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P
글이 적고 싶어 브런치에 들어오면 특별한 가닥이 정해지지 않으면 막막함으로 가득 찬다. 그럴 땐 그전의 쓰던 서랍의 기능을 활용하여 살이 붙이고 자르고 하다 보면 하나의 글이 완성된다. 브런치 작가라면 누구나 서랍 속 아픈 손가락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세상을 나온 글 보다 아직 서랍에 갇혀있는 친구들이 더 많은 편이다. 글의 내용이 부족하여, 맥락이 어긋나거나, 주로 글을 적다가 나의 방향과 글의 방향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튼 서랍에는 한창 유행했던 아니 아직도 어색한 아이스 브레이킹을 깨기 위해 사용되는 MBTI에 대한 글 하나가 있다. 그 글에는 MBTI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와 이것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게 주된 내용이다. 나는 그렇게 논리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잼병이라 결국 서랍에 있는데 먼지만 쌓인 채 묻혀가고 있던 와중 어느 날 SNS에 다음과 같은 사진을 보게 되었다.
보자마자 말이 왜 바에 들어갈까라는 고민은 1초 이내로 없어지고 말이 바텐더에 들어간다면 소주와 맥주는 안 울리는 거 같아 바텐더에게 따로 주문할 것 같다. 여기서 어떤 보드카를 주문할지는 딱 하나가 머릿속으로 떠오른다. 007의 제임스 본드처럼 "보드카 마티니, 젖지 말고 흔들어서." 그다음 말에 대한 배역이 주어진다. 고독한 중년의 남성이고 가정은 있지만 주말부부이며 전업 킬러의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아내는 전혀 몰라. 이 고독을 바텐더가 느껴 먼저 질문하지만 말은 자신의 마음을 닫고 살아 귀찮아하는 장면. 이까지 떠오른다. 누군가 나에게 왜 이렇게 떠올렸어라고 묻는다면 대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즉흥적으로 생각이 생각의 손을 잡고 나간다면 내가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지 헷갈리기 십상이다.
언젠가 소설을 한 번쯤 쓰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아 물론 아직도 소설은 한번 쓰고 싶긴 하다. 여튼 혼자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참새 무리를 발견한 적이 있다. 이들은 어디서 왔고 지금 어디서 생활을 하는지 참새의 마음을 헤아린 적이 있다. 어쩌면 저 참새도 나와 같이 재개발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 본 자신의 삶의 터전에 대한 빨간 띠를 두른 어른들과 똑같다는 결론에 도달해. "빨간 띠를 두른 참새"라는 제목이 떠올라 시간 날 때마다 상상력을 동원해 글을 적고 있긴 한데 역시는 역시. 소설은 재능의 영역이라는 것을 항상 깨달으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존경을 표하게 된다.
요새 기업에서는 MBTI를 제출하라는 회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업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상과 구별하는 하나의 참고자료이겠지만 당사자인 취업준비생에게는 그 참고자료 하나마저 절실하다. 자신의 MBTI를 I에서 E로 E에서 I로 바꿀 수 있는 컨설팅 학원까지 나오고 있는 시점이다. 코로나로 인해 지친 서민들의 마음을 달랠 하나의 심심풀이에서 학원까지. MBTI를 과몰입하여 너는 이게 나와서 이런 사람이라 나랑 다른 게 아니라 틀려. 나 이렇게 나온 사람 소개받을래. 등등 전부 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다. 적어도 영어 네 글자로 사람을 평가하고 색안경을 끼는 세상은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