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은 지옥이야" 그래도 나는 뛰어들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 2021년 7월 16일, 넥스트팬지아를 시작한 지 벌써 4년이 흘렀다.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야"라는 미생의 명대사처럼, 많은 사람들이 직장 밖을 더 위험한 곳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는 그 안락한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얼마나 좋은 자리에 있는데,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하냐",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거냐", "가족은 생각해봤냐"는 말들이 쏟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는 것을 위험하다며 말렸다.
이 글은 그런 우려와 만류 속에서도 안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내 길을 만들어 온 솔직한 이야기다. 14년간의 직장생활과 4년간의 사업을 경험하며 깨달은 것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다짐을 담았다.
창업 전 나는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며 서른둘에 차장/영업팀장, 서릇다섯에 이사로 진급했다. 억대 연봉까지는 아니었어도, 충분한 연봉과 법인 차와 법인 카드, 그리고 나를 믿고 따르는 10명이 넘는 팀원들과 함께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열심히 업무에 임했고, 개인의 성장과 팀원들의 성장을 위해 솔선수범하려고 노력했고, 교육 프로그램까지 직접 기획해서 팀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회사에서 주어진 목표를 초과달성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그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실행에 옮기곤 했다. 이 와중에 SEPHORA, L'ORÉAL, ESTÉE LAUDER 등 글로벌 기업과 협업을 하며, 뉴욕, 파리 등 세계 화장품 중심 도시들을 돌며 마치 글로벌 화장품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뉴욕 에스티로더 본사에서 다양한 브랜드 담당들과 미팅을 하고, 파리로 날아가 세포라 임원들과 글로벌 트렌드를 논하며 신제품 개발 업무를 함께 할 때는 정말 짜릿했다. '내가 정말 글로벌 화장품 업계의 중심에서 일하고 있구나'라는 확신이 들곤 했다. 내 브랜드는 아니지만 내가 제조 한 제품들이 전 세계 세포라 매장에 진열된 모습을 봤을 때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성공이었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늘 불안과 갈증이 공존했다. 사업을 해야 한다는 마음은 10년 전부터 품고 있었지만, 직장에서 승승장구할수록 머릿속에서는 두 목소리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지금 이 자리면 충분하지 않나? 월급도 좋고, 사회적 지위도 있고... 굳이 모든 걸 포기하고 위험한 도전을 할 이유가 있을까?"
"아냐, 이건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아니야. 언젠가는 내 사업으로 승부를 봐야 해.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내적 대화가 매일같이 반복되었다. 성과를 낼 때마다 첫 번째 목소리는 더 설득력을 갖는 것 같았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두 번째 목소리는 더 간절해졌다.
직장인으로서의 빠른 성공이 오히려 내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줄은 몰랐다. 성과를 낼수록, 인정받을수록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안주하면 평생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목소리도 더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예비창업패키지'라는 정부 지원 사업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이 운명의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지난 경력을 증명하는 사업 계획이 아닌, 오직 아이디어와 열정만으로 평가받는 무대였다. 지금은 많은 정부지원사업을 수행하며 전문가가 되어 있지만, 그때는 정말 초보적인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직장 일을 병행하며 퇴근 후와 주말을 모두 투자해서 미친 듯이 준비했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실패 확률보단 성공확률을 높이고 싶었다. 맨땅에 헤딩하고 싶지 않았다. 5개월 동안 창업 관련 서적 100권을 독파하며 선배 창업가들의 경험과 지혜를 내 것으로 만들려 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씩 책을 읽고, 퇴근 후, 주말에는 독서와 사업계획서, 발표 자료 준비를 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예비창업패키지에 합격을 했다. 합격 발표를 받은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진짜 해야 하나? 이대로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길로 들어서도 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것은 나와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품어온 꿈, 5개월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쏟아부은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언젠가는 내 사업을 해보겠다"고 다짐했던 그 수많은 밤들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예비창업패키지 지원금, 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마법 같은 열쇠였고, 14년간 꿈꿔온 나만의 무대로 향하는 첫 번째 티켓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언젠가는"이라는 말로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진짜 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을.
창업은 예상대로 가난했다. 높은 연봉, 법인 카드, 회사의 이름값—그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언제든 편하게 탈 수 있던 법인차 대신 내 새로운 발이 되어준 것은 서울시 '따릉이'였고, 응접 소파와 큰 책상이 있던 임원실 대신 내 새로운 사무실은 1평도 안 되는 코워킹 스페이스의 작은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초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원래 명예나 이름값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내가 예전에 이사였는데..." 하는 마음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따릉이를 타고 집과 사무실을 오가는 매일이 자유롭고 즐거웠다.
