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내 글 쓰는 즐거움을 빼앗아 갔다

AI가 빼앗아 간 건 퀄리티가 아니라 성취감이었다

by 철학하는 CEO

글쓰기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나마 있던 내 것이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떠오르지 않는 단어와 씨름하며 머리를 쥐어짜는 그 고통을 견뎌야만 한다.

글쓰기는 힘들다. 머릿속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글로 옮기는 작업은 젖은 수건을 짜내는 것과 같다. 물기를 없애기 위해 코어의 힘까지 사용하여 양손으로 온 힘을 다해 비틀어야 한다.


단어가 안 떠오를 때.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 머릿속에는 분명히 할 말이 있는데, 그게 문장으로 나오지 않아서 손가락만 멈춰있는 그 순간. 글쓰기는 힘들기도 하고 그 자체가 고통이기도 하다. 특히 브런치 글 하나에 보통 한 시간, 길게는 그 이상이 걸린다.


그런데 그 고통에는 반대급부가 있었다.

막혔던 것들이 연결되면서 뻥 뚫릴 때, 초고를 다 쓰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의 쾌감. 내가 쓴 글인데, 다시 읽으면서 '이거 꽤 괜찮은데'라고 느낄 때의 그 작은 자부심.

그게 브런치를 계속 쓰게 만든 이유였다.


창업을 준비하며 브런치를 시작했다. 어려울 것을 알면서도 그 과정을 글로 남겨 초심을 기억하고 싶었다. 또한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창업 후 1인 법인을 운영하면서도 꾸준히 썼다. 글 쓰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낄 만큼 일이 많았다. 그래도 썼다.

머리가 쥐가 나기도 했지만, 글을 쓰는 그 시간이 업무의 탈출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글을 다 쓰고 난 뒤 오는 그 쾌감, 마치 오래 달리기를 마치고 맥주 한 잔과 라면 한 그릇을 먹는 것과 같은 느낌!




창업한 지 이제 5년 차다. 회사는 많이 성장했고 함께 일하는 동료도 10명으로 늘었다. 데스밸리를 지나 J커브 초입까지 왔다. 창업 초기에 비해 내 시간도 조금은 생겼다.

Chat GPT, Gemini, Claude 등 AI를 적극적으로 업무에 활용해 왔고, 다방면으로 활용을 해왔다. 이렇게 AI를 잘 활용하고 있었으니 글쓰기에도 많은 활용을 해왔다. 이미지를 만든다거나, 내가 쓴 글을 다듬는다거나,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AI를 쓰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글 편 수가 확연히 줄었다. 그리고 두 가지가 동시에 사라졌다.

고통도 없어졌다. 쾌감도 없어졌다.

글의 퀄리티는 높아졌다. 확실히 그렇다. 문장은 매끄러워지고, 구성은 논리적이고, 단어 선택도 나보다 낫다. 그래서 안 쓸 수가 없었다. 실용적으로 보면 쓰는 게 맞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완성된 글을 보면 아무 감흥이 없었다. 성취감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시간도 줄었다.


왜 이런 생각이 들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결론은 내가 쓴 게 아닌 것 같아서였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글을 왜 썼지?

정보를 전달하려고? 인정받으려고?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그건 일부였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쓰는 과정에서 내 생각이 정리됐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이 문장이 되면서 구체화됐다. 그리고 완성했을 때, 이 어려운 걸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이 쌓였다. 지연된 도파민. 그걸 위해 그 고통의 시간을 버텼던 거다.


하지만 AI는 그 과정을 통째로 건너뛴다.

결과물은 생기는데, 과정이 없다. 과정 없는 결과물에서 성취감이 나올 리 없다.


요리사가 밀키트로만 요리하면 어떻게 될까.

결과물은 비슷할 수 있다. 오히려 더 일관되게 잘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요리사는 점점 요리를 못하게 된다. 손이 기억하는 게 없어지니까. 실패하면서 쌓여가는 경험이 없어지니까.


나는 지금 글쓰기에서 그걸 느끼고 있다. 나의 글쓰기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독서를 하고 브런치 글을 쓰고 조금씩 향상 시켜왔던 글쓰는 실력이, 그나마 조금 있던게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AI를 안 쓰는 게 아니다. 그건 비효율이다. 대신 순서를 바꿨다. 먼저 나 혼자 초고를 쓴다. 엉망이어도 된다. 그 고통을 통과한 다음에 AI와 상의를 한다.


고통을 먼저 치르고, 퀄리티는 나중에 보완한다.

완성의 기쁨은 그 순서에서만 나온다는 걸 이제는 정확히 알게 되었다.

도구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해야지, 대체해선 안 된다.


이제 다시 고통을 느껴보자. 즐겨보자. 지연된 도파민을 다시 경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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