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회고 (1)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

by 정소예

이 글은 올해 초 <황홀한 글감옥>에 자발적으로 갇혀 10시간 동안 지난 10년을 회고한 글이다.


지난 2월 한국에 갔을 때 세실님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대여섯 명이 홍대의 한 공간에 모였다. <황홀한 글감옥>이라는 일회성 모임을 통해 각자의 10년을 회고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나는 번아웃으로 휴직 중이었고, 오랜 시간 퇴사를 고민하다가 퇴사를 하는 게 맞다고 결정한 그즈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얽힌 감정이 많았나 보다. 쓰면서 펑펑 울다 쉬는 시간엔 웃고, 다시 글 쓰기 시작하면 또 울기를 반복하며 써 내려갔다.


그 후 이 글을 올려야지 올려야지 하다가 이렇게 2025년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누군가 볼 테니 조금 더 다듬어서 덜 솔직하고, 더 정제된 상태로 만들어야 하나 싶어 시간만 흐른 것이다. 그런데 정제된 글을 올리면 시간이 흘렀을 때 글을 써 내려가며 널뛰었던 감정을 잊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수정만 하기로 했다.


( <대기만성형 구글러> 매거진을 더 많은 글로 채우면 좋았을 텐데. 끊임없는 자기 검열로 꺼내지 못한 생각과 감정을 뒤로한 채 이 글타래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아쉽지만, 이 감정까지도 함께 품어야지)




너무너무 떨린다. 나의 10년을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이 왔다. 이 문장을 쓰면서 벌써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나의 애증의 10년. 그래. 한번 쓱 돌아보고 여기서 배울 것 취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1. 구글 인터뷰.

나는 딱 10년 전인 2015년 3월 9일에 구글에 입사했다. 2014년 12월 22일, 대학 동기이자 이미 구글에서 일하고 있던 J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를 4개월 정도 준비한 후 온사이트 인터뷰를 하러 구글 캠퍼스에 갔다. GWC4에 있는 카페 Evolution에서 아침을 먹고 9시에 GWC1 로비에 체크인했다. A, T, 그리고 한국분이신 ㅊ님이 나를 인터뷰했고, 점심 인터뷰는 C와 했다. 당시 C가 속해 있던 MyMaps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점심도 Evolution에서 먹었다.

다섯 번째 인터뷰어는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 인터뷰에는 과부하가 걸린 건지 긴장이 확 풀린 건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interval 관련 recursion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 하지만 이전 인터뷰들에서 내가 봐도 너무 잘 해낸 덕에 내 패킷이 hiring committee에 넘겨졌다. 연말연시라 프로세스가 많이 느려서 2월 말이 되어서야 매니저 M과의 팀 매칭 콜 이후 acceptance offer를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 아빠가 직원식당 칠판에 '구 글 합 격'이라고 크게 쓰시던 모습이(영상통화였던 것 같다) 아직도 생생하다.


2. 이직 Rationale.

중견 스타트업 Turn에서 일하던 내가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들으면 누구나 아는 회사에 가고 싶었다. 자존감이 낮은 내가 네임밸류 있는 회사에 들어가면 나 또한 밸류가 높아지지 않을까, 그게 내 자존감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두 번째로, 중국 사람들이 대부분인 환경에서 종종 중국어로 커뮤니케이션하며 소외감을 느꼈다. 그보다는 시스템이 정착되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더 성장하고 싶었고,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라면 그런 환경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3. 입사.

입사 후 예전보다는 아주 조금 자존감이 회복된 것 같았다. 한없이 부족한 사람인데 구글 엔지니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는 것만으로, 내가 그렇게 쓸모없지는 않다는 걸 조금 증명한 것 같았다.


4. 임신.

입사한 지 두 달이 되었을 때 계획에 없던 임신을 했다. 주변에 임신을 하거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이게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지 전혀 몰랐다. 신혼생활을 만끽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웠지만 아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저 신기하고 기뻤다. 입덧은 심하지 않아서 초기는 괜찮았지만 막달에 가까워질수록 몸이 점점 힘들어졌다. 골반 뼈가 하나하나 해체된 채로 걸어 다니는 느낌이었고, 밤에 자세를 바꾸려면 매번 잠에서 깨어 겨우 몸을 돌려야 했다. 매시간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수면의 질이 업무에도 조금씩 영향을 미쳤다.