스타트업의 현실은 TV에서 보는 것처럼 아름답지 않다. 매일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맞지만, 그 자유의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정해진 월급이 없으니 언제 돈이 들어올지 모르는 불안감은 상상 이상이었다.더 큰 문제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직장에서는 각 부서별로 전문가들이 있어서 내가 모르는 부분은 언제든 물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영업부터 마케팅, 회계, 법무까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 결정을 내려야 했고, 그 모든 책임이 오롯이 내 어깨에 달려 있었다.
진짜 위기는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6개월이 지나도록 매출은 '0'이었고, 법인 통장과 개인 통장의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웃음이 사라지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솔직히 겁이 났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그 공포와 두려움이 쌓이고 쌓여 터질 것 같은 어느 날 밤, 나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차도 없었고, 공유차 렌트비조차 부담스러워하는 내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떠나야만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무너질 것 같았다. 새벽 1시, 가장 저렴한 시간대의 공유차를 빌려 정동진으로 향했다. 캄캄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머릿속은 온갖 걱정과 후회로 가득했다.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나?', '이대로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동해 바다 끝에서 붉게 타오르는 일출을 마주한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장엄한 광경 앞에서 나는 다짐했다. "내년에는 반드시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오겠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깨달았다. "사업이 재미있는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고 기획하고, 그것이 현실로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힘들지만, 이 모든 과정이 내가 꿈꾸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정동진의 약속이 힘이 되었을까. 다시 돌아와 멘탈을 다 잡고 미친 듯이 일에 매달렸다. 그러던 중 거짓말처럼 첫 번째 발주가 들어왔다. 그해 우리는 4억 원이라는 기적 같은 매출을 올렸다.
1평짜리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2인 단독실로, 그리고 창업 2년 만에 첫 직원을 뽑았다. 한 명이었던 동료는 이제 8명으로 늘어났다. 작은 점에 불과했던 아이디어가 이어져 선이 되고, 이제는 함께하는 동료들과 함께 '넥스트팬지아'라는 면을 채워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11.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우리가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넥스트팬지아의 성장은 수많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예비창업패키지를 시작으로 청년창업사관학교, 글로벌창업사관학교, 창업중심대학, 그리고 R&D 연구과제까지. 정부 지원 사업은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우리가 체계적인 성장의 단계를 밟아갈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토스', '직방'과 같은 유니콘 기업을 배출한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선정되었을 때는 우리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 가슴 벅찼다. 우리는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며 매출을 일으켰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또 다른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사실 글로벌창업사관학교는 처음에는 꿈도 꿀 수 없는 곳이었다. 나이 제한 때문에 지원 자격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명처럼 제도가 바뀌었다. 글로벌창업사관학교는 청년창업사관학교의 2년차 과정처럼 변경되어, 업력 제한도 7년차까지 확대되었다. 지원금도 1억 5천만 원까지 상향 조정된 것이었다.
당연히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지원 대상이 기존 창업 3년 이내에서 7년 이내로 확대되면서, 그동안 기회를 잡지 못했던 많은 스타트업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실제로 글로벌창업사관학교의 경쟁률은 14.6대 1이라는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60명 모집에 900개 이상의 기업이 지원한 것이다.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1억 5천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지원금과 글로벌 진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에게 글로벌창업사관학교 프로그램은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체계적인 글로벌 진출 전략 수립부터 해외 마케팅,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다. 특히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멘토들과의 네트워킹은 새로운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에 큰 도움이 되었고, 실제로 여러 해외 고객사와의 협업 기회로 이어질 수 있었다.
나는 화장품 사업을 한다. 하지만 단순히 제품을 만들고 파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고객이 원하는 화장품을 가장 빠르고 합리적으로 만들어 그들의 사업에 가치를 더하는 일'을 한다.
해외의 작은 인플루언서 브랜드부터 대형 유통사의 PB 상품까지, 그들의 꿈이 담긴 제품이 우리 손을 거쳐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 화장품들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 누군가의 아침을 기분 좋게 열어주고, 하루의 마무리에 작은 행복을 선사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이것이 내가 모든 어려움을 딛고 계속해서 이 사업을 해나가는 이유다.
4년이라는 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이제 넥스트팬지아는 새로운 도전의 문을 열고 더 큰 대륙을 향한 항해를 시작하려 한다.
지난 4년이 생존을 위한 분투였다면, 앞으로의 4년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가치를 증명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는 단순한 화장품 제조를 넘어서, 진정한 뷰티의 의미와 사람들의 일상에 행복을 더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나갈 것이다.
창업 초기의 1평 책상에서 시작된 우리의 여정은 이제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했다. 앞으로는 더 많은 브랜드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이 여정에 함께해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우리의 새로운 도전을 지켜봐 주길 바란다. 넥스트팬지아의 다음 4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