이켜 보면 저 표현은 폭식 방송에 가까운 표현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어감도 있을뿐더러 먹방의 느낌을 실어 나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딱히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현재는 지구인 대부분이 먹방을 안다. 유투브에서도 많은 외국인 유투버들이 먹방(Mukbang)이란 한국어를 kimchi처럼 그대로 쓴다. 지금은 먹방이라 번역하든 Korean style eating show라 번역하든 세계적으로 개념 공유가 되어 있고 먹방이 더 이상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의미가 잘 통한다. 하지만 2014년 당시 이 개념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Mukbang이라고 번역 하든 Binge eating show라고 번역 하든 의미가 통할 수 없었다. 즉 이러한 상황에서 번역은 창작에 가깝고, 이때 의미 소실(lost in translation)은 필연적이다.
유사한 사례로 '씨에스타'가 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점심 먹고 당연스럽게 한 두 시간씩 낮잠을 때리는 일종의 풍습을 씨에스타라고 하는데 이 개념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씨에스타라고 하면 바로 의미가 통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말로 부연 설명 없이 '낮잠'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원하는 의미 전달이 안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의미가 통하게 새로 지어내는 수밖에 없고 이때 역시 번역은 창작이다.
영화 제목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번역자가 고뇌 끝에 내놓았을 창작의 결과물이다. 당연히 원어 제목 'Lost in Translation'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옮기는 과정에서 의미의 소실이 발생하고 불친절하게 '로스트 인 트랜스레이션'이라고 번역하지 않는 이상 뭐라고 짓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번역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