5. 복직. 생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첫째를 낳고 3개월의 산후조리 후 회사에 복직했다. 회사에서 아이가 눈에 아른거렸다. 모유수유를 최대한 오래 하고 싶었다. 출근했지만 아이에게 모유를 최대한 오래 주고 싶어서 책상 위에 놓을 작은 모유 저장용 냉장고를 산 후 하루에 세 번, 조금 나중엔 두 번씩 수유실에 가서 유축했다. 매일 두세 번씩 수유실에 가면 문맥 전환을 매번 해야 했고, 일의 몰입도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 체력과 정신력이 허락하는 한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일과 육아 둘 다 놓지 않기 위해 멘탈을 부여잡고자 했다.

아이가 통잠을 자기 전까지는 밤수유 때문에 새벽에 몇 번이고 일어나야 했는데, 잠이 부족하면 효율이 바로 떨어지는 몸이어서 회사에서 아웃풋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엔트리 레벨 신입이었고, 얼른 승진이 요구되지 않는 레벨까지 올라가야 할 시기였다. 나는 생존을 위해 밤낮으로 몸을 갈아 넣었다.


6. 현실 자각.

고군분투하는 중에 둘째도 낳고.. 그렇게 첫 4-5년을 보냈다. 둘째까지 어느 정도 키워냈을 때 잠도 좀 잘 수 있게 되었고 주변을 돌아보고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생존하고자 하며 커리어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동안 동료들과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그들의 커리어를 잘 쌓아나가는 것 같았다.

나보다 2년 늦게, 대학 졸업 후 바로 우리 팀에 들어온 G를 포함한 옆 팀의 사람들은 나보다 늦게 들어왔는데 먼저 다음 레벨로 승진했다. 팀 미팅을 하거나 자기가 만든 프로젝트 데모를 할 때 자기의 아웃풋을 너무나 잘 보여주었고, 누군가가 작업물에 대해 뾰족한 질문을 할 때에도 당황하지 않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일목요연하게 잘 전달했다.


7. 발표 공포증.

그에 비해 나는 입사했을 때에 비해 제자리에 있는 듯했다. 일이 주어졌을 때, 풀어야 할 문제와 코드베이스의 현재 상태,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생각해 내야 하는데 처음엔 그저 막막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든 문제를 풀었을 때, 그 기능을 개발해서 완료하는 단계에 갔을 때 이제 나도 팀 앞에서, 혹은 조금 더 큰 그룹 앞에서 데모를 해야 하는데,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에 내가 한 것에 대해 당당하게 발표할 수가 없었다. 이런 심리 상태가 고착되었는지 발표를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면 눈에 경련이 나고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릴 것처럼 쿵쾅대고 손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안해하다가 결국 발표할 때 내가 해낸 것의 반도 알리지 못하고 마무리했던 적이 여럿 있다.


8. 질문 공포증.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스스로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즈음 일이다. 함께 협업하는 PM인 B에게 그가 쓴 PRD의 내용에 관해 clarifying 하는 질문을 했어야 했다. B의 자리는 내 책상이 있는 곳에서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직접 가서 물어보면 되는데 그 당시 그 질문을 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의 책상과 내 책상 사이를 두세 번 왔다 갔다 했다. 이 질문이 바보 같을까 봐, B가 어이없다고 생각할까 봐 질문을 할 그 순간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어깨를 두드리거거나 이름을 불러서 물어봐야 하는데 결국 그러질 못하고 자리에 돌아와서 채팅으로 질문을 했다.


9. 사기꾼.

그의 책상과 내 책상 사이를 왔다 갔다 했던 그날, 제대로 현타가 왔다. 나 자신이 개한심하고 어이없었다. 이걸 어쩌나. 정소예 진짜 이거 어쩌면 좋나. 임포스터 증후군이 아니라, 진심 사기꾼 같았다. 뽀록으로 들어온, 사실은 회사에 다닐 자격이 없는 사람 같았다. 진심 투명인간이 되어 사라지고 싶었다.


to be continued..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구글에서의 지난 10년을 대표하는 키워드 3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